<심층취재> 전두환 비자금 '그림 세탁설'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7.01 11: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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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천경자…작품 보유하다 팔았다"

[일요시사=사회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명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림을 보관한 수장고가 오산에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그 배경과 실체는 무엇인지 <일요시사>가 추적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인 박수근의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 작품 이름은 '빨래터'. 이른바 세기의 경매로 불렸던 지난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빨래터'는 45억2000만원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만약 이런 '세기의 명화'들이 한 수장고 안에 수십점이 보관돼 있다면 그 환산가치는 얼마나 될까.

전두환의 큰아들
그림을 사랑하다

지난 6월 2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명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미술계 쪽 상당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첩보"라며 재국씨의 명화 수장고 의혹을 제기했다.

신 의원은 미술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경기도 오산 인근에 천문학적 규모의 명화 수장고가 있다"면서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1990년대부터 재국씨의 대리인격인 전모(55)씨와 한모(52)씨가 화랑을 돌아다니며 명화 컬렉션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해당 내용의 확인을 위해 복수 국회 관계자와 만났다. 하지만 명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신 의원 측도 마찬가지. 하지만 신 의원 측은 "그런 첩보가 전해 들어 온 것은 사실"이라며 수장고의 존재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재국씨의 명화 수장고 소유 여부는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기자가 접촉한 한 미술계 관계자는 "수장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재국씨가 어떠한 그림을 사고팔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재국씨가 그림을 비롯한 순수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소문이 맞다"고 확인했다.

재국씨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 생활 당시 재국씨의 관심은 온통 미술에 쏠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학 도서관보다 뉴욕에 있는 유명 미술관을 찾는 일이 더 잦았던 재국씨는 1980년대부터 미술 비평을 비롯한 국내외 미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장남 재국씨 유명 작가 명작들 거액매매 의혹
국보급 문화재도?…'검은돈' 은닉 소문 파다

회화는 물론이고 순수 예술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재국씨는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뉴욕에 머물던 가수 겸 사진작가 한대수씨와의 친분을 쌓았다.

재국씨에 대한 한씨의 평가는 굉장히 인상적인데 한씨는 "그(재국씨)는 명백히 사회 엘리트 계층이 키워낸 인물"이라며 "세계 지도자들과 교육받은 장군들과 외교관 틈에서 자란 청년, 나는 그렇게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전(전두환) 대통령이 다시 보였다"고 호평했다. 이후 한씨는 재국씨 소유 갤러리인 '아티누스'에서 2003년 11월 사진 전시회를 열어 인연을 이어갔다.

체제에 저항한 예술가와 독재자의 장손. 이 기묘한 궁합은 재국씨의 그림 수집과도 연관된다. 전 전 대통령이 금기시한 민중미술 작품을 재국씨가 사들인 것.

한 민중미술 작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990년대 민중화가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어떻게 그 사람에게 그림을 팔 수 있냐'고 언성을 높였던 일화가 있었다”며 "재국씨가 미술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가졌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큐레이터 1세대
전재국과 통하다

귀국 후 재국씨가 공을 쏟은 일은 국내 미술시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고 전해진다. 국내 갤러리가 밀집한 서울 강북 일대가 재국씨의 활동 무대였다.

1990년 재국씨는 그의 외삼촌 이창석씨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투자하며 출판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같은 해 미술서적 출판을 주력으로 한 시공사를 설립했다.

국내 미술계에서 1990년대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전문 큐레이터(학예사)를 중심으로 한 미술 평론과 시장 구축이 본격적으로 태동됐던 시기이기 때문. 당시 재국씨는 큐레이터 1세대격인 정준모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과 활발히 교류했다. 그리고 이때 만났던 인연이 바로 재국씨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전씨와 한씨다.

전씨와 한씨는 모두 큐레이터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업계의 평판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씨와 달리 전씨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사생활이 베일에 싸여있다.

한씨는 경기 남부의 유명 갤러리인 H갤러리에서 1992년까지 큐레이터로 재직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재국씨 소유 갤러리인 아티누스에서 갤러리 디렉터로 일했다. 이후 한씨는 돌연 전업 작가로 전직했다. 서양화가인 그는 지난 3월 서울 청담동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씨는 외부 연락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렵게 접촉한 그에게서 수장고의 행방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한씨는 "내가 재국씨의 대리인으로 그림을 사들였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재국씨가 미술 애호가로써 그림을 사들인 건 맞지만 어떤 경로로 샀고,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대답을 피했다.

한씨는 전씨와 함께 지난 1994년 아티누스 건립의 총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재국씨로부터 화랑 관리와 미술품 수집 등을 위임받았다. 재국씨가 본격적인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했던 것도 이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재국씨와 함께 일했던 한 내부 관계자는 "신 의원의 주장이 너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재국씨가 대량의 미술품을 소유하게 된 배경에 다른 사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재국씨의 그림 수집이 개인의 기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 비자금 은닉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재국씨가 박수근·천경자 등 유명 작가들의 명화를 보유했던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유명 작가들
 작품 샀었다"

재국씨는 지난 1993년 한씨, 전씨와 함께 <아르비방>(생동하는 미술)이라는 미술 전문잡지를 준비했다. <아르비방>은 당시 젊은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됐다. 1994년 출간한 <아르비방>은 1996년까지 모두 55편이 제작됐다. 각 호마다 1명의 신진작가가 <아르비방>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자신을 다뤄준 잡지를 살 돈이 없던 작가들은 <아르비방>을 받으면서 그 대가로 자신의 그림을 재국씨에게 선물했다. 이렇게 받은 그림들이 외부로 와전이 돼 '천문학적인 명화'로 둔갑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작가들의 작품이 팔려봐야 얼마나 했겠냐"면서 "지금 그 작가들의 그림이 유명해졌다고 하더라도 경매가의 총합은 아마 10억원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재국씨가 '다른 그림'을 사들인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더불어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박수근, 천경자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처분한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재국씨는 '권력가 2세' 컬렉터 중 1세대로 꼽힌다.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순수한 취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미술품에 대한 수집욕은 남달라서 때때로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지난 2000년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에 조건 없이 2억원을 내밀었다는 소문은 미술판에 파다했다. 간송미술관 측은 "재국씨로부터 공식적인 제의는 없었다"며 소문을 부인했다. 2000년은 재국씨가 서울 시내 대형서점인 을지서적을 인수하는 등 자금력이 극에 달해있을 때로 알려져 있다. 이 자금 중 일부가 명화를 사들이는데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베일에 싸인 재국씨의 대리인 전씨의 행적도 의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청담동의 한 갤러리 대표를 지내면서 재국씨와 자주 만났다. 서울 역삼동 한 일식집에서 재국씨와 전씨가 사업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는 일화도 들렸다. 그러나 이들의 확인된 커넥션은 따로 있었다.

대리인 내세워 거래오산에 명화 수장고?
한점에 수억∼수십억…처분한 돈 어디로 갔나


재국씨와 전씨가 <아르비방>을 준비하던 1993년 3월, 전씨는 서울 서초구 신반포 15차 아파트를 매입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전씨는 매입한 아파트를 담보로 신한은행으로부터 2억4000만원을 빌렸다.

해당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1993년 11월 시공사는 전씨의 채무를 떠안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시공사 대표인 재국씨가 전씨의 아파트를 사들인 것이다.

이 아파트는 2000년 전 전 대통령의 딸 효선씨에게 매매됐고, 시공사가 진 채무는 2006년 3월 해지됐다. 이후 효선씨는 2010년 9월, 21억2000만원에 이 아파트를 매도했다. 즉 재국씨가 전씨의 명의를 빌려 서초구 아파트를 매입하고, 이를 다시 효선씨에게 넘겼다는 의혹인 셈이다.

현재 전씨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과거 전씨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던 한 유명 작가는 "전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갤러리를 하다가 갑자기 문을 닫았고, 이후로는 (내가 그린) 드로잉 한 점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최근 몇 년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에 꼽힐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전씨가 유명 작가의 그림을 몰래 빼돌린 셈이다.

수상한 오산땅
미술품 어디있나

재국씨와 친분이 있는 한 관계자는 "그림 경매가가 피크에 올랐을 때 재국씨가 명화를 다 팔았다"는 정보가 있었다며 "만약 이 매각대금을 추징금 얘기가 나온 시점인 2004년 전에 다른 경로로 보냈다면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두환 일가는 금고지기 이씨를 우회해 규모 132만㎡의 오산 땅을 소유했었다. 재국씨가 수장고를 감추기에는 충분한 규모. 기자는 경기 오산에 살고 있는 복수 미술계 관계자에게 문의, 수장고 위치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취재를 도운 한 관계자는 "수장고라는 게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만들 수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며 "인근 골프장 등에 숨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 평창동의 '시공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시공아트스페이스는 한국미술연구소 등이 있는 추정가 60억원가량의 복합 건물. 갤러리로 사용되던 2층에는 텅빈 박스만이 가득했다. 건물 관리인은 "이곳에는 이제 그림이 없고, 이벤트 물품만 있다"고 말했다.

재국씨의 미술 사업이 시작된 한국미술연구소에 갔다. 굳게 닫힌 철문 틈으로 수장고의 위치를 물었지만 연구소 직원은 "우리는 말할 게 없다"며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재국 수상한 소포박스 보니…
'호화 골프장' 회원

재국씨가 SK그룹 계열사가 운영하는 '핀크스 골프클럽' 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는 지난 6월26일 서울 평창동 시공아트스페이스 인근에 놓여있던 뜯어진 소포박스를 발견, '핀크스 골프클럽'이 재국씨 앞으로 발송한 우편물을 확인했다. 텅빈 박스 오른쪽 하단에는 '전재국 회원님 귀하'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즉 재국씨가 해당 골프장의 회원권을 갖고 있다는 얘기.

핀크스 골프클럽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객 개인정보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통상 회원권은 2억∼3억원에 거래된다"고 밝혔다. 소포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핀크스 골프클럽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골프장으로 SK그룹 계열사인 ㈜SK핀크스가 소유하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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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