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금주령' 설왕설래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6.07 20: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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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에 뺨맞고 애주가에 화풀이?

[일요시사=사회팀] 청와대와 주요 정부 부처들에 때 아닌 '금주령'이 내려져 일부 애주가들이 당혹스러운 눈치다. 고위공직자들의 기강확립을 위한 결정이라지만 내부에서는 조심스레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도 즐겨 마셨던 술을 왜 우리는 마시지 못하게 하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대선 기간 새누리당 선거캠프는 참모진들에게 '금주령'을 선포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추문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2월20일. 김무성 당시 총괄본부장은 캠프 해단식에서 "피 말리는 접전기간 동안 욕만 많이 해 죄송하다"며 "지금 이 시간부터 금주령을 공식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11일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윤창중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은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자신을 수행하던 인턴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현지 경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이른바 '윤창중 쇼크'가 청와대를 강타한 것이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긴 잠행에 들어갔다. 현재로서는 정치적인 재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윤 전 대변인의 도피성 귀국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이남기 전 홍보수석도 스스로 옷을 벗었다. 청와대의 '얼굴'인 홍보라인에 구멍이 뚫리면서 박근혜 정부는 큰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 취임 100일도 안 돼 벌어진 참사에 박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지난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 기강을 바로 잡겠다"고 말한 것. 그리고 청와대 전 직원들을 상대로 한 '금주령'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수도승도 아닌데…

미봉책 급급 지적

지난달 16일 원내 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청와대 공직자들이 금주선언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해제됐던 금주령을 반년 만에 또 다시 들고 나온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역대 정권 중 이렇듯 공공연히 금주령을 내린 정부는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봐도 '지나친 처사'란 지적. 이 관계자는 "윤창중을 임명하신 게 '그분'인데 결국 사고는 윤창중이 치고 수습은 아랫것들이 하는 꼴"이라며 "음주를 하고 안 하고는 공직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방미기간 중 일부 수행단이 현지에서 질펀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다른 정권의 해외순방 때보다 술자리가 적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

한 여권 관계자는 (술자리를) 아무래도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밖에서 보면 지나치게 뻣뻣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즉 이번 '윤창중 사건'은 평소 직원들의 술자리가 과해져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윤 전 대변인 개인의 '품성' 문제라는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의 설명도 비슷하다. 그는 "우리(공직자)가 수도승도 아닌데 금욕적인 삶을 살 이유가 있느냐"며 "기자들과 커피를 마시면 소통이고 술을 마시면 (윗사람에게) 찍히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직원들을 상대로 술을 누구랑 얼마나 마시는지를 수시로 체크하며 기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관가 곳곳에 퍼져 웬만한 고위 공직자들은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이마저도 최근에는 뜸하다는 게 한 국회 보좌관의 증언이다.

청와대·부처에 지시 "공직기강 확립 차원"
소잃고 외양간 고쳐…"보여주기" 의견도
"술 마시고 사고 치면 바로 모가지"

얼마 전 제2차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 치앙마이로 출국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출국 전 간부들과의 티타임에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만 수행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음주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실제로 정 총리의 주량은 와인 1잔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술을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직원들의 음주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왔다고 한 매체는 밝혔다. 실제로 정 총리는 지난달 19일 열린 한인 대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술 대신 오렌지 주스로 건배하며 '금주령'에 화답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인 '금주(禁酒)론자' 진영 보건복지부장관도 청와대발 금주령에 찬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최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여러 사건사고에는 술이 연루되는 경우가 많고 종종 불미스러운 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윤창중 사건'도 결국에는 술이 개입된 걸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진 장관은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 "난 폭탄주 강권에 한 맺힌 사람" "재임 기간 중 폭탄주 문화 개선에 성과를 내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술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자리" 등의 발언으로 '애주(愛酒)론자'들의 우려(?)를 샀던 인물이다.

또 진 장관은 지난달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방문, 대표를 맡고 있는 홍재철 목사에게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술·담배를 줄일 수 있도록 기독교계가 금주·금연 캠페인을 펼쳐 달라"고 주문했다. 진 장관은 여타 독실한 기독교신자들처럼 음주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핵심부처에 (음주에 부정적인) 친기독교 인사들이 많다보니 금주령이 쉽게 탄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앞서 밝힌 진 장관을 비롯해 정 총리, 황교안 법무부장관,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 등은 소문난 기독교 신자다.

또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도 각각 자신의 교회에서 장로나 집사를 맡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번에 해임된 이 전 수석도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단순히 종교 때문에 금주령이 탄력을 받는다는 설은 그저 억측에 불과하다"며 "국민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금주령 같은 미봉책으로라도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의 의견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는 "고위 공직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술접대와 골프접대인대 그런 의미에서 술을 자제하라고 윗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우리 공무원들은 이런 일 생기면 다 알아서 조심하고 그런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윤창중 때문에…


술은 몰라도 골프는 친다?

지난 3월 국군 장성들의 골프 회동이 논란을 일으킨 후 국방부장관 명의로 각 부대에 공문이 발송됐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 골프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술은 안 마셔도 골프는 친다"는 게 정설. 비단 군뿐만이 아니라 정부 고위 부처에서도 "술자리를 가느니 라운딩을 가겠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사회 고위층의 골프 사랑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암암리에 공무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는 박 대통령이 골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괜한 구설에 오르는 걸 경계해서라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직무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어김없이 필드로 향하는데 '윤창중 사건' 이후로는 골프 회동이 잠시 주춤하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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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