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옷 벗은 임채진 검찰총장

“원칙과 정도, 그것뿐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2번의 사직서 제출로 검찰과 ‘안녕’
참여정부 말 임명돼 BBK 정국, 촛불수사 등 풍운의 1년7개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결국 검찰 수장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명돼 인사청문회부터 BBK 정국과 정권교체, 촛불 수사까지 순탄치 않은 1년7개월 동안 굳건히 버텼던 임 총장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지목되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책임을 짊어졌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직서를 극구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끝내 두 번째 사직서를 내밀었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 원칙을 표방했던 임 총장.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얄궂은 인연이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말기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임 총장에게 수사를 받았고,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임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기가 만료된 정상명 총장의 후임으로 임 총장이 물망에 오른 것.

195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임 총장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무부 검찰국 검사와 검찰 1·2과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2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홍조근정훈장 수상자이기도 하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행정 기획통으로 검찰국장 재직 시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굵직한 현안을 둘러싼 논란에 직언으로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중에는 ‘일심회’ 사건으로 청와대 386인사들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강함’ 탓에 임 총장은 취임부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정 총장의 후임으로 고려되던 인사에 부적격 요인이 나오면서 1순위로 떠올랐지만 참여정부 내에서도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임채진 질긴 인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맺음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상황이어서 혼란스런 대선정국과 정권교체 후 ‘물갈이’까지 헤쳐 나가야 하는 악천후에 놓여 있었다.

한나라당도 4개월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반대했다. 새 정부의 출범을 고려, 정 총장의 퇴임을 늦추거나 직무대행으로 가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결국 ‘비판적 수용’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대통령이 임기가 다된 사람들에 대해 인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목숨 걸고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 편에서 판단하겠다”고 철저한 인사청문회 검증을 다짐하는 등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된 2007년 11월, 예기치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삼성으로부터 ‘관리’를 받아온 검사 명단에 임 총장이 포함됐던 것.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로 주목받고 있던 임 총장이 ‘휘청’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삼성떡값’ 수수 의혹을 집중 추궁 받으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결국 법사위는 ‘조건부 적합’ 취지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라는 의혹에 연루된 후보자가 총장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후보자가 철저한 실체 규명을 다짐하고 있는 이상 제기된 의혹만으로 검찰총장 장애사유는 되기 어렵다”고 그의 임명에 동의한 것.
‘의혹은 있지만 적합’했던 임 총장이 참여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임 총장은 검찰총장직에 오르자마자 BBK 수사라는 시험대에 놓였다. 대선정국을 휩쓸었던 BBK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선이 뒤엎일 수 있어서 여야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BBK 정국 후 ‘공공의 적’
촛불집회 후 검찰 불신 최고조

그러나 결국 검찰은 양쪽 진영 모두에서 ‘공공의 적’으로 내몰렸다. BBK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지어지자 당시 여권은 ‘정치검찰’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임기 도중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눈길도 싸늘했다. 사정 당국의 수장이 전 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라는 사실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도 높아만 갔다. 지난해 여름밤을 수놓은 촛불집회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으며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전 정권 죽이기’라는 오명으로 얼룩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은 ‘검찰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간적인 고뇌 때문”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며 사표를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임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인해 많은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이번 사건을 총 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수사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한 단계 높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내가 검찰을 계속 지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한-아세안 정상회담이라는 국제적 큰 행사가 무탈하게 잘 종료된 이 시점에서 물러나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각종 제언과 비판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개선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이미 밝힌 이번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존중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면서 여론의 공세에 몰린 검찰을 보듬어 안았다.

임 총장은 자신을 임명했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 임기 5개월여를 남기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날들에서 멀어진 것이다.

임 총장은 검찰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뒷말’은 무성하게 남아있다. 임 총장은 재임시절 정권이 바뀌며 4대 사정기관장이 교체되는 와중에 유일하게 유임됐지만 현 정부와 검찰 인사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후임에게 수사를 맡기고 물러서는 방안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번번이 그의 결심을 굳게 한 것은 검찰이 외압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원칙과 수사에 대한 형평성 시비를 막는다는 책임감이었다.

실제 임 총장은 시시때때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대 검찰의 화두” “강한 검찰보다는 바른 검찰을 지향하고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지킬 것” “검찰의 합리적 결정에 외압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온몸을 던져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며 검찰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혀왔다.

때문에 그의 취임에 법조계 안팎에서 “임 총장이 ‘정치 중립’이라는 소신을 지키고 강직한 수사를 한다면 그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그가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뒷말 이는 사퇴
윗선 압력설 ‘솔솔’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BBK 수사와 정권 교체, 촛불집회 수사와 용산참사까지 수많은 사건을 진두지휘해 온 임 총장의 사퇴 배경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검찰 독립을 위해 악전고투해온 임 총장의 사퇴 결정이 “인간적인 고뇌”라는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

실제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임 총장이 임기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사표 제출을 거부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임 총장의 사표 제출에 적지 않은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임 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검찰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데다 불길이 다른 곳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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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