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2번의 사직서 제출로 검찰과 ‘안녕’
참여정부 말 임명돼 BBK 정국, 촛불수사 등 풍운의 1년7개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결국 검찰 수장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명돼 인사청문회부터 BBK 정국과 정권교체, 촛불 수사까지 순탄치 않은 1년7개월 동안 굳건히 버텼던 임 총장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지목되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책임을 짊어졌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직서를 극구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끝내 두 번째 사직서를 내밀었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 원칙을 표방했던 임 총장.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얄궂은 인연이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말기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임 총장에게 수사를 받았고,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임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기가 만료된 정상명 총장의 후임으로 임 총장이 물망에 오른 것.
195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임 총장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무부 검찰국 검사와 검찰 1·2과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2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홍조근정훈장 수상자이기도 하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행정 기획통으로 검찰국장 재직 시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굵직한 현안을 둘러싼 논란에 직언으로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중에는 ‘일심회’ 사건으로 청와대 386인사들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강함’ 탓에 임 총장은 취임부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정 총장의 후임으로 고려되던 인사에 부적격 요인이 나오면서 1순위로 떠올랐지만 참여정부 내에서도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임채진 질긴 인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맺음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상황이어서 혼란스런 대선정국과 정권교체 후 ‘물갈이’까지 헤쳐 나가야 하는 악천후에 놓여 있었다.
한나라당도 4개월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반대했다. 새 정부의 출범을 고려, 정 총장의 퇴임을 늦추거나 직무대행으로 가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결국 ‘비판적 수용’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대통령이 임기가 다된 사람들에 대해 인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목숨 걸고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 편에서 판단하겠다”고 철저한 인사청문회 검증을 다짐하는 등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된 2007년 11월, 예기치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삼성으로부터 ‘관리’를 받아온 검사 명단에 임 총장이 포함됐던 것.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로 주목받고 있던 임 총장이 ‘휘청’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삼성떡값’ 수수 의혹을 집중 추궁 받으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결국 법사위는 ‘조건부 적합’ 취지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라는 의혹에 연루된 후보자가 총장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후보자가 철저한 실체 규명을 다짐하고 있는 이상 제기된 의혹만으로 검찰총장 장애사유는 되기 어렵다”고 그의 임명에 동의한 것.
‘의혹은 있지만 적합’했던 임 총장이 참여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임 총장은 검찰총장직에 오르자마자 BBK 수사라는 시험대에 놓였다. 대선정국을 휩쓸었던 BBK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선이 뒤엎일 수 있어서 여야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BBK 정국 후 ‘공공의 적’
촛불집회 후 검찰 불신 최고조
그러나 결국 검찰은 양쪽 진영 모두에서 ‘공공의 적’으로 내몰렸다. BBK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지어지자 당시 여권은 ‘정치검찰’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임기 도중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눈길도 싸늘했다. 사정 당국의 수장이 전 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라는 사실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도 높아만 갔다. 지난해 여름밤을 수놓은 촛불집회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으며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전 정권 죽이기’라는 오명으로 얼룩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은 ‘검찰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간적인 고뇌 때문”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며 사표를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임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인해 많은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이번 사건을 총 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수사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한 단계 높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내가 검찰을 계속 지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한-아세안 정상회담이라는 국제적 큰 행사가 무탈하게 잘 종료된 이 시점에서 물러나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각종 제언과 비판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개선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이미 밝힌 이번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존중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면서 여론의 공세에 몰린 검찰을 보듬어 안았다.
임 총장은 자신을 임명했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 임기 5개월여를 남기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날들에서 멀어진 것이다.
임 총장은 검찰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뒷말’은 무성하게 남아있다. 임 총장은 재임시절 정권이 바뀌며 4대 사정기관장이 교체되는 와중에 유일하게 유임됐지만 현 정부와 검찰 인사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후임에게 수사를 맡기고 물러서는 방안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번번이 그의 결심을 굳게 한 것은 검찰이 외압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원칙과 수사에 대한 형평성 시비를 막는다는 책임감이었다.
실제 임 총장은 시시때때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대 검찰의 화두” “강한 검찰보다는 바른 검찰을 지향하고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지킬 것” “검찰의 합리적 결정에 외압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온몸을 던져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며 검찰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혀왔다.
때문에 그의 취임에 법조계 안팎에서 “임 총장이 ‘정치 중립’이라는 소신을 지키고 강직한 수사를 한다면 그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그가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뒷말 이는 사퇴
윗선 압력설 ‘솔솔’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BBK 수사와 정권 교체, 촛불집회 수사와 용산참사까지 수많은 사건을 진두지휘해 온 임 총장의 사퇴 배경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검찰 독립을 위해 악전고투해온 임 총장의 사퇴 결정이 “인간적인 고뇌”라는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
실제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임 총장이 임기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사표 제출을 거부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임 총장의 사표 제출에 적지 않은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임 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검찰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데다 불길이 다른 곳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