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일까. 신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된 이헌수 실장이 주식 환매 의혹에 연루돼 곤욕을 치루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만 해도 시끌시끌한데 신임 간부까지 추문에 휩싸이며 국정원은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에 또 하나의 돌발 악재가 터졌다. 이헌수 신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주식 환매 의혹이다. 이 실장은 국정원 해외정보 파트에 근무하던 1999년 수십 명의 부하 직원들에게 지인의 화장품회사인 G사를 홍보했다. G사는 이 실장과 절친한 관계였던 Y씨가 운영하던 회사로 Y씨는 이 실장과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 사이다.
수십명 줄줄이 베팅
이 실장은 Y씨가 지인들로부터 사기를 당해 사정이 어려워지자 Y씨를 돕기 위해 주변에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에게 G사를 소개받은 직원들은 다시 일반인들을 섭외했고, 모두 90여명이 주당 2만원에 비상장 회사인 G사의 주식을 구매했다.
G사의 화장품은 2001년 11월 홈쇼핑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가며 매출이 크게 신장했다. 이 실장의 소개를 받은 투자자들은 지난 2002년 11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주당 3만2000원을 받고 Y씨에게 주식을 환매했다. 투자자 모두가 초기 투자 대비 60%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G사는 2003년 7월 생산된 화장품에서 방부제가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의혹은 이 시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G사의 주식을 샀던 투자자 일부는 이 실장이 미리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그 전에 투자금을 회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또 이 실장 및 국정원 직원들의 환매로 G사가 큰 타격을 입었고, 이 때문에 다른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사실은 Y씨가 G사의 투자자 중 한 명이었던 국정원 전 직원 A씨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재판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Y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이헌수가 본인에게 투자 소개를 한 인원은 90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대부분 국정원 직원들이었고, 50∼60%는 아직도 현직에 있는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지난해 6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같은 사건의 민사재판 증인신문조서를 통해 국정원 직원 20명 이상을 G사에 소개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1인당 투자금액은 1000만에서 2000만원 사이였다고 밝혔다. 이 실장이 Y씨에게 투자를 몰아 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음 문제는 이 실장이 G사의 악재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이 실장은 서울서부지법 증인신문조서에서 "소비자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할 때 Y씨가 수습 방법을 문의하여 내가 소비자단체와 연락을 취했는데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됐다"며 "Y씨에게 혹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환매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다.
실제로 Y씨는 방부제 보도가 터진 7월 이전인 2003년 1∼4월 국정원 직원 등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환매해줬다. 환매 당시 투자수익을 돌려받은 사람은 모두 90여명이었고 이중 이 실장은 모두 9억여원의 투자금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매된 돈은 15억5000여만원이었다.
2003년 7월2일, G사의 방부제 검출 의혹 보도가 전파를 탔다. 전후 사정을 모르고 있던 일반 투자자 상당수는 투자금을 모조리 잃고 '깡통' 신세가 됐다. G사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주식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이 실장이 이 같은 악재를 미리 파악했던 건 분명했다. 남은 건 환매의 강제성 여부.
Y씨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환매해 준 15억여원으로 인해 회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된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특히 "투자자가 국정원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미리 환매해 준 것"이라고 Y씨는 진술했다.
이헌수 실장 부하들에 지인 회사 투자 권유
문제 생기자 투자금 일체반환…압력 있었나
10년이 지난 이 '국정원 환매' 사건은 최근 '댓글 정국'과 맞물려 언론을 통해 재조명됐다.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국정원은 해당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국정원 측은 "Y씨가 회사의 자금 흐름이 나아진 상황에서 투자금 회수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환매해 준 것"이라며 "이 실장이 이미 청와대 인사검증 때 자진 신고까지 했는데 아무 문제없다고 청와대가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실장은 Y씨의 주식을 산적도 없고, 오히려 Y씨가 자금난에 허덕이자 자신의 집을 담보로 내줘 Y씨가 2억여원의 대출을 받았지만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결국 (이 실장이) 집까지 날렸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 역시 "Y씨의 사업이 힘든 상황에서 선의로 직원들을 소개해 준 게 전부"라며 "투자금도 없었고, 돌려받은 돈도 하나 없다"고 해명했다.
Y씨의 민사재판 기록을 살펴보면 1999년 최초 주식 거래 때 국정원 직원들과 G사 간에는 환매 옵션이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3월 환매 당시의 주식 가치에 대해 Y씨는 "주당 2만원에 팔았던 주식을 3만2000원에 환매해준 건 투자자들에게 적당한 이익을 안겨주면서 향후 코스닥에 상장됐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며 "비상장 주식의 가치는 회사가 정하는 게 가격"이라고 진술했다.
이처럼 Y씨는 "환매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실장에게 유리한 상황. 하지만 이 실장의 무리한 투자 몰아주기가 형사 소송을 불렀다는 도의적 책임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반투자자는 깡통
G사의 투자자이자 국정원 전 직원인 A씨는 Y씨를 협박하다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A씨는 이 실장으로부터 G사를 소개받고, 이 회사 주식 3500주를 7000만원에 샀다. 그러나 이 실장의 중개가 화근이었다.
지난 2002년 A씨는 "(이 실장의 투자 유치 사실을) 국정원에 투서하면 당신 친구인 이헌수가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10억원에 되사라고 Y씨에게 요구했다. 더불어 A씨는 이 실장에게도 "당신이 Y씨를 주선했으니 책임지지 않으면 탄원서를 쓰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 실장은 서울 인근에서 Y씨를 만나 A씨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설득했다. Y씨 역시 이 실장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8억원에 A씨의 주식을 되사줬다. 그리고 2009년, 이 실장이 퇴직하자 A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본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A씨와 범행에 가담한 A씨의 아내 B씨에게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고법에서는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A씨의 공갈 혐의를 인정하고, 고법에서 판결된 형을 확정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