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음악으로 말하는 '가왕' 조용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26 18: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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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영원한 오빠…또 다른 전설이 시작됐다

[일요시사=사회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가왕'이라 부르지만 정작 조용필은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자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이름만으로 한국 가요계의 신화가 된 그는 10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 또 다른 전설을 준비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이 노장의 심장은 아직도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쿵쾅댄다.



이미자부터 심수봉, 김광석, 브라운아이즈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한국 대중가요의 쟁쟁한 이름 한복판에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가왕' 조용필.

국내 현존하는
최고의 보컬

지난 2일 음악전문채널 Mnet은 교수와 문화전문기자, 음악평론가, 뮤지션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과 함께 20대 보컬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선정된 명단에는 김건모·김현식·나훈아·송창식·양희은·이선희·인순이·임재범 등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른 가수들이 자리했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의 가장 높은 곳에는 그가 있었다. 바로 '가왕' 조용필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보컬로 조용필을 선택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음악 관계자들은 물론 언론과 대중 모두 조용필을 90년에 달한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갖고 있는 뮤지션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진모의 지적처럼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1이라는 숫자는 조용필을 위해 남겨둬야 할 영구결번이 됐다. '최고의 가수'라는 수식어가 조용필에게 헌정됐기 때문이다. 평단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를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조용필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조용필에 대해  "불우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모든 지점에서 다시 쓴 단 한 명의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영웅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오는 23일 조용필은 정규 19집 <헬로(HELLO)>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3년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10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왕의 귀환'을 앞두고 음악계의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조용필은 지난 16일 온라인에 음원을 선공개했다. 공개된 음원은 <헬로>의 첫 곡 '바운스(Bounce)'였다.

'바운스' 공개에 앞서 조용필의 소속사 YPC프로덕션은 "19집 앨범의 파격과 혁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 바운스"라며 "전 세대가 함께 즐겨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바운스'를 소개했다.

'바운스'는 새 앨범인 <헬로> 중 음악성과 대중성을 가장 훌륭히 매칭한 곡으로 공개 전부터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았다.

통통 튀는 피아노 반주를 시작으로 리듬을 받쳐주는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가 조화를 이루는 이 곡은 예순이 넘은 노장이 부른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트렌디했다. 30여개의 코러스 트랙과 일렉기타가 합류하는 후렴까지 듣고 난 전문가들은 저마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남은 건 대중의 판단이었다.

'바운스'가 공개되자 각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가 요동쳤다. 전날까지 정상을 지켰던 국제가수 싸이의 '젠틀맨'은 2위로 밀려났다. 42개국 아이튠스에서 정상을 지키던 '젠틀맨'은 '왕의 귀환' 앞에 자리를 내줬다. 한국에서만큼은 조용필이 후배 싸이를 누르고 진정한 챔피언이 된 것이다.


'바운스'는 엠넷,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벅스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운스'는 멜론 등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도 5위권 내를 유지했다. 아이돌 가수가 차트를 장악한 현실에서 환갑을 넘긴 노장의 음악이 정상을 차지한 건 그야말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선공개 바운스
감격의 릴레이

조용필의 차트 석권 이후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이제 우리도 부러워만 하고 있던 데이비드 보위나 에릭 클랩튼 같은 거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특히 조용필은 대중이 노래를 듣는 방식이 LP에서 TAPE로 CD에서 디지털음원으로 바뀌는 과정마다 1위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한 음반유통사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 네 종류의 앨범으로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조용필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거장의 복귀에 후배 가수들은 일제히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가수 윤종신은 "형님께서 오셨습니다"라는 말로 조용필의 귀환을 알렸고, 가수 주석은 "조용필 19집 신곡 대박이네요. 이건 형용하기 힘든 여러 가지가 응축된 느낌. 곡이 소리의 질감에서부터 짜임새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다가 극도로 절제되고 정돈되면서도 화려함이 있는 목소리. 조 선생님은 월드 '스타'가 아닌 진정한 한국대표 월드 '클래스' 뮤지션입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새 음원 바운스 선공개 "파격 또 파격" 극찬
모든 음원사이트 1위 등극…열풍에 전국 들썩

아이돌 가수들의 칭찬 릴레이도 이어졌다. '빅뱅'의 태양은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라고 감탄했고, '샤이니'의 종현은 “말이 필요 없지요. 들어보세요. 존경해요. 선생님"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또 작곡가 김형석은 "이런 아티스트가 든든하게 큰 형님으로 계셔주니 우린 얼마나 복 받은 뮤지션들인가. 명불허전입니다"라고 극찬했고,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바운스'를 들어보니 전반의 진행이나 후렴구 구성이 대중적이면서도 절제해야 할 때는 칼같이 세련됐다. 조용필의 나이가 올해로 예순 넷이다. 다른 수록곡들도 빨리 들어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만화가 강풀도 "조용필님 신곡 반복해서 듣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지치지 않는 저런 창작자분이 존재한다는 것에도 감동할 판인데 예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음악이 너무 좋다"고 의견을 보탰다.

이외에도 가수 태연, 린, 타블로, 허각 등 후배 가수들과 작곡가 윤일상, 돈스파이크 등 음악계 관계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까지 '바운스' 열풍에 가세했다.

음원사이트 운영자들은 아무리 '가왕'이지만 이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예상치 못한 분위기다. 10년간의 긴 공백과 현재 음원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10대부터 20대까지의 젊은 소비자가 아이돌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특성을 감안할 때 '바운스' 열풍은 의외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예상을 뒤엎고 화려하게 귀환했다. 1991년 자신의 대표곡인 '꿈'을 마지막으로 방송 은퇴를 선언한 그는 22년이 흐른 2013년에도 그 흔한 방송 출연 없이 정상을 꿰찬 것이다.


원조 'JYP'
화려한 부활

지난 2005년 평양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공연. 7000여명의 북한 관객은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감췄던 눈물을 쏟았다. 2008년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데뷔 40주년 콘서트 '더 히스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5만여명의 관객이 '조용필'을 연호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비록 대중에게 자주 노출된 건 아니었지만 그의 노래는 공간과 시대를 넘어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조용필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전남 소록도에서 2년 연속 공연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콘서트 수익금을 소아암 환자 500명을 위해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명성에 걸맞은 행보였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세와 함께 조용필의 잊혔던 명곡들은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용필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히트곡은 어림잡아 50곡. 한 가수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히트곡을 조용필은 50곡이나 불렀다는 얘기다. '단발머리',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은 지금도 수없이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못찾겠다 꾀꼬리' 등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 받으며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용필이 가수로서 걸어온 길은 늘 최초이자 최고였다. 1980년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그는 1986년 일본에 진출, <추억의 미아1>이라는 음반을 발매해 그해 골든디스크를 받았다. NHK의 간판 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에 초청받은 한국인도 조용필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조용필이 기록한 음반 판매량은 모두 600만장에 달한다. 조용필에게 '한류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조용필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애트킨스, 조용필과 그림자 등 밴드 생활을 하며 긴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오른 것도 잠시 조용필은 대마초 흡연 혐의로 1977년 모든 방송에서 출연을 금지 당한다.

그러나 조용필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9년 '창밖의 여자'를 히트시키며 정상에 오른 그는 '친구여' '허공' 등으로 연이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는 누가 뭐래도 조용필의 시대였다.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은 그를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정상에 안주하지 않았다. 조용필은 늘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마주섰고, 급기야는 방송 은퇴를 선언하며 가수가 있어야 할 무대와 노래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조용필은 록부터 발라드, 포크, 트로트, 창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본인은 늘 겸손했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음악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용필의 이 같은 자기 성찰과 혁신은 이번 19집인 <헬로>로까지 이어졌다. 조용필의 끊임없는 자기 쇄신이 이뤄낸 결과물이 ‘헬로’라는 것.

지난 2일 조용필의 소속사 YPC는 서울 서초구 YPC에서 '미디어 리스닝 파티'를 열었다. 이날 공개된 앨범 <헬로>는 "스스로 만족하는 법이 없다"는 조용필의 프로 의식이 그대로  묻어난 걸작이었다. 조용필은 '헬로'를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60대가 부른 노래라고는 믿기 힘든 곡들이 귓가를 울렸다다. 이번에 선공개된 '바운스'를 시작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된 '충전이 필요해', 앨범 티저영상에 사용된 '서툰 바람' 등이 리스너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래퍼 버벌진트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헬로'는 펑키한 기타 사운드를 배경으로 세련된 멜로디 라인을 뽐내 외국의 유명 팝 밴드인 '마룬5'의 곡들과도 비교됐다.

'가왕'의 면모를 뽐낸 발라드 '걷고 싶다', 시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어느 날 귀로에서' 등은 조용필의 올드팬들도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앨범 전곡을 들은 한 관계자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라며 <헬로>의 감동을 전했다. 첫사랑의 설렘, 사랑 고백, 이별 등이 뒤섞인 남자의 일생이 앨범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이었다.

<헬로>는 원래 3월 이전에 녹음은 물론 마스터링까지 끝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앨범을 조용필이 반대했다. 대중에게 내놓기에는 다소 부족하단 것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헬로>가 완성됐다. 

<헬로>는 201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엔지니어’ 부문 후보에 오른 토니 마세라티가 믹싱을 맡았으며, 세계적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영국의 이언 쿠퍼가 마스터링을 맡아 그 완성도를 높였다. 세계적인 엔지니어들과 월드 클래스 뮤지션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그는 늘 최초이자 최고"
한계없는 전천후 뮤지션

조용필은 음악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그의 집에 있는 수많은 앨범들은 조용필의 음악적 깊이를 대변한다. 비틀즈나 마빈 게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크 플로이드, AC/DC, 폴리스, 스팅, 퀸 나아가 메탈리카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 음악적 탐구는 지금의 조용필을 있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다. 후배들과의 교류도 마찬가지.

오는 23일, 조용필이 직접 <헬로> 전곡을 공개하는 '프리미어 쇼 케이스'가 예정된 가운데 이 자리에는 자우림, 박정현, 국카스텐, 버벌진트, 팬텀, 이디오테잎 등 후배 가수들이 함께한다. 젊은 가수들의 홍보 방식인 '쇼 케이스'를 차용한 점도 놀랍지만 많은 후배 가수들이 출연을 자처했다는 것도 조용필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자연스레 <헬로>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조짐은 좋다. '바운스'로 화제를 모은 만큼 후속곡들도 세대를 넘나드는 관심을 받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음원의 수준이 높은 만큼 수준 이하의 후크송을 쏟아내는 가요계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해석도 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과거 명성만 갖고 안주해 온 가수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라며 조용필의 신보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도 "환갑이 넘는 나이에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포용력이 충격적이었다"며 "결국 우리가 음악을 시작하도록 이끌어준 분이 '음악 시장은 결국 음악'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고 말했다.

음악시장은
"결국 음악"

현재 조용필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방송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 음악으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가왕'의 고집일 것이다. 조용필은 오는 5월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조용필은 전국 투어 '헬로'를 이어간다. 현재 이 공연은 주요 공연 티켓 예매 순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조용필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조용필 히트곡>

  

▲1979년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단발머리/ 한오백년/ 돌아오지 않는 강/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정/ 대전블루스>
▲1980년 <축복(촛불)/ 잊기로 했네>
▲1981년 <강원도 아리랑/ 고추잠자리/ 님이여/ 미워 미워 미워/ 여와 남>
▲1982년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
▲1983년 <산유화/ 친구여/ 한강/ 나는 너좋아>
▲1984년 <바람과 갈대/ 그대 눈물이 마를때/ 눈물의 파티/ 정의 마음>
▲1985년 <눈물로 보이는 그대/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1985년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
▲1987년 <마도요/ 그대 발길 머무는곳에/ 진실한 사랑>
▲1988년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I love 수지/ 우주여행X>
▲1989년 <Q/ 꽃이 되고 싶어라/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1990년 <추억 속의 재회/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1년 <꿈/ 아이마미>
▲1992년 <슬픈 베아트리체/ 흔적의 의미>
▲1995년 <남겨진 자의 고독/ 끝없는 날개짓 하늘로>
▲1997년 <그리움의 불꽃/ 바람의 노래>
▲1998년 <친구의 아침/기다리는 아픔/영혼의 끝날까지/내 삶의 이유/작은 천국/처음느낀사랑이야>
▲2003년 <태양의 눈/오늘도/꿈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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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