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스캔들' 역풍 내막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22 1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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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경·검 "게임은 지금부터"

[일요시사=사회팀] 경찰이 고위층 성접대 의혹을 수사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결과물은 초라하다. 핵심 피의자 소환은커녕 증거 확보조차 미흡한 상황. 이 가운데 경찰은 지휘부 및 총경급 인사를 단행하며, 성접대 수사 지휘부를 모조리 교체했다. 처음부터 의혹만으로 덤볐던 수사. 예고됐던 '성접대 수사' 역풍이 불고 있다.

검찰을 겨눴던 경찰의 칼끝이 무뎌진 사이 경찰이 들고 있던 칼을 청와대가 뺏었다. '성접대 스캔들' 역풍이 그 서막을 알린 것이다.

인사 쓰나미

경찰은 지난 15일 있었던 경무관 인사에서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을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전보 조치했다.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대형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를 총괄하는 경찰 내 요직으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011년 신설한 자리다. 무엇보다 수사기획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사권 독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리기도 하다.

첫 수사기획관은 '수사권 독립'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황운하 경무관이 맡았다. 황 경무관은 부임과 동시에 김광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 스캔들을 터트리며 이른바 '검경 갈등'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황 경무관은 지난해 11월 수사기획관에서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수사기획관의 역할과 위상을 고려할 때 사실상 좌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찰과 마찰을 빚었던 황 경무관을 청와대가 부담스러워 했다는 전언도 들렸다. 실제로 조 전 청장은 지난해 4월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2011년 초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청와대의 반대로 승진시키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혹 한달째' 증거 미흡 등 수사 지지부진
수사 라인 경질…지휘부 대폭 물갈이 예고

황 경무관에 이어 지난해 수사국 사령탑에 오른 인물이 바로 이 전 기획관이다. 이 전 기획관은 경찰대 1기로 황 경무관과 동기다.

경찰대 1기는 경찰 내에서 소위 '강경파'로 분류된다. 수사권 독립을 처음 부르짖은 것도 경찰대 1기이며, 검찰의 수사 지휘에 반기를 든 것도 모두가 경찰대 1기였다. 경찰대 1기인 이 전 기획관 역시 검경 힘겨루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부임을 전후로 검찰을 겨냥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

지난 2월 이른바 '별장 성접대'로 불리는 동영상의 존재가 외부로 노출됐다. 타깃은 검찰이었다. 사회 고위층 다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성접대 의혹'의 키맨은 바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었다.

경찰의 전략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언론을 창구로 활용해 검찰을 압박했고, 출금금지 요청을 통해 김 전 차관의 실명을 간접적으로 오픈했다. 결론적으로 김 전 차관은 내정 6일 만에 성추문 의혹으로 옷을 벗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을 검찰총장 후보로까지 염두에 뒀던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 수사에 대노했다고 전해진다. 최초 검찰을 겨냥했던 '성접대 스캔들'은 엉뚱하게도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결과로 귀결되면서 정부의 심기를 건드는 역효과를 불렀다.


성접대 수사를 통해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했던 경찰은 조직의 수장인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문책성 경질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비(非) 경대 라인인 이성한 경찰청장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며 신임 경찰청장으로 취임했다.

경찰청장 인사 전 안팎에서는 경찰대 1기 출신인 강경량 전 경기청장의 인선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다. 그러나 강 전 청장은 치안총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정복을 벗었다. 그래서 이 청장의 취임은 경찰대에 대한 보복성 인사라는 푸념이 들렸다. 성접대 수사를 계기로 청와대가 경찰대에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이 청장은 경찰대를 압박했다. 지난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경찰대 정원을 줄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검란 사태'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경찰대 축소론과 폐지론이 경찰 내부 인사에 의해 탄력을 받게 된 형국이었다.

성접대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수사 한 달이 되도록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Y씨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Y씨에 대한 소환조사는 물론이고, 그 실체가 부풀려진 '동영상'의 진위 여부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수사는 진퇴양난에 빠졌고 이 청장은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지난 15일 있었던 경무관급 인사에서 이 전 기획관은 황 경무관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됐다. 경찰 수사라인의 중추에서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좌천된 것이다. 또 이번 성접대 수사 책임자인 김학배 본청 수사국장은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지난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 '검란' 직후 전주지검으로 좌천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사였다.

출구 전략없어 진퇴양난
검찰 대반격 슬슬 시동

안전행정부 관할인 경찰 인사에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경무관급 인사는 반드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 청와대는 이번 경무관급 인사에서 경찰청 교육정책관을 비롯해 충북·대전·광주·강원·울산·대구지방청 차장 등 경무관급 7개 자리를 공석으로 남겼다. 경찰대 출신이 대거 포함된 승진을 청와대가 가로 막은 것. 성접대 수사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지난 18일 경찰은 총경급 300명에 대한 정기 인사를 추가로 단행했다. 안팎의 시선은 성접대 수사를 맡고 있는 범죄정보과에 쏠렸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반기수 범죄정보과장은 경기 성남 수정경찰서장으로 이동했다.

범죄정보과는 이번 성접대 수사를 기획한 부서로 경찰 수사권 독립의 총아다. 이런 까닭에 반 과장의 인사이동은 범죄정보과의 존립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범죄정보과는 경찰청 정식 직제가 아닌 까닭에 청장 임의로 언제든 해체가 가능한 조직이다.

친 법조계 성향의 박근혜정부도 범죄정보과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사 출신인 곽상도 민정수석은 성접대 수사 착수 후 경찰과 드러나지 않은 마찰을 빚어왔다. 이번 수사 여하에 따라 범죄정보과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칼 뺏은 청와대

현재 성접대 수사를 주도하는 특수수사팀 간부 대부분은 경찰대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을 지휘할 후임은 모두 비 경대 출신이다. 최현락 수사국장은 사법시험 특채, 허영범 수사기획관은 간부 후보 출신이다. 자의든 타의든 경찰은 이번 인사에서 경찰대를 배제함으로써 검경 다툼에서 한 발 물러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던 핵심 인물들이 대거 퇴진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물건너 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수사권을 얻기 위해 갈았던 '칼'을 청와대가 휘두르면서 거꾸로 '경찰 개혁'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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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