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만상> '시월드 능가하는' 처월드

백년손님 옛말…생활비 대주고 기사노릇까지

[일요시사=사회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최근 ‘시월드’에 이은 ‘처월드’로 고민하는 남성이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고부갈등이 대세였던 반면 최근에는 장모와 사위간의 장서갈등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요즘시대 사위들의 가장 큰 고민 처월드. 시월드를 능가한 처월드의 무시무시한 실체를 공개한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 <오자룡이 간다>는 장모와 사위지간인 장백로(장미희 분)와 오자룡(이장우 분)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시청자는 비단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일부 포함됐는데, 일부 남성 시청자들이 오자룡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며 전면 공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 이혼율이 급증한 원인에 처월드가 일부 작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된 원인에는 과거 ‘백년손님’으로 불리던 사위를 지금은 철저하게 출가외인으로 취급하는 처가 식구들이 급증하는데 있었다. ‘처월드 증후군’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집중 취재했다.

처가댁 생활비
월 300만원

익명을 요구한 20대 후반의 한 기혼남성은 ‘거지근성’에 찌든 처가댁 식구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호소했다. 1살 연하의 처와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결혼한 지 만 2년도 채 안 된 아직 젊은 남성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합격한 뒤 직장을 얻었으나 현재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등 성실하게 살아왔다.      

고정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업 특성상 몫이 좋을 때는 월 1000만원까지 벌고, 몫이 안 좋을 때는 200만원 정도 벌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들쑥날쑥한 수익 때문에 만 2년 동안 2억원 정도 모아 뒀고 아내는 집에서 전업주부로 가사와 양육에 힘쓰고 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처월드’ 식구들이 그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기면서 사이가 하나둘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를 제외한 처가 식구들은 장인과 장모, 결혼한 큰오빠, 아직 대학교에 재학 중인 작은오빠, 막내 여동생으로 대가족이다. 결혼식을 치를 때도 양가 부모님께 손 한번 안 벌리고 혼식비와 신혼여행 모두 자신의 돈으로 해결했다는 남성은 해가 갈수록 뻔뻔해지는 처월드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갈 뻔했다고 말했다.


고부갈등? 장모-사위 장서갈등 화두
트러블 시작은 경제적 부담 떠넘기기

그의 말에 따른 처가댁 식구들의 태도는 상상 이상으로 뻔뻔했다. 장인은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나이 때문에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었고, 장모는 식당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었다. 장인·장모는 생계를 꾸려갈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되지만 문제는 이들의 자식들이었다.

큰처남의 경우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돈을 빌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남성보다 1살 연상인 작은처남은 매제에게 매달 용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휴학기간에 공부는커녕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백수놀음을 한다는 것이다. 막내인 여동생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남자관계가 복잡한 처제는 전형적인 된장녀였다. 어릴 때부터 공주처럼 자라온 막내처제는 명품과 술, 남자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고, 형부에게 매일 용돈을 타서 쓰고 있었지만 이를 당연시하게 생각했다.

젊었을 때 뭣도 모르고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막심이라며 한탄한 이 남성은 결혼 후 지금까지 처월드 식구들을 부양하고 살아가는데, 정작 자신의 부모에겐 이렇다 할 효도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처가댁에는 매달 300만원 가까이 소비하고 있지만, 꾸려갈 가정생계를 위해 본가에는 월 10만원도 채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

남성은 “아내랑 결혼한 게 아니라 마치 처가댁 식구들 모두와 결혼한 것 같다. 애도 둘이나 되고, 모은 돈 2억으로 앞으로 집도 더 크게 불리거나 현재 사무실도 넓게 확장해서 사람도 고용해야하는데 거지근성으로 똘똘 뭉친 양심 없는 처월드때문에 야망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울화가 치민다”고 격분했다.

친정 우선시 아내
무시하는 장모

최근 4년의 결혼생활을 마지막으로 이혼을 한 남성 김모(34)씨는 친정을 우선시하는 아내와 늘 무시하는 장모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 아내가 제사가 있거나 명절 때는 시댁에 가긴 하지만 친정에는 가족행사다 모임이다 이거저것 핑계를 대며 친정을 늘 우선시하는 모습에 김씨는 아내의 행동이 평소 못마땅했다. 하지만 김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장모였다.


이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장모는 “사위가 무능력하다” “내 딸보다 잘난 게 도대체 뭐가 있냐”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었는데 결혼을 허락한 내 실수다” 등의 말로 상처를 주며 늘 아내 편에서 김씨를 무시하는 행동에 결국 4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임모(37)씨는 처가의 돈 욕심과 장모의 바가지에 아내와의 사이도 틀어진 상태라고 했다. 임씨가 재직하는 회사는 연봉과 상여금, 보너스가 높은 편이었지만 새벽3∼4시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등 체력에 한계를 느낄 만큼 힘들었다고 전했다. 주말에 출근하는 것 또한 예사였고 매일 2∼3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기계같은 삶을 살았다.

백수 처남·된장녀 처제에 따박따박 용돈
인격모독 기본…따귀에 무릎 꿇고 빌기도

취미생활 한번 가져본 적 없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다가 몸만 병들고 삶이 피폐해질 것만 같아 큰맘 먹고 이직을 결심했다. 임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이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공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이었지만 아내를 비롯한 처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고민이었다고 한다.  

반대 수위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장모는 사돈댁, 즉 임씨의 부모에게 전화해 “임서방이 퇴사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구했고, 장인과 처남은 막무가내로 임씨 내외 집으로 찾아와 “가장의 자세가 돼있지 않다” “내 딸 어떻게 먹여 살릴거냐” 등 욕과 막말을 섞어가며 인신모독을 했다. 당시 임씨는 쪽잠이라도 자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처월드 식구가 새벽 3시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난동을 피운 것이었다. 야근을 하고 온 터라 주말에 얘기하자는 임씨의 의견은 무참히 묵살됐고, 아내는 그 옆에서 “아빠가 말씀하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감히 자러 들어가느냐”고 소리쳤다. 그날 오만정이 다 떨어진 임씨는 이혼 직전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처가댁에서 임씨의 진로를 받아들여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했다.

한고비 넘겼다 싶었는데 임씨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장인이 신장투석 중이라는 것. 임씨의 아내와 처남은 장인과 혈액형이 전혀 달라 신장이식이 불가능했지만 공교롭게도 임씨와 장인의 혈액형이 일치했다. 조직검사를 전부 확인한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당장 장인에게 신장이식을 해달라며 뻔뻔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는 거라며. 가장 운운하며 인격모독 할 때는 언제고, 조직이 일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식을 요구하는 처월드 때문에 임씨는 요즘 단 하루도 편하게 살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임씨는 매일같이 신장이식을 요구하는 처월드의 협박 문자와 전화 때문에 현재는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집살이보다
힘든 사위살이

30대 회사원 박모(35)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위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씨의 아내는 산후조리와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길 원했고, 박씨 또한 그게 훨씬 안정적이고 경제적 부담도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 장모에게 아이를 맡기며 집도 처가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옮겨 이사를 했다. 무려 왕복 4시간이라는 장시간의 출퇴근길이 곤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믿고 맡기는 아이 보육소 처가댁이 있어 안심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곤욕스러운 사위살이는 박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장모의 부탁에 걸핏하면 기사노릇을 해야 했고, 마치 아들 대하듯 명령과 요구가 당연시 돼버렸다, 장모의 바람은 끝을 몰랐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장거리 기사 노릇을 하던 어느 날, 박씨와 장모 간 본격적인 장서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모는 전날 회식으로 과음을 한 박씨에게 언제나 그랬듯 장거리 운전을 시켰다. 박씨는 숙취가 채 깨기도 전에 200km가 넘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치밀었고, 음주운전으로 걸릴 수도 있을 거란 불안감마저 들었다. 이에 박씨는 장모에게 “어머님.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가시면 어떨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장모는 울그락불그락 열을 올리며 “미리 약속하지 않았냐. 사람이 신뢰가 부족하다” “그렇게 성실하지 못해서 어떻게 가장이라고 할 수 있냐” “기껏 애들 키워줬더니 기사노릇도 못하고 돈이나 잘 벌면서 아이를 맡기지…”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마음에 비수를 꽂은 장모의 막말에 자존심이 찢겨진 박씨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더 이상 네 엄마 기사노릇 못 하겠다”며 사위살이를 청산했다. 아이도 다시 집으로 데려와 아내에게 맡겼다.

박씨는 “장모님이 멀리 있었을 땐 정말 인자하시고 좋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지내니 정말 볼꼴 못 볼꼴 다 봤다. 시월드나 처월드나 어느 한쪽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양가 부모 집과 떨어져 지내는 게 차라리 속 편하고 부부갈등을 최소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월드 아닌
처월드 대세        

이처럼 예전에는 시월드로 고생하는 여성이 많았던 반면에 최근에는 처월드로 속앓이를 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부부싸움 후 아내가 친정을 가게 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냈던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딸 때문에 사위를 꾸짖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남성은 부부갈등 때문에 장모 앞에서 따귀는 물론 무릎 끓고 빌기까지 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양성평등의 시대가 되면서 여성들의 위치가 올라감에 따라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더 늘어가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부부 간에 다툼이 생겨 가정생활에 갈등이 생긴다면 ‘시월드’나 ‘처월드’로 더 큰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일차적으로 서로 이해와 수용으로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김지선 기자 <jis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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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