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만상> '시월드 능가하는' 처월드

백년손님 옛말…생활비 대주고 기사노릇까지

[일요시사=사회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최근 ‘시월드’에 이은 ‘처월드’로 고민하는 남성이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고부갈등이 대세였던 반면 최근에는 장모와 사위간의 장서갈등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요즘시대 사위들의 가장 큰 고민 처월드. 시월드를 능가한 처월드의 무시무시한 실체를 공개한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 <오자룡이 간다>는 장모와 사위지간인 장백로(장미희 분)와 오자룡(이장우 분)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시청자는 비단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일부 포함됐는데, 일부 남성 시청자들이 오자룡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며 전면 공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 이혼율이 급증한 원인에 처월드가 일부 작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된 원인에는 과거 ‘백년손님’으로 불리던 사위를 지금은 철저하게 출가외인으로 취급하는 처가 식구들이 급증하는데 있었다. ‘처월드 증후군’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집중 취재했다.

처가댁 생활비
월 300만원

익명을 요구한 20대 후반의 한 기혼남성은 ‘거지근성’에 찌든 처가댁 식구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호소했다. 1살 연하의 처와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결혼한 지 만 2년도 채 안 된 아직 젊은 남성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합격한 뒤 직장을 얻었으나 현재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등 성실하게 살아왔다.      

고정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업 특성상 몫이 좋을 때는 월 1000만원까지 벌고, 몫이 안 좋을 때는 200만원 정도 벌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들쑥날쑥한 수익 때문에 만 2년 동안 2억원 정도 모아 뒀고 아내는 집에서 전업주부로 가사와 양육에 힘쓰고 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처월드’ 식구들이 그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기면서 사이가 하나둘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를 제외한 처가 식구들은 장인과 장모, 결혼한 큰오빠, 아직 대학교에 재학 중인 작은오빠, 막내 여동생으로 대가족이다. 결혼식을 치를 때도 양가 부모님께 손 한번 안 벌리고 혼식비와 신혼여행 모두 자신의 돈으로 해결했다는 남성은 해가 갈수록 뻔뻔해지는 처월드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갈 뻔했다고 말했다.


고부갈등? 장모-사위 장서갈등 화두
트러블 시작은 경제적 부담 떠넘기기

그의 말에 따른 처가댁 식구들의 태도는 상상 이상으로 뻔뻔했다. 장인은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나이 때문에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었고, 장모는 식당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었다. 장인·장모는 생계를 꾸려갈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되지만 문제는 이들의 자식들이었다.

큰처남의 경우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돈을 빌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남성보다 1살 연상인 작은처남은 매제에게 매달 용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휴학기간에 공부는커녕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백수놀음을 한다는 것이다. 막내인 여동생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남자관계가 복잡한 처제는 전형적인 된장녀였다. 어릴 때부터 공주처럼 자라온 막내처제는 명품과 술, 남자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고, 형부에게 매일 용돈을 타서 쓰고 있었지만 이를 당연시하게 생각했다.

젊었을 때 뭣도 모르고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막심이라며 한탄한 이 남성은 결혼 후 지금까지 처월드 식구들을 부양하고 살아가는데, 정작 자신의 부모에겐 이렇다 할 효도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처가댁에는 매달 300만원 가까이 소비하고 있지만, 꾸려갈 가정생계를 위해 본가에는 월 10만원도 채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

남성은 “아내랑 결혼한 게 아니라 마치 처가댁 식구들 모두와 결혼한 것 같다. 애도 둘이나 되고, 모은 돈 2억으로 앞으로 집도 더 크게 불리거나 현재 사무실도 넓게 확장해서 사람도 고용해야하는데 거지근성으로 똘똘 뭉친 양심 없는 처월드때문에 야망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울화가 치민다”고 격분했다.

친정 우선시 아내
무시하는 장모

최근 4년의 결혼생활을 마지막으로 이혼을 한 남성 김모(34)씨는 친정을 우선시하는 아내와 늘 무시하는 장모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 아내가 제사가 있거나 명절 때는 시댁에 가긴 하지만 친정에는 가족행사다 모임이다 이거저것 핑계를 대며 친정을 늘 우선시하는 모습에 김씨는 아내의 행동이 평소 못마땅했다. 하지만 김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장모였다.


이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장모는 “사위가 무능력하다” “내 딸보다 잘난 게 도대체 뭐가 있냐”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었는데 결혼을 허락한 내 실수다” 등의 말로 상처를 주며 늘 아내 편에서 김씨를 무시하는 행동에 결국 4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임모(37)씨는 처가의 돈 욕심과 장모의 바가지에 아내와의 사이도 틀어진 상태라고 했다. 임씨가 재직하는 회사는 연봉과 상여금, 보너스가 높은 편이었지만 새벽3∼4시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등 체력에 한계를 느낄 만큼 힘들었다고 전했다. 주말에 출근하는 것 또한 예사였고 매일 2∼3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기계같은 삶을 살았다.

백수 처남·된장녀 처제에 따박따박 용돈
인격모독 기본…따귀에 무릎 꿇고 빌기도

취미생활 한번 가져본 적 없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다가 몸만 병들고 삶이 피폐해질 것만 같아 큰맘 먹고 이직을 결심했다. 임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이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공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이었지만 아내를 비롯한 처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고민이었다고 한다.  

반대 수위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장모는 사돈댁, 즉 임씨의 부모에게 전화해 “임서방이 퇴사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구했고, 장인과 처남은 막무가내로 임씨 내외 집으로 찾아와 “가장의 자세가 돼있지 않다” “내 딸 어떻게 먹여 살릴거냐” 등 욕과 막말을 섞어가며 인신모독을 했다. 당시 임씨는 쪽잠이라도 자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처월드 식구가 새벽 3시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난동을 피운 것이었다. 야근을 하고 온 터라 주말에 얘기하자는 임씨의 의견은 무참히 묵살됐고, 아내는 그 옆에서 “아빠가 말씀하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감히 자러 들어가느냐”고 소리쳤다. 그날 오만정이 다 떨어진 임씨는 이혼 직전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처가댁에서 임씨의 진로를 받아들여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했다.

한고비 넘겼다 싶었는데 임씨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장인이 신장투석 중이라는 것. 임씨의 아내와 처남은 장인과 혈액형이 전혀 달라 신장이식이 불가능했지만 공교롭게도 임씨와 장인의 혈액형이 일치했다. 조직검사를 전부 확인한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당장 장인에게 신장이식을 해달라며 뻔뻔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는 거라며. 가장 운운하며 인격모독 할 때는 언제고, 조직이 일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식을 요구하는 처월드 때문에 임씨는 요즘 단 하루도 편하게 살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임씨는 매일같이 신장이식을 요구하는 처월드의 협박 문자와 전화 때문에 현재는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집살이보다
힘든 사위살이

30대 회사원 박모(35)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위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씨의 아내는 산후조리와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길 원했고, 박씨 또한 그게 훨씬 안정적이고 경제적 부담도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 장모에게 아이를 맡기며 집도 처가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옮겨 이사를 했다. 무려 왕복 4시간이라는 장시간의 출퇴근길이 곤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믿고 맡기는 아이 보육소 처가댁이 있어 안심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곤욕스러운 사위살이는 박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장모의 부탁에 걸핏하면 기사노릇을 해야 했고, 마치 아들 대하듯 명령과 요구가 당연시 돼버렸다, 장모의 바람은 끝을 몰랐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장거리 기사 노릇을 하던 어느 날, 박씨와 장모 간 본격적인 장서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모는 전날 회식으로 과음을 한 박씨에게 언제나 그랬듯 장거리 운전을 시켰다. 박씨는 숙취가 채 깨기도 전에 200km가 넘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치밀었고, 음주운전으로 걸릴 수도 있을 거란 불안감마저 들었다. 이에 박씨는 장모에게 “어머님.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가시면 어떨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장모는 울그락불그락 열을 올리며 “미리 약속하지 않았냐. 사람이 신뢰가 부족하다” “그렇게 성실하지 못해서 어떻게 가장이라고 할 수 있냐” “기껏 애들 키워줬더니 기사노릇도 못하고 돈이나 잘 벌면서 아이를 맡기지…”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마음에 비수를 꽂은 장모의 막말에 자존심이 찢겨진 박씨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더 이상 네 엄마 기사노릇 못 하겠다”며 사위살이를 청산했다. 아이도 다시 집으로 데려와 아내에게 맡겼다.

박씨는 “장모님이 멀리 있었을 땐 정말 인자하시고 좋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지내니 정말 볼꼴 못 볼꼴 다 봤다. 시월드나 처월드나 어느 한쪽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양가 부모 집과 떨어져 지내는 게 차라리 속 편하고 부부갈등을 최소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월드 아닌
처월드 대세        

이처럼 예전에는 시월드로 고생하는 여성이 많았던 반면에 최근에는 처월드로 속앓이를 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부부싸움 후 아내가 친정을 가게 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냈던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딸 때문에 사위를 꾸짖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남성은 부부갈등 때문에 장모 앞에서 따귀는 물론 무릎 끓고 빌기까지 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양성평등의 시대가 되면서 여성들의 위치가 올라감에 따라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더 늘어가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부부 간에 다툼이 생겨 가정생활에 갈등이 생긴다면 ‘시월드’나 ‘처월드’로 더 큰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일차적으로 서로 이해와 수용으로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김지선 기자 <jis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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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