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시회팀] 북한의 미사일 도발, 국내 언론 및 금융기관 전산해킹 도발도 소용없다. 최근 우리나라에 퍼진 안보불감증은 실로 심각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북한 도발에 외신들마저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피해에 가장 근접해있는 우리나라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전쟁 도발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한국인의 안보불감증.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내 생일인데 김정은이 생일 축하 기념으로 폭탄 쏜단다. 풍악을 울려라.”
SNS를 통해 어떤 이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비아냥거리듯 평온한 심경을 내비쳤다. 지난 10일 북한은 동해 인근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전국의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코웃음을 치며 북한의 전쟁위협과 도발에 대한 걱정을 날려버렸다. 반면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북한의 언제 튈지 모르는 도발 탓에 국내에 머물고 있던 원어민 강사를 비롯한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나둘씩 고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바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안보불감증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그 심각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외국인 짐 싸는데…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3명은 안보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끼면서도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은 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 안보의식이 위중한 한반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안보불감증에 대한 우려가 표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보 상황의 견해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71.0%가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이 현저히 낮아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심각하다는 응답은 세대별로 50대에서 75.3%, 20대에서 75%의 비율로 1, 2위를 차지했다. 이런 심각한 안보 상황에서 국민 의식 수준은 무려 71.4%가 낮다고 답변한 것이다.
모노리서치 역시 전국 성인남녀 1164명을 대상으로 전쟁 위기 정도를 물은 결과, 과반수 이상인 62.4%가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전쟁의 위험까진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어 ‘대단히 심각한 전쟁 직전의 국사적 위시 상황’이 19.2%로 2위를,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과 대응으로 전혀 전쟁 위험이 없다’가 18.4%로 3위를 차지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장모(57)씨는 “정초부터 북한핵실험이다 뭐다 불안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내 주변에 어느 누구도 안보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는 이가 없다. 북한도발 위협건만 벌써 수차롄데 아무 일도 없으니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해이해졌다. 한국에 거주했던 외국인들도 불안감 증폭에 짐 싸고 떠날 판인데 정작 국민들은 만사평온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이 낮다는 응답은 새누리당 지지자가 71.9%, 민주통합당 지지자가 75.8%로 여당보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국민의 안보의식수준에 대해 더 많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진영에서조차 안보불감증에 우려가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난 것. 세대별로는 20대가 83.4%로 국민의 낮은 안보의식 수준을 가장 걱정했다.
대학생 안모(25)씨는 “우리나라 국민의 안보불감증은 심각하다 못해 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재기나, 무질서가 난무하는 분위기에서 자기 살길만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의식에 대해 한번쯤은 깊게 생각해볼 필요성은 있다. 남과 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안보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한데 왜 이를 대비하지 않고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는지 한심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10명 중 6명 “전쟁 위험 느끼지 않는다”
국내보다 미국·일본 등 외국 더 호들갑
반면 높다는 응답은 고작 23.2%에 그쳤다. 직장인 김모(30)씨는 “북의 반응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딱히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는 일은 일반 국민들이 나서기보다 군과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 국민들은 정부와 군을 믿고 동요 없이 일상생활에 충실 하는 것이 튼튼한 안보태세를 확립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내세웠다.
북한의 도발 위협은 서울, 워싱턴 등 특정 지역을 지목해 핵무기 정밀타격을 운운할 만큼 막장에 치닫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한 국방부와 국정원, 더 나아가서는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안보불감증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북한의 위협이 수십 년간 반복돼왔지만 피부에 닿는 큰 타격은 없어 ‘이번에는 또 뭐야?’라는 느슨해진 마음가짐으로부터 비롯됐다.
안보의식 해이는 비단 국민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현역 장병 상당수도 군의 기강해이와 안보불감증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데일리NK>가 현역장병 100명을 대상으로 1:1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귀순 사건의 원인에 대해 65%가 ‘안보불감증 및 근무기강 해이’라고 응답했다. 이어 ‘감시 장비 및 경계병력 부족’이 32%로 뒤를 이었다.
군내 지휘 라인의 허위 보고와 관련 ‘일선 군부대 내에서 허위보고가 많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36%의 장병들은 ‘거의 없다’고 답했으며 ‘보통’이라고 한 장병 또한 36%로 동일한 결과를 나타냈다. 반면 ‘심각하다’는 응답은 28%로 조금 차이를 보였다.
국방부가 ‘종북 실체 인식 교제’를 배포하기로 한 것과 관련 장병 88%가 ‘종북주의에 대한 군대 내 정신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종북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으로 당연히 알아야 한다” “종북세력은 사회악이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필요 없다’는 의견은 12%로 다소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장병 중 일부는 “교육 시간에 다 잔다. 오히려 실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상식 수준이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안보교육 시급
설문 결과에 대해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군은 항상 전쟁을 대비하고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유지해야 한다. 최근 나라 전체가 안보의식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해 군 또한 안보불감증 혹은 기강해이에 빠질 수 있는데, 군이 전쟁불감증이나 전쟁공포에 빠져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 연구관은 “군 장병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보교육을 통해 한반도 현실과 안보위기 처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식시켜 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안보불감증 사태에 대해 항간에서는 “국민은 동요하지 않는데 정부와 외신들이 나서서 불안한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듭된 북의 전쟁도발 혹은 핵 위협에 매번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또한 박수쳐줄 일만은 아닐 것으로 보여진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