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검찰의 비리를 소재로 한 SBS 드라마 <돈의 화신>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검찰의 심기는 영 편치 않아 보인다. 스폰서와 성접대까지, 그동안 논란이 됐던 소재들이 드라마에서 거침없이 다뤄지는 탓이다. 가뜩이나 ‘검찰개혁’이 새 정부의 화두로 거론되는 판국이라 검찰 내부에서도 드라마를 두고 ‘지나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때마침 인사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법원 최종 무죄 판결이 확정돼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이 재점화됐다. 때마침 여의도 정국은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싸고 ‘검찰개혁’이 화두로 등장했다. 이런 와중에 드라마 <돈의 화신>이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시청자들은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웃는 드라마, 우는 검찰
“요새 <돈의 화신> 최고 같아요. 언론, 검찰의 추악한 실체를 잘 보여주던데 드라마 소재는 현실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죠.”
“<돈의 화신> 재밌는데 왠지 검찰에 대해 좋은 이미지는 없는 듯.”
“요즘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를 본다. 그 드라마 내용대로 재벌, 검찰, 언론, 지하경제 사채업체는 썩어 있으며 서로 유착되어 있으리라.”
드라마 <돈의 화신>에 대한 트위터리안들의 반응이다. 이처럼 시청자들은 <돈의 화신>을 통해 그간 쌓이고 쌓인 검찰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고 있다. ‘<돈의 화신> 명언’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고 있는 드라마 대사도 인기다.
<돈의 화신>은 ‘이차돈’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둘러싼 복수극을 다룬 드라마다.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를 중심으로 로비와 리베이트, 커넥션과 비리에 얽힌 대한민국 세태를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로 그려냈다.
검찰의 비리는 배우 박상민이 맡은 배역인 검사 지세광을 통해 드러난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유명 여배우와의 스캔들도 빠지지 않는다. 배우 오윤아가 열연하고 있는 은비령이라는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여배우는 한 사업가의 정부로 지세광 검사와 내통하다 사업가를 살해하면서, 드라마는 극적인 긴장을 더했다. 은비령은 검찰·언론과 유착, 부를 축적하며 검경 유착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 여기에 사채업자까지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검찰과 언론 그리고 이들을 엮는 돈의 흐름을 세밀히 묘사했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둘 더 얹었다.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한탕’하려는 이들의 모임에 검찰총장까지 등장한다. 등장인물 이름도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과 비슷한 ‘권재규’다.
그리고 사채시장의 큰손을 스폰서로 두고 권력과 돈을 좇는 전형적인 비리 검사 조상득은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배우 이병진이 맡았다. 이 역시 MB의 친형인 ‘이상득’과 이름이 같다. 등장인물의 이름만으로도 풍자의 아슬아슬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돈의 화신>이 시청자의 박수를 받으면 받을수록, 검찰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거세졌다. ‘마치 모든 검찰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돈을 축적한 것으로 오해할 것 아니냐’는 내부의 볼멘소리도 검찰에 쏟아지는 화살의 방증이다.
드라마, 검찰·언론·사채업자에 여배우 스캔들까지 총망라
북받쳐도 여론 안 좋아 속으로 ‘끙끙’ “공식 입장 자제”
한 소식통은 검찰이 <돈의 화신> 때문에 말 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막내 검사가 사건 피의자들에게 수금하며 돈뭉치를 모으고, 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라인구축을 위해 부하검사의 수금을 보호하고, 이들이 정·재계 인사 수사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저 없이 왜곡하는 모습 등이 “검찰의 실상을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선 검사들이 “드라마가 표현의 한계를 넘었다”며 검찰 본부에 대응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비록 드라마지만 검찰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검찰은 지난해 몇 차례나 끔찍한 홍역을 치렀다. 검찰은 성 접대 파문으로 ‘떡검’ ‘색검’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뇌물수금과 로스쿨 출신 검사의 피의자 성폭행 사건까지 검찰의 명예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실제로 <일요시사>와 통화한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불만이 크다. 식사자리에서도 드라마 이야기가 나온다”라며 “검사들은 드라마가 ‘검수’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막내검사 묘사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맞지 않은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검찰 비리는 미디어에서 꾸준히 다뤄왔다. 어느 때보다 검찰개혁 요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검찰이 드라마에 손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을 하겠느냐. 불만이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 대변인실의 정 모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드라마에 대한 각 검사 개인의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자숙하자는 분위기다”라며 “앞으로 검찰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하고,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박수치며 지켜봐 달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돈의 화신> 총책임을 맡고 있는 가순남 프로듀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몇몇 검사들이 지적했다는 대본 검수에 대해 “담당 변호사가 있고 검수과정은 다 거쳤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드라마는 픽션이다. 검찰 내부에서 이야기가 오갈 수는 있지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제작한 것도 아니고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은 문화의 영역이다. 표현의 자유를 떠나 검찰에서 드라마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앞서 이 드라마의 작가 연출자인 유인식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허구는 본질적인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어떤 장치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갈등 보여주고 싶어”
드라마에 나오는 법조인에 대해서는 “원죄를 단죄하는 직업이 검사인데, 역설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때가 묻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쉽더라는 거다”라며 “법조계에서는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우리는 새삼스레 구태를 고발하자는 게 아니라 때가 묻어있는 사람일지라도 비리나 부정을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고뇌해주길 바라는 거다. 성공이 보장되는 침묵을 뿌리치고 기득권을 버려가며 정의로 나아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겪는 갈등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