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청빈·겸손 대명사 프란치스코 교황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5 11: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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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개혁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일요시사=경제1팀] 이틀간 이어진 긴 콘클라베. 네 번의 검은 연기. 다섯 번째 투표만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하는 순간이었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1282년만에 처음.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선택한 새 교황은 겸손하고 소박하지만 각종 정치·경제 비리 사안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3월12일, 세계 48개국의 80세 미만 추기경 115명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미사에서 라틴어 기도문을 읽는 것으로 교황 선출 시스템 '콘클라베'의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전 세계 가톨릭계의 눈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쏠렸다.

미주 대륙 교황
2000년 만에 처음

교황 선출을 의미하는 흰 연기가 솟아오를 것이냐, 아니면 교황 선출에 실패했음을 뜻하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냐를 놓고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구름처럼 몰린 신도와 관광객들은 애태우며 결과를 기다렸다.

지난 13일 오전 3시41분 첫 번째 연기가 피어올랐다. 예상대로 검은 연기가 나왔지만 방송을 중계하던 전 세계 텔레비전에서는 '아∼'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다섯 번의 투표를 거친 끝에 지난 14일 오전 3시7분 마침내 제266대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 베드로 광장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들끓었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을 새로운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선출된 것이다.

새 교황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직물상의 집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회개하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삶에 따라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CNN의 존 앨런 바티칸 분석가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이 "청빈, 겸손, 소박과 가톨릭 교회의 재건"을 뜻한다고 밝혔다. 후대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쓰면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름은 프란치스코 1세가 된다.

가톨릭 역사 1282년 만에 비유럽권 선출
동성애·낙태 보수적…사회문제엔 진보적

투표가 끝난 뒤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는 '파파'라는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좋은 저녁입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느님께서 저를 축복해주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답례의 인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콘클라베는 로마 주교를 뽑는 것이다. 그런데 동료 추기경들이 세상의 끝(아르헨티나)까지 간 것 같다"고 우스겟소리를 전한 뒤 "전 로마 주교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그는 추기경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느님이 여러분을 용서하길"이라는 가벼운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가 '교황'이라는 단어 대신 '로마 주교'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교황도 하나의 교구장으로 다른 지역의 교구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교황청과 지역 간, 사제와 평신자 간에 거리를 줄이고 가톨릭의 결속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의미로 분석했다.

프란치스코는 첫날 공식 업무에서부터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콘클라베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교황청이 마련한 교황 전용차를 마다하고 "괜찮아. 나는 얘들(Boys)이랑 같이 탈래"라며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전 세계 가톨릭계
환영·기대감 표출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묵었던 호텔에 들러 숙박료를 직접 계산하고 자신의 짐을 건네받기도 했다. 예전 교황들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모든 뒤처리를 끝마칠 때까지 바티칸에서 대기했다.

첫 직무 수행 일정으로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을 찾을 때도 교회에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도착 10분 전에야 방문을 통보했고 교황 전용차가 아닌 일반 차량을 이용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 선출 당시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교황의 위엄을 나타내는 붉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지난 2월11일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런 사임에 따라 개막된 콘클라베에서 이틀 만에 선출된 새 교황은 비유럽권 출신으로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이다. 미주 대륙에서는 가톨릭교회 2000년 사상 첫 교황 탄생이다. 프란치스코는 1534년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 예수회에서 배출된 첫 교황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 천주교회
한국 배려 기대

가톨릭 교회가 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데는 내부의 변화와 개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의 전통가치와 대립하는 동성애와 낙태 등 사회 이슈가 대두되면서 안팎으로 도전을 받아왔다. 때문에 비유럽권 교황을 통해 돌파구를 찾자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미주 대륙에서 교황이 처음 탄생한 의미를 "500년의 기다림 끝에 가톨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마침내 우뚝 서다"고 표현했으며 브라질 가톨릭주교협의회(CNBB)는 성명을 통해 "남미 대륙의 첫 교황이 희망의 대륙 남미의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톨릭 국가들도 비유럽 출신 첫 교황을 미주 대륙에 넘겨주긴 했지만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다음 교황 선출 때는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교황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천주교회도 프란치스코를 환영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축하 메시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해 지상의 교회를 이끌어 나갈 교황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억압받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평화의 사도가 돼 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새벽 미사 강론을 통해 "새 교황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사랑과 일치, 진리와 희망, 빛과 기쁨을 가져 오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는 531만명으로 필리핀(7700만명), 인도(1900만명), 인도네시아(740만명), 베트남(640만명)에 이어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직후 로마교황청 관보 1면에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실렸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방한 당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를 위한 시성식을 집전했을 만큼 한국 천주교는 세계 가톨릭에서 적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는 새 교황의 한국 배려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염수정 대주교는 "새 교황께서 한국 천주교회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 주시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정치권은 화합과 평화,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1282년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으로 세계는 종교 간의 화합의 관계가 증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세계평화와 인감 존엄의 가치를 지키고 약자와 빈자를 배려하며 지구상의 다양한 종교 간의 화합을 이끄는 지도자가 돼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새 교황께서 지금까지 교회가 그래왔듯이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이루게 힘써 줄 것을 기대한다"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2세가 되던 해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시작한 그는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1969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수도사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70년대 후반까지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80년에는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발탁됐으며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오른 그는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는 여느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구와 탱고를 좋아한다. 그간 그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빈자들을 돌봐 왔다. 추기경 관저를 벗어나 시내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으며 전용 차량을 마다한 채 버스를 이용하고 요리를 직접했으며 옷도 직접 고쳐 입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사람들은 그를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공식 업무 첫날부터 파격 소탈 행보
숙박료 직접 계산…전용차 대신 버스

그는 현재 가톨릭계를 위협하는 동성결혼과 낙태, 피임, 안락사 등에 비판적이지만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질병을 박기 위한 피임기구 사용에는 찬성하고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편인 아르헨티나 가톨릭을 현대화로 이끈 개혁적 인물로 꼽힌다.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단회의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에서 살고 있다"며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고통은 가장 더디게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등을 지적한 바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는 불편한 관계다. 정부가 동성결혼, 낙태수술 허용, 피임기구 무료 배포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가 전체주의와 부패에 빠져있다"며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1976년부터 3년여간 민주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시기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당시 예수회를 이끌던 그는 '비정치화'를 외치며 현실에 침묵했다. 예수회 소속 수도사가 군부에 체포되는 것을 묵인했으며 군부에 의한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예수회 본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건강도 불확실하다.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2005년 즉위 당시 나이(78)보다 겨우 두 살 적다. 역대 교황 266명 중 아홉 번째로 많다. 구체적 수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0대 때 폐 한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은 것도 건강에 대한 의심을 부른다.

프란치스코 앞에는 맞부딪쳐야할 무거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줄줄이 터져나온 사제들의 성범죄와 교황청의 부패, 그리고 돈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임기간 내내 바티칸을 둘러싼 성추문에 시달렸다. 베네딕토가 직접 나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관련자들이 공개 사과하고 합의에 나서는 등 사태해결에 매달렸지만 바티칸 안팎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추문 사건들이 많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바티리스크'도 문제다. 지난해 교황청 내부에서 고위 성직자들이 뇌물을 받고 외부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며 가격을 부풀리는 등 불법 거래를 일삼았다는 기밀문서가 유출됐다. 여기에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임 교황이 바티칸 은행에 자체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등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외부에서는 더 투명한 자료 공개와 추가적인 감독 체계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프란치스코는 동성애과 동성결혼 문제, 가톨릭 내 여성지위 문제, 낙태, 안락사 문제 등 사회 변화로 인해 가톨릭이 도전받는 현안 등도 과제로 안고 있다.

이에 일환으로 프란치스코는 영적 쇄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교황 선출 후 가진 첫 미사에서 프란치스코는 예수와 십자가라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처음 집전한 미사에서 "우리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많은 것을 지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단지 인심 좋은 비정부기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난제 산적
영적 쇄신 강조

그는 "영적인 가치가 아닌 세속적 가치를 바탕으로 어떤 일을 이룩하려 한다면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서 곧 모두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세속적인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일 수도 있지만 주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58년 예수회 입문, 산미겔 산호세 대학 철학 전공
▲1970년대 아르헨티나 지방 돌며 사목 활동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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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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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