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그림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아파트라는 독특한 주제. '소통의 단절'이 곧바로 떠올랐다. 심봉민 작가는 "그 부분까지 생각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설명했다. 그의 그림은 사람의 기억을 자극하는 매개였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심봉민 작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5명 중에 1명이다. 그의 말처럼 미술을 전공한 뒤 미술판에 남아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미술은 길게 봐야
"30명 중에 많아야 5명?"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갤러리에 그림 한 번 걸고 유명해진다? 그런 지름길은 없어요. 저는 앞으로도 이 길이 힘들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또 조급하진 않아요. 화가는 70대가 돼서도 팔만 움직이면 일할 수 있거든요. 누가 제 작업을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조금씩 쌓아 가면 되는 거죠. 미술은 길게 봐야합니다."
심 작가는 다른 신진 작가들처럼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림들한테 미안했어요. 제 자신에게도 미안했고. '난 꿈과 멀어지는 걸까?' 이런 생각에 술도 좀 마시고(웃음). 하지만 이 바닥에 뛰어들면서 어느 정도 각오했습니다. 꿈을 좇는다는 거 절대로 쉬운 일 아니니까. 일도 조금씩 하고, 작업도 더 열심히 하고."
홍대 출신의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불안한 미래에 직면해있다. 컬렉터는 제한돼있고, 미술시장도 좁은 탓에 신진작가가 뿌리내리긴 만만치 않은 구조다.
"그런데 제가 갤러리를 갖고 있다거나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요. 현대갤러리 정도 되면 모를까(웃음). 결국은 '그림'이 중요한 거잖아요? 독일 유학도 포기했어요. 저도 한때는 독일을 굉장히 동경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유학 다녀온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거나 하진 않았어요. 저는 작가들이 술래잡기의 술래들처럼 무언가를 찾아다닌다고 생각해요. 캔버스 안에서 떠돈다고 해야 할까요? 모두 그 과정 안에 있는 거죠."
심 작가의 꿈은 원래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만화에 더 흥미를 가졌었다. 어느 날인가 본 이중섭 작가의 그림은 그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요즘 흔히들 '중2병'이라고 하죠? 그게 남들보다 좀 빨리 왔어요. 어떻게 보면 허세고, 어떻게 보면 창작의 원천(웃음)? 어릴 때는 지금보다 조금 조용했어요. 말도 잘 안하고. 그런데 내가 그린 만화를 보며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게 신기했어요. 나한테 말도 걸고. 그러면 나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여주고….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만화가 더 친숙했거든요. 그런데 이중섭 작가의 '황소'를 본거죠. 굉장히 놀랐어요. 대사도 없고, 컷도 없고, 그냥 그림 하나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화가에 매력을 느낀 거죠."
주로 아파트 소재 작품 "애착이 간다"
"완벽한 작품은 없어…결국 독자가 완성"
심 작가는 주로 아파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직히 말해 아파트 전문 작가 아닙니까?'라는 다소 짓궂은 농담에 심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지 아파트라는 공간에 애착이 간다"고 입을 열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파트 세대잖아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겪은 기억이 있는 거고. 그런데 아파트라고 하면 조금 삭막한 느낌이 들어요. 사각으로 정형화 돼있고, 각이 져있고. 시각적인 건 그런데. 저는 이 공간을 삭막하지 않은 공간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고. 관객들도 그런 기억이 있을 거고….모두 각자 다른 기억을 갖고 있지만 서로 공감하면 좋겠다. 그래서 오브제 중 사람의 얼굴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는 편이에요. 얼굴을 그리면 그 사람을 파악하게 되니까. 오브제가 특정화된 캐릭터를 갖게 되니까요."
심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모티브를 주로 찾는다. 주로 과거의 기억이나 문득 드는 감정 등이 작품에 반영된다. 작품 안에 구현된 '큐브'도 그림에 따라 다른 인상을 준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부터 결과까지 '감정의 산물'인 셈.
"저도 그림을 그리면서 가끔 '이게 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그림은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걸 전달하는 거잖아요.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이죠. 야수파니 인상파니 이런 것도 나중에 의미를 붙인 거죠. 그냥 해석이잖아요. 그러니까 평론가나 애호가의 해석은 그냥 주관적인 거예요. 거기에 구애받지 말고 저마다 그림에서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제가 그린 그림은 그 매개가 되는 거고."
오는 봄, 또 다른 전시회를 준비 중인 심 작가는 "완벽히 만족하는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저는 항상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아, 됐어' 이런 작품은 없어요. 그럼 그림 그릴 필요 없죠. 수학문제는 답이 나오면 그 문제를 더 이상 풀지 않잖아요. 미술도 정답이 있으면 그것만 그리게요? 저는 미술에 완벽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리는 거죠. 계속 할 수 있고."
내면서 모티브 찾아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예비 작품들이 캔버스 안에서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눈을 가리고 '하나, 둘'을 외치는 술래가 문득 심 작가와 겹쳐보였다. 그는 계속 자신이 그려낸 공간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심 작가가 말을 건넸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심봉민 작가는?]
▲2010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2010년 갤러리 암브로시아 <일루젼 오브 스페이스>
▲2011년 두인 갤러리 <내면의 풍경, 9인의 작가 9인의 벽>
▲2011년 가이아 갤러리 <기억과 시간이 던져진 공간>
▲2012년 겔러리 이레 <영 아티스트 익스히비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