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④김석원의 쌍용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4 13: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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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후 어찌 사나 봤더니…지금도 '떵떵'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쌍용그룹은 늦었다고 생각을 못 해 무너졌다. 총수 한 사람의 오판과 실수가 재계를 호령했던 우량그룹의 해체를 불러온 것이다.

쌍용그룹은 김성곤 창업주가 1939년 대구에서 설립한 소규모 비누공장 삼공유지를 모태로 출발했다. 48년 금성방직을 설립하면서 기반을 확립한 쌍용그룹은 62년 쌍용양회, 67년 쌍용제지, 67년 쌍용해운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자산 15조
왜 무너졌나?

73년 쌍용정공, 76년 쌍용중공업과 쌍용정유, 77년 쌍용건설, 78년 쌍용엔지니어링을 설립한 쌍용그룹은 80년대 들어서서는 84년 쌍용투자증권, 85년 쌍용경제연구소, 88년 쌍용투자자문 등을 설립하면서 건설업, 중화학공업, 금융업 등 사업다각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75년 김 창업주의 갑작스런 작고로 31세의 나이로 그룹을 이어받은 장남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은 쌍용그룹의 '제2성장'을 이끌었다. 73년부터 시작된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연간 560만 톤 규모로 증설하는 프로젝트를 7년 만에 이뤄냈고 76년에는 이란의 국영석유공사(NICO)와 합작하여 쌍용정유를 설립하고 80년에 지분을 전량 인수, 쌍용정유를 국내 3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같은 해 김 회장은 쌍용중공업 사장직에 올라 사업 안정화를 이끌었고 83년에는 효성증권(쌍용증권)을 인수해 국내 굴지의 증권사로 성장시켰다. 김 회장이 그룹을 이끈 지 20년이 되던 95년에는 74년 대비 192배(15조524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였다.


재계 7위 총수 결정적 실책 '자동차·정계행'
결국 그룹 공중분해…매각 계열사 명맥만 유지

성장가도를 달리던 쌍용그룹이 '몰락'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자동차 산업을 만나면서부터다. 이미 60년대 말 쌍용그룹은 하동환자동차(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바 있다.

80년대 들어 쌍용자동차는 코란도와 무쏘라는 지프형 자동차를 선보이면서 급격히 부상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현대, 대우, 기아자동차의 공세로 쌍용자동차는 사세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안팎으로 자동차를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포기가 답이었다. 김 회장은 포기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쌍용그룹은 추가적인 투자와 신모델 개발을 위해 용평리조트 등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다. 90년대 중반 쌍용그룹 대부분의 자산은 은행 담보로 잡혔다. 그룹 내부에서 자동차사업 중단을 요구하던 인사들은 줄줄이 잘려나갔고 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이러한 김 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벽을 넘지 못했다. 92년 쌍용자동차의 내수 점유율은 1.6%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계속 추락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95년부터 4년간 3조원을 쌍용자동차에 투입했다.

현대·기아차 벽
넘지 못한 쌍용차

김 회장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때였다. 결국 그는 자동차사업을 접기로 하고 쌍용자동차 매각에 나섰다. 김 회장은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당시 자동차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던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에 동시 매각 협상을 벌였다. 오판이었다. 이중 매각 협상을 삼성에서 알아차렸고 삼성은 쌍용자동차 인수에서 발을 뺐다. 대우그룹도 삼성이 인수를 포기하자 대폭 내린 인수가격을 제시하고 나섰다.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까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김 회장은 결단을 못 내리고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동안 쌍용그룹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조원의 돈을 빌려준 은행들과 채권단은 김 회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김 회장은 쌍용차 처리를 채권단에 넘겼고 채권단은 대우에 매각협상을 재개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쌍용자동차 채권단에 인수 조건으로 막대한 추가지원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였고 쌍용자동차는 대우그룹 품에 안겼다. 김 회장은 단돈 1원도 못 건졌다. 98년 1월, 대우그룹에 쌍용자동차를 넘겼을 때 쌍용그룹 계열사들이 떠안은 쌍용자동차의 부채는 공식적으로 1조7665억원이나 됐다. 쌍용자동차에 투자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급보증을 섰던 계열사들은 줄줄이 매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룹의 고속성장을 이끌 만큼 뛰어난 경영성과를 보이던 김 회장이 포기할 때를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물론 자동차 사업에 대한 김 회장의 욕심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잠시 한눈을 팔았던 것도 무시 못 할 이유 중 하나다.

그룹 분해되도
돈 걱정 없다

김 회장은 정계 진출이라는 특별한 외도를 했다. 쌍용자동차의 부실로 그룹이 위태로웠던 96년 김 회장은 15대 국회의원(민자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97년 쌍용자동차 부실 문제가 본격화되고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98년 2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지만 약 2년간의 외도는 김 회장의 판단력을 흐려놓기에 충분했다. 정치와 자동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김 회장은 두 마리 모두 놓치는 패착을 겪었다.

계열사 매각에 나선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넘긴 98년 쌍용투자증권을 미국의 H&Q AP에 매각하고 99년 쌍용정유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사 펀드에 매각했다. 2000년에는 쌍용중공업(현 STX)을 한누리투자증권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2002년 쌍용화재를 중앙제지에 매각했다. 2003년에는 용평리조트를 세계일보에 매각했으며 쌍용캐피탈, 남광토건을 계열분리 했다.

주력회사인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대우그룹 해체로 다시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는 중국에 넘어갔다가 다시 인도에 팔려나갔다. 쌍용건설은 한국 자산관리공사가 주인이 됐고 ㈜쌍용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쌍용그룹은 '쌍용'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사실상 공중분해된 셈이다.

그룹의 모태인 쌍용양회가 2000년 12월 경영권이 넘어가자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김석원 전 회장은 2004년 말 쌍용그룹 재산 310억원을 개인 명의의 재산으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밖에도 김 전 회장은 ▲계열사인 쌍용양회가 소유한 42억원짜리 임야를 차명으로 헐값에 사들인 혐의 ▲그룹 계열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영업권을 비서 명의로 만든 회사를 통해 싼값에 사들인 혐의 ▲폭락한 자신의 계열사 주식을 쌍용양회에 비싼 값에 팔아 54억원의 이익을 남긴 혐의 등을 받았다.

2007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을 받은 김 전 회장은 친인척, 과거 참모들과 미래 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재기를 노리다가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에 연루된 사실이 포착되면서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위장 계열사 4곳에 1271억원을 부당지원한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전 회장은 즉각 항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2011년 12월에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최종 선고 받았다.

쌍용그룹 해체 당시 김 전 회장은 명목상으로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현재 김 전 회장은 전직 국회의원 자격으로 헌정회로부터 매달 12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게 전부다.


부인은 미술관장으로, 아들들은 대주주로
태아산업 자식들이 장악 "사실상 가족회사"

하지만 김 전 회장의 가족들은 '120만원'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먼저 김 전 회장의 부인 박문순씨는 성곡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2007년 11월 신정아 게이트의 여파로 잠시 관장직을 떠난 적이 있지만 지난 2011년 3월 관장으로 복귀했다. 박씨가 관장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는 김 전 회장의 누나인 김인숙 전 국민대 교수가 미술관을 운영했다.

김 전 회장의 장남 지용씨는 용평리조트에서 전무로 근무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 유희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특히 지용씨는 올림픽 개발효과를 누리고 있는 평창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용씨는 현재 횡계리 소재(613-39외 3필지) 논밭 7000여m²을 보유하고 있다. 

지용씨는 2004년 김 전 회장이 구속될 당시 받았던 혐의 중 하나인 편법 매각의 대상, 고속도로휴게소 운영권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태아산업의 최대주주다.

98년 8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세워진 태아산업은 현재 충북 음성에 두 곳, 경기도 여주에 한 곳 등 총 세 곳의 휴게소를 운영하면서 2011년 440억여원의 매출액과 14억여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회사의 주주 구성을 보면 지용씨가 34.0%,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문규씨가 16.2%, 지용씨의 동생인 지명·지태씨가 각각 24.9%를 갖고 있다. 박씨는 김 전 회장의 처남이다. 


쌍용그룹 해체 전까지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차남 지강씨는 그룹 해체 후 국내로 들어와 2002년 친인척 등과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기획이벤트와 쇼핑몰 등을 하던 동아시아회사를 창업했다. 지강씨는 동아시아회사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2003년 8월 IT업체 진두네트워크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 중도금을 납입하지 못해 주식양수도 계약이 깨졌다. 동아시아회사를 나온 지강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을 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지강씨는 2011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지강씨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 숨진 채 여자친구에게 발견됐다.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날 오전 2시30분께 여자친구에게 자살을 암시한 뒤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스스로 목숨 끊은
비운의 황태자

쌍용그룹 해체 후 쌍용건설 사장직 내놓고 물러났던 김 창업주의 차남 석준씨는 그의 경영 능력을 필요로 한 직원들의 요청으로 다시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후 회사 정상화를 이뤄냈지만 최근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이에 따라 해임안까지 통보되는 등 위기를 맡고 있다.

김 창업주의 3남 김석동 전 쌍용증권 회장은 1986년 한상태 세계보건기구 명예사무처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했다. 그는 그룹 붕괴 이후 잇츠티비, 영화직물 등의 개인사업을 통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의 쓴맛을 봤다. 최근 또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1남2녀(지호-지원-지영)를 두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쌍용그룹은?>

▲1939년 삼공유지 설립
▲1948년 금성방직 설립
▲1960년대 쌍용양회, 쌍용제지, 쌍용해운 설립, 하동환자동차(쌍용자동차) 인수
▲1970년대 쌍용정공, 쌍용중공업, 쌍용정유, 쌍용건설, 쌍용엔지니어링 설립(1975년 김석원 회장 취임)
▲1980년대 쌍용투자증권, 쌍용경제연구소, 쌍용투자자문 설립
▲1998년 쌍용자동차 매각, 부채 약2조원, 계열사 매각 시작
▲2002년 쌍용양회 워크아웃 돌입, 쌍용그룹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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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