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최근 프로포폴 남용으로 연예계가 발칵 뒤집어진 가운데, 현직 의사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성에게 졸피뎀(수면제)을 타 먹인 뒤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적 지위와 전문지식을 이용해 빗나간 욕구를 충족했던 이번 사건은 사회지도층도 예외 없이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일 수면제를 넣은 술을 먹이고 여성들을 성폭행한 의사 선후배를 구속했다. 지난해 11월, 강남의 모 성형외과 의사와 경기도 포천에서 군의관으로 근무 중인 남성이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을 꾀어 수면제를 탄 음료를 마시게 한 뒤 번갈아가며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뿅’가면 본색
성형외과 의사 김모(35)씨와 군의관 임모(31)씨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보건의로 근무할 당시 만나 친분을 맺었으며, 수면유도제를 사용해 성관계를 맺을 것을 공모했다. 이들은 졸피뎀(수면유도제)을 다량으로 복용하거나 알코올 또는 카페인과 함께 복용할 경우 수면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등 환각작용이 나타날 것을 인지, 사전에 약물을 미리 구입해 계획적 범행을 시도했다. 이어 의식이 없어 항거불능 상태인 여성을 상대로 수차례 강간했고, 전에도 SNS채팅으로 만난 여성에게 동일한 수법을 사용했던 추가범행까지 밝혀지면서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11월10일 새벽 김씨와 임씨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모 클럽에서 만난 여성에게 돈 많은 의사라고 소개하며 재력을 과시했다. 달콤한 말들에 혹한 여성은 지성과 능력을 겸비한 의사들에게 곧 호감을 나타냈고, 그들의 제안대로 장소를 옮겼다. 김씨는 후배 임씨와 여성을 인근 역삼동 자택으로 유인했다. 이어 그는 술과 먹을 것을 대접해 주겠다고 말한 뒤 안주거리와 술 ‘예거마이스터’와 에너지 드링크를 섞어 만든 폭탄주인 ‘예거밤’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이 술엔 추악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김씨와 임씨가 여성이 마실 예거밤 안에 미리 준비해둔 졸피뎀 성분의 마약성 수면유도제를 섞었기 때문. 아무런 의심 없이 술을 마신 여성은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성이 정신을 잃고 환각상태에 이르자 김씨와 임씨는 기다렸다는 듯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 약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였던 여성은 눈조차 뜰 수 없는 상황에서 외간 남성들로부터 강간당한 것이다.
다음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은 곧바로 인근 경찰서로가 고소장을 접수했고, 김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준강간 등 혐의로, 군의관 임씨는 신병이 인계된 뒤 군 검찰에 구속됐다. 이어 김씨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수면유도제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방하지 않고 술에 몰래 섞는 등 마약류를 오남용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도 함께 추가해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검찰에서 “묵시적 동의가 있어 여성과 관계를 맺었을 뿐 강제성은 전혀 없었다”고 일관한 반면, 김씨는 “성관계를 맺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 불면증이 있어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제를 처방받아 소지하고 있었다. 현재 근무하는 성형외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여성들 성폭행 성형외과 의사 선후배 구속
클럽·채팅녀 수면제 먹인 후 번갈아 덮쳐
그러나 검찰의 지속된 수사 결과 이들의 범행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검찰은 김씨가 지난해 12월12일에도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만난 또 다른 여성도 집으로 유인해 와인에 같은 약물을 섞어 먹인 뒤 피해자가 잠들자 곧바로 성폭행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당시 김씨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방치한 뒤 다음 날 아침에도 약기운이 남아 있어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를 한 차례 더 성폭행하는 등 추가범행이 밝혀져 수사관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이처럼 수면유도제를 미끼로 한 파렴치한 성범죄는 비단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특히 클럽 등 유흥주점이 집결된 강남 일대에서 수면유도제를 이용한 성범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졸피뎀을 먹여 나이트클럽에서 즉석만남으로 만난 여성들을 상습 성폭행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채용 면접을 미끼로 졸피뎀을 이용해 성폭행한 사례도 더러 있었다.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공고를 올려 이력서를 올린 젊은 여성들을 유인해 졸피뎀이 섞인 커피를 마시게 한 후 성폭행한 사례도 있었으며, 처남 아내에게 졸피뎀을 먹인 뒤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면 졸피뎀을 이용한 성범죄가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에는 손에 넣기가 비교적 쉽다는 데 있다. 이는 불면증을 호소하면 병원에서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으며, 인터넷 게시판 등에 졸피뎀을 구한다고 입력하면 퀵서비스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수면유도제 중 대표 격인 졸피뎀은 효과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약효 지속기간도 다른 수면 유도제보다 짧은 편이기 때문에 신종 성범죄에 악용되는 추세다. 또한 졸피뎀 성분이 섞인 음료나 술을 마셨을 시, 환각 상태에 빠져 자신의 행동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억조차 하지 못해 범인의 인상착의를 감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약물의 성분을 가장 잘 인지하고 있는 의사들마저 졸피뎀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로포폴 등 수술용 마취제나 수면유도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이 오남용 되는 일이 잦아지는 추세지만 관련 처벌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은 물론 보건당국의 관리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약품을 취급하는 의사가 범행을 목적으로 졸피뎀을 사용해도 의료 대장에 ‘의료행위’로 기재하면 사용경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
술에 장난질
자신의 지위나 전문지식 등을 이용한 계획적인 성범죄가 활개를 치는 요즘, 경찰이 성범죄 척결에 나섰지만 증거포착이 어려워 범행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한 모바일이나 인터넷 등에서 신종 성범죄 수법을 공유하는 네티즌들도 증가하고 있어 성범죄가 점점 더 지능적이고, 비열한 수법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계획적 성범죄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만큼이나 왜곡된 성의식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