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현대판 청백리'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5: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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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 버리고 떠난 아름다운 뒷모습

[일요시사=경제1팀] 동네 편의점에서 만난 아저씨가 대법관이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얼마 전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아내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퇴임 시 공언했던 대로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간 것. 이런 신선한 행보에 정치권과 누리꾼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김능환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퇴임 후 일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퇴임 첫날인 지난 6일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상도동 한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편의점 계산대에서 손님들의 물건 값을 계산했다. 짙은 청색의 등산 점퍼와 펑퍼짐한 갈색 바지, 연보라색 목도리 등 영락없이 '동네 편의점 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공짜 사탕'건네고
물건값 깎아주기도

김 전 위원장은 할머니와 함께 껌을 사러 온 꼬마에게 '공짜 사탕'을 건네고 막걸리를 계산하는 노인에게는 돈을 깎아주기도 했다. 취재차 편의점을 방문한 기자들이 구입한 음료수를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하기도 했다.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은 김 전 위원장을 편하게 대했다. 손님이 없을 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는다.

김 전 위원장이 편의점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부인이 편의점을 차린 뒤 그는 주말에 시간을 내 편의점 업무를 틈틈이 배워왔다.

부인 김문경씨도 김 전 위원장과 함께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를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7월 대법관을 퇴임하자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냈다. 채소가게는 편의점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겨울이라 채소 가게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채소가게 이름은 김 전 위원장의 아이디어로 부인의 영문이름 이니셜을 따 'K·M·K 야채 가게'로 지었다. 채소가게는 이달 말 쯤 다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5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여러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다"며 "그동안 선관위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거나 발전한 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이 노력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 것이다.

또한 그는 선관위를 떠나면서까지 앞으로의 선관위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에 ▲선거관리와 관련하여 조사권을 보다 더 엄정하게 행사할 것 ▲모든 선거절차에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것 ▲정치관계법률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 ▲유권자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투표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등을 당부했다.

퇴임 첫날부터 평범한 소시민 일상 화제
부인 편의점서 일…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앞으로 거취에 대해서는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김 전 위원장이 부인이 운영하는 한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에서 참다운 공직자의 모습을 본다"고 밝혔다. 허 부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전관예우'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며 "함량 미달의 장관 후보자들 속에서 군계일학 같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1951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17회에 합격, 육군 법무관을 시작으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80년 전주지법 판사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가정법원, 서울지방법원 부장 판사를 거쳤다. 2006년에는 법관 최고 영예인 대법관으로 임명, 2011년 2월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했다.

취임 이후 지난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등 가장 중요한 선거를 무난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정국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서운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립 입장을 유지해 주목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법관"
노 전 대통령 극찬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을 지난해 8월 검찰에 고발했으며 9월에는 총선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홍사덕 전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선을 불과 6일 앞둔 12월13일에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로 의심되는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을 급습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선이 끝난 지난 1월 사의를 표했으나 후임 선관위원장이 정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김 전 위원장은 '청백리'로 유명하다. 위원장 재직시절 김 전 위원장은 곧잘 '선비'에 비유되곤 했다. 항상 "아래 직원과 똑같이 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위원장실에 난방이 켜져 있으면 "직원들은 추위에 고생하는데 나만 특별대우 하지 말라"며 난방을 끄게 했고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는 "내가 다 뜻이 있다"며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

매달 직위보전비로 받은 400여만원은 모아 직원들 격려금에 쓰곤 했다. 명절이나 큰 선거를 치른 뒤 회식비로 쓰게 하거나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격려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대법관 청문회 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동네에 책방 하나 내고 이웃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은 '가장 뛰어난 법관'이라고 극찬한바 있다.

"고위직 출신이 이럴 수가…"
정치권·누리꾼 일제히 찬사

2011년 10월 재·보선 때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후 선관위 직원이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자 김 전 위원장이 변호사 선임비용 800만원을 사비로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됐는데 국가 예산으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못하게 해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가혹하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알고보니 김 전 위장이 몰래 변호사비를 지원했던 것이다. 총무부서를 통해 돈을 전달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전 위원장의 재산은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대법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꼴찌는 이번에 신임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인복 대법관(4억9760만원)이다. 김 전 위원장의 재산은 9억5617만원으로 송파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와 전세권 하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퇴임식에서는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직접 몰고 선관위 청사를 떠나기도 했다. 임직원들에게는 "세금을 들여 공로패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 직원들이 공로패를 만들어 전달하려 하자 "선관위 예산에서 비용을 대는 것 아니냐"며 "국민 세금으로 왜 그런 일을 하느냐"며 만들지 못하게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관위 공보실을 통해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 중의 하나로 모든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자리이자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하는 자리"라며 "어떻게 그런 자리에 있던 사람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행정부를 관할하는 총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후배 법관들이 꼽은
'법조계의 모범인'

김 전 위원장은 대법원 선임·수석 재판연구관 등을 두루 거치며 민·형사, 조세, 행정 등에 대해 전문적 법률지식을 갖췄고 함께 근무한 후배법관들이 본받고 싶은 '법관의 모범'으로 꼽는다.

1982년 고교 교사 9명이 좌경의식화 교육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오송회' 사건에서 6명에게 선교유예, 3명에게 징역 1∼4년의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등 국가보안법 적용에 관대한 시각을 보였다.

또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김현장씨가 "보호관찰처분 연장을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범 위험성이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001년 국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생 재우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재우씨가 형에게서 받은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 등을 국가에 내놓겠다고 검찰에 약속하고도 나중에 시효가 지났다며 거부한 것은 신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120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같은 해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과 관련해 8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특별사면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심의자료 공개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의 비판 대상이 돼야 한다며 정보공개판결을 내렸다.

연구실적 부진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씨가 낸 교수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는 "연구실적 심사는 주관이 반영돼 결론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실적 2편이 동시에 기준을 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사위 의결에 따라 재임용하지 않은 학교 측 처분은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며 "2편이 기준을 통과할 때까지 실적을 제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김씨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갖게 된 손모씨가 '병역의무가 생겼다고 해서 국적 포기를 제한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이중국적 병역 의무자가 만 18세가 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병역 의무를 지게 됐다면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중 국적 병역 의무자의 국적포기 제한조치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공직 생각 없다"했는데
정부·정계 러브콜 잇따를 듯

울산지법원장 재직 시절에는 법원 내 연구모임인 '민사집행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법관과 법원직원들의 대표적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 강제집행편>과 <주석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등을 공동 집필했다.

병역문제에서도 깨끗하다. 김 전 위원장 본인은 법무관으로 만기전역했고 2남 가운데 큰아들도 공군 사병으로 전역했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접한 국민들은 "퇴임 후 행보가 아름답다" "퇴임공직자의 모범이 될 만하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자연스레 행정안전부에서 추진 중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공개하는 방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안부는 또 그간 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던 변호사·회계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공직자들도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청문회 과정에서 전관예우 관행이 논란이 되는 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국가·지방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은 퇴직 전 5년간 몸담았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민간기업에 취업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행안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같은 퇴직공직자라도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자격증을 가졌을 경우에는 심사 대상이 아닌 현행 예외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현재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 등 11명 등이 발의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행안부는 유정복 신임장관이 임명되는 즉시 태스크포스를 꾸려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형 로펌 거부
"당당한 퇴임길"

김 전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1억대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대형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고위 법관이든 관료든 공직을 떠나기가 무섭게 돈과 명예를 찾아가는 요즘, 김 전 위원장 만큼은 지금의 소박한 삶처럼 조금은 다른 길을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김능환은?>

▲충북 진천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전주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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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