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진단> '방패막이' 금융권 사외이사 대해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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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찬성" 일당 500만원짜리 좀비 용병들

[일요시사=경제1팀] 거액의 연봉을 받는다. 그런데 책임은 없다. 하는 일이라고는 1년에 12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알아서 연장해 준다. 모두 사외이사 얘기다. 특히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는 연임을 못하면 '바보'라는 얘기까지 있다.



KB,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는 모두 34명. 이들 중 28명이 올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외이사
대부분 재선임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9명 중 5년간 사외이사직을 맡아 유임할 수 없는 함상문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제외한 8명의 사외이사가 재선임됐다. 이경재·배재욱·김영진·이종천·고승의·이영남·조재목 이사가 이에 속한다 조 이사는 올 들어 5년의 임기를 채우게 돼 내년이면 임기를 꽉 채운다. 함 교수의 자리에는 김용과 한국증권금융 고문이 신규 선임됐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외이사 10명 중 9명이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8명을 재선임했다. 지난 2011년 선임된 유재근 이사가 일본 내 사업 때문에 사외이사 활동이 어려워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고부인 산세이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재선임된 사외이사에는 권태은·김기영·김석원·남궁훈·윤계섭·이정일·히라카와 하루키·필립 아기니에 이사가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총 7명의 사외이사 중 올해 6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가운데 4명이 연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희택·방민준 이사는 5년 임기가 끝나 이 자리에 박영수 법무법인 산호 대표변호사와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규 선임될 예정이다.


이용만·이두희·이헌·박존지환 이사는 재선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5명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5년 임기를 모두 채운 유병택·김경섭·이구택 이사만 바뀌고 나머지 2명은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4대 금융사 '외인부대' 대부분 유임
"연임 못하면 바보" 95%이상 자리보전

물러나는 사외이사 자리는 정광선 하나대투증권 사외이사, 오찬석 LG하우시스 사외이사, 박문규 전 에이제이 대표이사가 맡을 예정이며 허노중·최경규 이사는 재선임 될 예정이다.

4대 금융지주회사의 주주총회는 모두 이달 내로 예정되어 있다.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22일, 하나금융지주가 26일 또는 27일, 신한금융지주는 28일 2012회계연도 재무제표 및 이익배당 승인,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등을 위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안 봐도 비디오'다. 주주총회는 사외이사들의 연임잔치가 펼쳐질 공산이 크다.

임기가 만료된 이사 28명 중 5년 임기를 다 채워 교체가 불가피한 6명을 제외한 22명이 연임을 한다면 95%가 넘는 인사가 자리를 지킨 셈이 된다.

2010년에 만들어진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이나 금융지주사는 매년 20% 안팎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강제'는 아닌 것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치권과 정부에서 지침과 함께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차기 금융수장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도 이와 관련된 지침이 나오지 않아 교체 폭이 좁다"며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인사는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임기가 만료된 사람만 교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를 새로 뽑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외(사추위)에서 사외이사의 힘은 막강하다. 사추위 절반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현직 사외이사가 현직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모범규준에 있는 사외이사 임기연장 제도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 때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에서 금융지주를 장악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력 살펴보니
정·관계 인사

지난 2011년 3월 우리은행 사외이사에서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긴 이용만 이사의 경우 고려대 금융 인맥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이 이사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했으며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모셔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고려대-소망교회 인맥으로 꼽히는 이두희 이사(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미디어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에서 정부 측 변호사로 나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을 이끌어 낸 바 있는 이헌 이사(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도 자리를 지켰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재선임된 윤계섭 이사(서울대 명예교수)도 MB 측 인사다. 윤 이사는 2006년 한 칼럼을 통해 "서울시는 기업 경영 기법을 도입해 재정 지출 규모를 혁신적으로 줄였다"며 "서울시는 재정 운영의 전범을 제시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KB금융지주에서는 MB 측 인사인 조재목 이사(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총장)가 재선임됐다. 2009년 처음 선임된 조 이사는 선임 당시 금융권 경력이 전무해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재선임 된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 초기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연임을 노리고 있다"면서 "이번 인사가 예정대로 끝날 경우 향후 금융지주사 회장에 따라 갈등의 골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시커녕 꼭두각시 전락
총 97건 중 반대 '제로'

모범규준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최초 임기는 2년 이내이며 1년씩 연장이 가능하고 최장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5년이라는 긴 유통기한이 있는 '철밥통'을 끌어안고 '그들만의 잔치'를 반복하는 셈이다.

철밥통이 유통기한만 긴 것은 아니다. 밥통에서 지어지는 '밥' 즉, 연봉도 어마어마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4대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의 평균연봉을 분석한 결과 1인당 평균 5000만원 내외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마비까지 합하면 최대 1억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1년에 12번 내외의 이사회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사외이사의 하루 일당이 500만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지난해 근로자 월평균임금은 299만5000원이다.


사외이사 연봉은 KB금융지주가 7650만원(2011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금융지주가 5790만원(2012년 기준), 신한금융지주가 5300만원(2012년 기준), 우리금융지주가 3300만원(2012년 기준)으로 그 뒤를 이었다.

감시 업무보다
충실한 '거수기'

거액의 연봉 뿐만아니라 사외이사는 임원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다. 해외 연수나 세미나, 출장비 지원 등 부가수입이 짭짤하다. 과거에는 유상증자 때 소액주주들이 포기해 생기는 실권주를 사외이사에게 배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사외이사는 본연의 '감시' 업무보다 '거수기'역할에 충실했다. 이사회 출석률이 50% 미만인 사외이사도 부지기수며 사외이사로서의 역할보다는 이력서 채우기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 9개월간(2012년 1∼9월) 40번의 이사회에서 97개의 안건을 처리했다.

KB금융지주는 10번의 이사회에서 20개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일부 사외이사들이 불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을 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12번의 이사회에서 27개 안건을 처리한 우리금융지주와 8번의 이사회에서 30개의 안건을 처리한 하나금융지주도 반대표는 없었다. 10번의 이사회에서 20개의 안건을 처리한 KB금융지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만의 거액 연봉 잔치'
KB 7650만원 하나 5790만원 
신한 5300만원 우리 3300만원

경영진에 찬성표만 던지고 있는 사외이사들. 이들이 하는 일은 대체 뭘까.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주로 학계, 시민단체 등의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지만 이런 현상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사외이사진을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하는 게 관행이 돼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사외이사들의 가장 큰 역할을 '방패막이'라고 분석한다. 4대 금융지주사에 재선임 혹은 신규선임으로 추천된 인사들 면면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전직 관료나 현직 로펌 고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러한 사외이사들의 면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전문성'을 그 이유로 든다. 금융회사의 특성상 업무이해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정관계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보험용' 내지는 '로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에 재선임된 배재욱 변호사는 대통령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공보담당관 경력이 있으며 고승의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자문위원을, 신규선임된 김영과 고문은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역임했다.

금융 전문성 결여
독립성도 확보해야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재선임된 이용만 현 이사회 의장이 재무부장관, 은행감독원장으로 재직했고 이헌 대표는 홍익법무법인과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신규선임된 박영수 변호사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을 역임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재선임된 반장식 원장이 기획예산처 차관·재정운용실장을 역임했고 김경림 고문은 현직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임고문이다. 하나금융지주도 행정안전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최경규 교수를 재선임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기업의 로비 활동을 위한 창고로만 쓰이고 있다"며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소액주주 과반 찬성을 선임요건으로 한다든지, 기존 사추위와 별도로 소액주주 대표들로 구성되는 사추위를 두는 등 독립성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달 각 기업 정기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약 150명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국세청·공정위 수장들 영입

대기업들이 전직 검찰, 국세청 고위 인사를 잇달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경제검찰'로 위상이 높아진 공정위 고위관료 출신 또한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송 전 총장은 사법고시 13회 출신으로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와 법무부 법무실장을 역임했다.

삼성전기는 이승재 전 해양경찰청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이 전 청장은 사법고시 24회 출신으로 서울 서초경찰서 서장을 역임했다.

GS는 22일 주총을 통해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실 사정비서관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던 정호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며 신세계는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SK텔레콤은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 올렸다. 오 전 청장은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해 국세청 정책홍보관리관·조사국 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대표적 국세청 관료다.

현대모비스는 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며 현대건설은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재선임 명단에 올렸다. 롯데케미칼은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서현수 세무법인 우경 회장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CJ제일제당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갑순 회게법인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했다.

KT는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추천했다. 송 고문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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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