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부르는' 저주의 마창대교 스토리

화려한 조명 속 난간에 떠도는 영혼들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08년 7월부터 개통된 경남 창원시의 마창대교. 이 웅장하고 화려한 다리는 경남의 명물이자 시민들의 교통체증을 절감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남해안의 연결고리인 마창대교에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꼬리처럼 따라붙고 있는데, 바로 ‘자살대교’다. 준공식을 마친 해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마창대교에서 자살 혹은 자살소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자살을 부르는 저주의 마창대교. 과연 언제쯤 이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난 1997년 마산과 진해를 연결하는 우회도로 설계를 마친 후, 2004년 4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약 50개월 동안의 기나긴 공사기간과 민간자본 1840여억원의 투자로 완공된 마창대교. 이는 남해안을 가르는 대표적 다리이자, 국내 최대의 고도를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연 400여억원의 물류비를 절감케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4계절 화려한 조명연출 또한 이 다리의 볼거리다.

자살대교
오명 왜?

이처럼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마창대교에도 결정적인 흠이 있었는데 마창대교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 이른바 ‘자살대교’다. 마창대교는 개통된 해 한 20대 청년이 연인과의 이별을 비관해 투신자살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매년 5명 남짓의 시민들이 자살 혹은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자살사건이 연중행사처럼 잇따르고 있어 ‘자살 명소’라는 웃지 못 할 오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자살대교라는 오명의 시초는 개통 한 달 만에 발생한 20대 청년의 자살사건이었다. 2008년 8월15일 오후 1시50분께 이 남성은 마창대교 중간지점에서 64m 아래 바다로 투신자살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 살인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용의자였다.

남성은 전날 오전 8시35분쯤 진해시의 한 주택에서 여자친구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데 앙심을 품고 미리 준비해간 흉기로 여자친구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아버지를 살해하고 2명에게는 중상을 입힌 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튿날 그는 창원시 대원동에서 영업용 택시를 타고 도주하다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택시기사에게 “차를 세우지 않으면 차문을 열고 뛰어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택시는 마침 마산부근에서 창원방향 마창대교를 지나던 차였다. 겁에 질린 택시기사는 곧바로 차를 세웠고, 차에서 내린 남성은 중앙분리대를 넘어 맞은 편 다리 난간으로 달려가 1분가량 망설이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후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이 남성을 구조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20대 살인용의자 개통된 해 죄의식 안고 투신자살
아내와 사별한 남편 아들 밀치고 자신도 뛰어내려


비록 첫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형사처벌 대신 자살로 죗값을 치르려 했던 용의자이긴 했지만 개통 한 달만의 자살사건은 마산시와 창원시의 입장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후 다음달에는 한 30대 남성이 렌터카를 교각에 세워놓고 투신했으며 다음해엔 5명, 그 다음해엔 7명이 투신자살해 2년새 16명이 자살시도, 1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명예스러운 전례를 갖고 있다.

2010년 8월18일 새벽 3시22분께 마창대교에서 60대 남성 최모씨가 70m 아래 바다에 투신한 것을 마창대교 관리공단 직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공단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해경은 대교 주변에 경비정을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으며 이들은 최씨가 투신한 지 약 30분 후 그를 인양했지만 이내 숨졌다.
신고를 한 관리공단 관계자는 “이날 새벽 교량 갓길에 스타렉스 승합차가 세워져 있었지만 운전자가 보이지 않아 투신자살한 것으로 판단돼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결과 최씨는 투신 2시간 전에 아내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집을 나간 뒤, 홧김에 바다에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고 비관해
부자동반자살도

역시 같은 해 다음 달인 9월12일 40대 아버지가 생활고를 비관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마창대교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이 보도돼 당시 전국은 침통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이 사건은 마창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사건 중 가장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아 국민 뇌리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사건당일 오전 9시48분경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40대 남성과 그의 아들이 마창대교 한 가운데 난간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CCTV 확인 결과 남성은 교각에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 놓고 아들을 먼저 뛰어 내리게 하고 아버지도 곧바로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CCTV에 녹화된 장면을 보면 아들은 뛰어 내리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다리 난간을 잡으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가 뒤에서 밀치는 아버지의 힘에 의해 바다 속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였으며, 아들을 밀친 아버지도 곧 뛰어 내려 계획된 자살임이 드러났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남성이 생활고를 비관해 투신자살한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유서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하나 남기지 않았으며 그 누구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처지 비관 30대 취객 속옷 입고 자살 소동
개통후 2년 동안 14명 스스로 목숨 내던져

지난해 위암으로 아내를 잃고, 어머니 명의로 된 진해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온 그는 대리운전을 하며 한 달 급여 7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대리운전을 하기 전에 그는 개인 사업을 했지만, 위암을 앓고 있던 아내 병원비로 인해 점점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가 사망한 뒤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받아온 유족연금 22만원을 합쳐도 한 달 수입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았고,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한부모가정 양육비’로 지급되는 5만원과 아들의 학교 급식비 감면혜택을 받았으나 생계유지엔 턱없이 부족했다. 

생활고를 이유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자동반자살사건’은 당시 각박한 사회풍토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서민의 고충이 가장 잘 반영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전국이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약 열흘 후에 마창대교에서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밤 10시40분쯤 만취한 30대 남성 조모씨가 대교 위에서 속옷만 입고 바람막이 난간 위에 올라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가까이 오면 뛰어 내리겠다”며 2시간가량 소동을 벌였다. 조씨는 처와 이혼문제로 자주 다투는 등 가정불화 때문에 술을 마신 뒤, 이 같은 소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조씨의 자살소동이 쉽게 무마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의 친누나와 직장동료 등을 불러 설득작업을 벌여 2시간 만에 조씨를 구조했다. 조씨의 경우 다행히 소동에서 마무리 됐지만 앞서 발생한 부자동반자살의 연장전이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가 깊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마창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사건에는 묘한 공통분모가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8,9월에 투신자살이 잦았다는 점이다. 소동으로 일단락된 후에도 마창대교의 8월의 저주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처지비관
자살소동 잇따라

2011년 8월23일 오전 9시14분께 50대 민모씨가 마창대교에서 70m 아래 바다로 투신해 숨졌다. 택시를 몰던 민씨는 갑자기 차를 교각에 세웠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다 속에 몸을 던졌다. 이를 목격한 마창대교 관제탑 관계자는 “이날 오전 주탑 2교각 5번 사이 사량교에 택시가 세워진 후 운전자가 대교 아래로 뛰어내려 순찰팀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대교 순찰팀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투신한 뒤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민씨가 개인택시기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으며 유서 및 통화기록 등 정황자료가 충분치 않아 정확한 자살 경위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8월에도 자살소동이 일었다. 4일 오전 3시쯤 마창대교 난간에서 한 30대 회사원이 투신자살소동을 벌였다. 이 남성은 평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왔고 “견디기 너무 힘들다”며 1시간 반가량 다리 난간에 걸터앉은 위험한 자세로 소동을 벌이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119 구조대의 지속된 설득 끝에 난간에서 내려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 2월에는 마산합포구 영월동 모 사찰 소속의 한 70대 스님이 자살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스님은 19일 0시48분경 1톤 트럭으로 마창대교 중간지점으로 이동 후, 차량을 세워 놓고 투신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님은 트럭을 몰다 차량을 노견에 주차해 놓고 다리 밑으로 투신했다. 경찰은 스님이 평소 사찰 운영 관계로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찰 및 유족들을 상대로 사망 경위를 조사에 나섰다.

자살 방관하는
마창대교?

그렇다면 마창대교에서 자살이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마창대교의 최대 단점으로 타 대교와 상대적으로 낮은 난간높이를 꼽았다. 실제로 마창대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안전시설은 터무니 없이 허술하다. 마창대교는 난간 높이가 어른의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아 자살과 같은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보행자 거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차량을 정차하는 경우도 빈번할 뿐 아니라 보행자가 다리 위를 다녀도 이를 막는 직원이 딱히 없는 데다, 다리에 설치된 CCTV는 8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 광안대교의 경우 41대나 되는 CCTV가 다리에 설치돼 보행자가 접근하면 곧바로 경광등이 켜지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차를 교각에 정차할 경우에도 곧바로 순찰팀이 출동하는 등 보행자와 차량 정차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어 자살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개통 후 매년 자살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해결방안이 구축되지 않아 항간에서는 “도 관계자들이 주민들의 자살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마창대교의 허리까지 오는 다리 난간을 1m가량 더 높이면, 순찰팀이 출동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심리적인 압박을 통해 충동적인 자살을 막을 수 있지만, 말만 나왔을 뿐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자살대교 오명을 떠안았던 지난 2010년 한 경남도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내 한강다리에서는 연간 수십명이 투신하는데도 쉬쉬하는데, 언론이 유독 마창대교와 관련 자살 사건만 크게 다루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드러내면서도 “마창대교가 자살대교로 불리지 않도록 언론과 도민이 적극 협조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당부했다.

연간 100억 가까이 되는 도민 혈세로 운영되는 마창대교는 향후 30년간 1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부과될 전망이라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마창대교가 경남의 명물이자 랜드마크로 거듭날 것이라는 도의 바람과는 달리 ‘돈 먹는 자살대교’로 전락되고 있어 씁쓸함을 남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남엔 목포대교

벌써 8번째 투신자살

지난해 6월 말 개통된 목포대교 역시 마창대교 못지않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목포대교는 개통한 지 불과 70일도 채 안 돼 전남도민 6명이 잇따라 투신자살했다. 목포대교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당국이 순찰을 강화하고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등 방지대책 마련에 나섰다.

목포대교에서는 지난해 7월4일 곽모(34·목포시), 15일 최모(40·광주시), 8월3일 김모(34·무안군), 14일 정모(33·광주시), 30일 채모(36·목포시), 9월6일 신모(30·목포시)씨 등 6명이 투신자살했다.

올해 2월에는 한 10대 소녀가 목포대교에서 신변 비관으로 몸을 던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모양은 2월22일 오후 3시께 목포시 죽교동 목포대교 중간 지점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를 순찰중이던 해경 경비정이 발견했지만 강양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강양의 자살로 목포대교에서는 개통 1년도 채 되지 않아 8번째 희생자가 나오며 마창대교에 이어 포스트 자살대교로 불리고 있다.

목포시는 자살방지를 위해 투신 사건이 집중되는 매일 오후 9시부터 오전 2시까지 해병전우회, 자율방범대 등 5개 민간단체가 2인 1조로 차량 순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량 관리기관인 익산지방국토관리청도 17억원을 들여 보행자 접근을 실시간 감시하는 첨단 CCTV와 센서를 교량 양 끝 2곳과 중앙 4곳 등 총 6곳에 설치했다.

또 목포대교에서 CCTV가 읽은 상황을 목포대교 유지관리사무소와 목포경찰서·목포해양경찰서·목포시 상황실이 공유하며, 상황 발생 때는 기관 간 핫라인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한다. 목포대교에 투신 의심자가 나타날 경우 자동 경보음에 이어 경고 메시지를 보낸 뒤 경찰과 해경 등이 동시에 신속하게 출동해 투신을 저지한다.

구자명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CCTV 설치로 목포대교에 대한 24시간 체계적 감시가 가능해져 투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목포대교는 죽교동 북항과 고하도(신외항)를 연결하는 3.1km의 해상교량으로 지난해 6월29일 개통돼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되는 등 도민들을 위한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어 서남권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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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