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④김우중의 대우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07 16: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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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돈 숨길 금고도 많다"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1967년 3월 섬유수출업체인 한성실업 무역부장 시절 31세의 청년 김우중은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서울 충무로의 열평 남짓한 사무실에 트리코트 수출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실업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셔츠와 내의류 원단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빠르게 시장을 넓혔다. 설립 1년만인 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였다.

'대우제국'꿈 날린
'킴기스칸'무리수

70년대 들어서서 대우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아래 급속히 사세를 확장했다. 김우중은 '킴기스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칭기스칸이 동유럽, 중동, 송나라, 고려 등 기병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휩쓸었던 것처럼 김우중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 가리는 곳 없이 발을 뻗었다.  

73년 영진토건(대우개발), 74년 대우전자, 76년 한국기계를 인수했고 78년에는 옥포조선소(대우조선),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를 각각 넘겨받았다. 83년에는 대우전자와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묶어 대우전자로 키웠으며 같은 해 동양증권과 삼보증권을 사들여 대우증권을 설립했다. 이후 대우실업이 ㈜대우로 바뀌면서 그룹회장제가 도입, 그룹 외형이 갖춰졌다.


90년대 들어 김우중 회장은 해외시장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93년 세계경영의 경영이념을 선포함과 동시에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과 구소련 지역에 진출하는 등 확대경영 전략을 폈다.

98년 말 대우는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5000명, 해외사업장 외국인 종업원 21만9000명, 해외법인 396개사의 공룡재벌로 성장했고 자산기준으로 삼성,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외화내빈'이요 '속 빈 강정'이었다. 110여억달러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해외투자는 '부메랑'이 돼서 날아왔고 이를 떠받치기에는 내부구조가 취약했다. 이럼에도 김 회장은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았고 국·내외 사업장들의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갔다. 99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기업들이 몸을 웅크리던 상황에서 김 회장의 선택은 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갔다.

98년 12월8일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10개사로 감축하는 구조조정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99년 1월21일 수영만 부지 매각 등의 재무구조 개선 계획, 4월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김 회장 보유주식 매각대금 3000억원 출연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잇따라 발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정통 대우맨들 경영 일선서 활발한 활동
김 전 회장, 베트남서 '김우중 2세' 키운다

하지만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GM과의 협상,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간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대우는 벼랑 끝에 몰렸다.

결국 6월 말 대우 사장단 전원의 사표제출에 이어 7월19일 대우그룹은 10조1000억원에 이르는 김 회장의 전 재산 담보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했다. 이어 채권단이 대우에 신규자금 4조원 지원을 결의, 김 회장은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99년 8월26일 이미 25곳으로 줄어든 전체 계열사 가운데 ㈜대우,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전자, 대우전자부품, 쌍용자동차, 대우캐피탈, 경남기업, 오리온 전기, 다이너스클럽 코리아 등 12개 계열사가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됐고 대우증권 등 나머지 13개 계열사는 독자적 회생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 돼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GM이 인수, 2002년 10월17일 ‘GM대우차’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GM대우는 내수 시장에서 고전을 계속하다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 한국GM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된 쌍용자동차는 2005년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됐다가 판매 부진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9년 법정관리체제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 사태로 노사, 노조간 갈등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됐다.

㈜대우는 대우존속법인과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등 3개사로 재탄생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 드물게 ‘대우’로고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난 이후 2010년 한국산업은행으로 인수됐다. 경남기업은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우건설에 인수됐다가 2004년 대아건설을 합병했다.

이리 저리 팔린
대우 계열사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로 재탄생했으며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수주 실적 1위에 올랐지만 현재까지도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대우중공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정공, 한진중공업과 함께 통합법인 한국철도차량을 설립했다. 이후 한국철도차량의 지분이 2001년 현대자동차에 전량 매각되면서 지금의 현대로템이 설립됐다.

대우전자는 지속적으로 규모를 줄이다가 2002년 말 주력사업부문이 대우모터공업으로 양도됐고 이 회사는 2003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했다. 채권단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5년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 가격과 매각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줄줄이 무산되다가 지난 2월 8년 만에 동부그룹 품에 안겼다.

대우그룹 해체 전 채권단에 인수된 대우증권은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됐다가 2009년 한국산업은행 민영화에 따라 새롭게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다이너스카드클럽 코리아는 2001년 8월 현대자동차에 매각되어 현대카드로 탈바꿈했으며 대우캐피탈은 아주그룹으로 편입되어 아주캐피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41조원대의 분식회계와 이를 통한 10조원대의 불법 대출과 재산 은닉 혐의를 받던 김 전 회장은 99년 10월18일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준공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서 낭인 생활을 했다. 독일과 베트남, 프랑스 등지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2000년 이후 대우차 노조가 체포결사대를 조직하고 수배에 나서자 모로코와 수단 등지로 계속 숨어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끊임없이 나도는
김 전 회장 재기론

2001년 3월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오른 김 전 회장은 2002년 한국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됐지만 1987년 가족들과 함께 취득한 프랑스 국적을 이용,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5년8개월간의 해외 잠행 생활을 마치고 2005년 귀국한 김 전 회장은 바로 철창 신세를 졌다. 이후 심장질환 등 건강 악화로 한 달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2007년 12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마지막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원됐던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구명 로비의혹 수사 과정에서 추징을 피하기 위해 1000억원대 재산을 숨긴 혐의로 2008년 9월 불구속 기소돼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대우그룹 해체는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려고 약 3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41조원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30조원의 혈세 대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털터리'지만 김 전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업계에서 김 전 회장의 재기론이 끊임없이 나도는 이유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사면 이후 2009년 2월 고 김수환 추기경 빈소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대우그룹 창립 42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같은 해 10월 열린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창립총회에서는 육성이 담긴 영상편지를 대우 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가장은 빈털터리…가족 재산은 증가
허공으로 사라진 국민 혈세 30조원


2010년과 2011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행사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면서 매일 골프를 즐기는 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 전 회장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실질적인 운영과 자금을 지원하는 해외 청년 취업프로그램 '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을 이끌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직계 가족들은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을 맡고 있으며 차남인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아도니스CC의 대주주를 맡고 있다. 2005년 아도니스CC 대표이사에 취임한 선엽씨는 2010년 이경재 이사를 대표이사로 올린 뒤 등기 임원에서 빠졌다. 장남 선재씨는 1990년 미국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 전 회장의 외동딸 선정씨는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냈고, 지금은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광주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특히 선정씨는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안사람으로서 이수화학 지분 3.8%와 이수페타시스 지분 6.5%를 보유하고 있다. 선정씨의 주식보유액 가치는 241억원에 이른다.

매년 빠짐없이 창립 기념식을 열고 있는 옛 '대우맨'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우렁차다.

여전히 막강한
총수일가 영향력

대표적 인물이 장병주 전 ㈜대우 무역부문 사장이다. 대우그룹 사태의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다 지난 2007년 12월 사면 복권된 장 전 사장은 지난 2011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맡아 세계경영의 재평가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1976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뒤 지난 30여 년 동안 '대우외길'을 걸어왔던 이성 전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은 최근 대우일렉이 동부에 인수된 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됐으며 지난해 3월 선임된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1980년 대우그룹 입사 후 대우밥만 먹은 정통 대우맨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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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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