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스토리> 두 얼굴 공무원의 천태만상

편하니 딴 생각…철밥통의 위험한 이중생활

[일요시사=사회팀] 타의 모범이 돼야할 공무원들이 연이은 막장행태를 보이고 있다. 의붓딸 성폭행, 수차례에 걸친 미성년자 성매매와 사기도박 행렬, 수억원대 공금횡령까지 강력범죄를 일삼는 무개념 공무원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반듯한 이미지와 추악한 욕망이 공존하는 공무원의 충격적인 이중생활을 공개한다.  



영화 <배트맨>의 ‘투페이스’가 현실에서도 존재했다. 주인공은 바로 공무원. 이들 중 일부는 각종 성범죄와 도박, 사기 등 강력범죄와 다를 바가 없는 범죄를 저지르며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 이처럼 공무원의 범죄 수위는 날로 높아지는 반면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양의 탈 쓴
늑대 아빠

지난 15일 동거녀의 미성년자 두 딸에게 음란물을 보여주고 수차례 성폭행한 30대 남성 양모(30)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양씨는 무기 계약직 공무원으로 2007년부터 동거녀와 더불어 동거녀의 딸들, 초등학교 재학 중인 연년생 자매와도 한 집에서 살았다.

동거녀는 양씨의 근면성실함과 한결같음에 반했고, 특히 어린 두 자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점이 마음에 들어 동거를 결심했다. 양씨는 잘못이 있을 때는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지만 두 자매를 친아버지 못지않게 살뜰히 챙겨줬다. 두 자매는 점차 양씨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친아버지처럼 양씨를 잘 따르게 됐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씨는 숨겨왔던 검은 욕망을 하나씩 들춰내기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양씨는 당시 8살, 7살이던 두 자매를 자신의 변태적인 성욕을 채우는 성노리개로 전락시켰다. 양씨는 당시에 음란 화상채팅에 중독돼 있었고 성욕을 채우기 위해 두 자매에게 음란물을 보여주며 버젓이 음란 행위를 따라 하도록 강요했다.


어린 의붓딸 상습 성폭행…변태 성행위도
미성년 성범죄 교육공무원 비율 10배 이상

너무 어린 나이 탓에 ‘성’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던 두 자매는 아버지 같은 양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자신들이 성폭행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양씨에게 끔찍한 유린을 당했다. 양씨의 변태적인 행각은 2009년부터 동거가 끝나는 2011년까지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3년 넘게 이어졌고 두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무려 4년이 지나서야 이모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았고 이모의 신고로 두 자매는 양씨와의 ‘위험한 동거’를 끝낼 수 있었다. 양씨는 경찰에서 “당시에 음란 채팅에 빠져서 욕정을 참지 못해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양씨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공무원의 성추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인천 중구 운서동의 한 호텔룸에서 세관 하청업체 여직원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세관 공무원 박모(38)씨가 준강간미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9급 공무원인 박씨는 주말에 자신이 관리감독 하고 있던 하청업체 여직원(24)을 업무 핑계로 출근 시킨 뒤 인근 주점에 데리고 가 술을 마셨다. 그는 여직원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근처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여직원이 정신을 차리고 완강히 거부의사를 표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박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직원의 나체사진을 찍어 협박했고, 이를 약점 잡아 괴롭히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박씨는 모든 혐의를 시인했다. 경찰조사결과 박씨는 하청업체 소속인 여직원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악용해 강제 성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룸서 집단강간
7급 공무원도


이 외에도 공무원의 인면수심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었다. 2011년 4월 초 문화체육관광부 7급 공무원 유모(31)씨 등 3명이 서울 노원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혼자 온 여대생(20)을 집단 성폭행한 뒤 신고를 막기 위해 강제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유씨와 공범 2명은 즉석만남을 통해 피해자와 합석했고, 룸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은 뒤 돌아가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밀치고 어깨를 누르는 등 힘으로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반발하자 온몸을 더듬으며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등 강체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트 공무원으로 정평이 난 유씨는 경찰조사에서 합의하에 관계를 맺은 것이라며 자신의 범행을 거듭 부인했고, 검찰에 넘겨진 사건은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되며 증거확보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끝내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질 때 즈음, 유전자 검사결과가 나왔고 피해자의 신체에서 유씨 일행의 것으로 추정되는 타액이 검출돼 혐의가 일부 드러나 그들은 특수강간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다음해 7월, 서울북부지법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 등)로 불구속 기소된 공무원 유씨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죄질이 불량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채 피해자가 합의금을 노리고 허위 진술한다며 비난하고 있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성매매도 예외라고 볼 수 없다. 특히 학생들의 가까이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 공무원들의 미성년자 성매매 비율이 타 부서 공무원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 결과 교육 공무원 10명 중 4명은 성매매 혹은 도박에 손을 댄 적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벌금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른 복직도 가능했다.



일례로 제주교육청의 교육 공무원들이 성매매 혹은 성범죄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청 측은 해당 교사 및 직원들에게 경범죄에 가까운 벌금이나 징계 수준의 처벌을 내렸고, 몇 개월 후 복직시켰다. 다른 사례로는 이사장의 아들인 중학교 교사 정모(50)씨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을 차 안으로 유인해 관계를 맺은 뒤 8만원을 건네 미성년자 불법성매매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이후에도 정씨의 사표는 수리되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파렴치한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 및 성매매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걸맞은 중형이 가해져야 하는데 그런 사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복직을 시켜주거나 동료 직원 및 교사가 선처를 요하는 투서를 보내는 등 교육부의 체면 세우기에만 급급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공무원들의 기강해이에 따른 강력범죄는 비단 성범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기도박과 불륜, 수십억원대 공금횡령 등 공무원의 범법행위는 연중행사처럼 꼬리를 문다.

사기도박·횡령
이젠 일상범죄?

지난해 8월 불법게임장을 운영하던 교육 공무원과 전문적인 수법을 이용해 사기도박을 벌여온 교육 공무원이 덜미를 잡혔다. 아에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등 교육 공무원의 근무기강이 흔들리고 있다. 인천경찰청 수사과는 마킹 카드를 이용해 상습 사기도박을 벌인 인천의 한 중학교 행정실 김모(55)씨 등 2명에 대해 사기도박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함께 도박에 가담한 자 1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2011년 7월부터 최근까지 인천 남구 숭의동 사무실에서 마킹 카드를 이용해 사기도박 판을 벌여 1억45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교육 공무원과 인천시 기술직인 이들은 매회 500만∼1000만원의 판돈을 걸고 16차례에 걸쳐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박·대낮술판·공금횡령 다반사 
뿌리 깊은 부정부패…강력처벌 시급


이에 앞서 인천의 현직 교육청 공무원이 자신의 부인과 내연녀 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불법 게임장을 수년 동안 운영해 수십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겨 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2012년 5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조모(47·기능직 교육 공무원)씨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도박개장)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008년 초부터 10월까지 인천 서구 석남동의 한 상가 2층을 임대해 동거녀를 바지사장으로 세워 놓고 ‘바다이야기’ 게임기 30대를 설치 운영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다음해인 2009년 3월까지 동서를 바지사장으로 세워 같은 방법으로 불법 게임장을 운영했다. 또 조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 2010년 2월까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자신의 처와 동서, 내연녀 조카 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해 하루에 500만원씩 무려 20여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이 같은 교육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위가 이어지자 교육부는 기강해이 다잡기에 나섰지만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공무원의 부정행위는 나아가 억대 공금횡령에 마침표를 찍는다. 행정 공무원의 공금횡령은 보편화된 범죄로 인식될 정도로 빈번하다.

전남 여수시의 8급 공무원 김모(48)씨는 200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총 80여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공금을 대담하게 횡령했으며 그의 부인 및 친척도 사채놀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김씨의 범행이 발각됐지만 사라진 공금은 제대로 환수가 불가능했고, 그는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외에도 같은 해 12월 전남 완도군에서는 군청 여직원 최모(38)씨가 5억원대의 공금횡령을, 역시 같은 달 광주시 동구청 여직원 임모(44)씨가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온 동료들의 환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등 수천만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범죄 근절 위해
강력 징계해야

범법수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정부도 징역 5년 이상의 중징계 및 파면처분을 하는 등 처벌법을 강화하고 있지만 뿌리 깊이 박힌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쉽사리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근무시간임에도 사우나를 다니며 대낮술판을 벌이고, 외근을 핑계로 도박장이나 불법변태업소를 기웃거리는 불량 공무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각종 비리와 범죄로 얼룩져버린 공무원의 기강해이를 바로잡기 위한 강력 처벌이 시급해 보인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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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