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대굴욕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18 14: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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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두목님 개망신…김태촌 뜨니 '동네북'

[일요시사=사회팀] 서울 청담동 유명 고깃집 사장이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납치됐다. 고깃집 사장의 정체는 유명 조폭이었다. 연예계는 물론 정·재계에도 발을 뻗친 이 거물을 누가 납치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80년대 전국구 주먹시대를 열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지난달 5일 세상을 떠났다. 김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로 시시각각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범서방파 조직원 나모(48)씨도 있었다. 나씨는 김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유족들과 함께 김씨의 장례식을 도맡아 옛 보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심복 중의 심복이다.

김태촌 사후
최측근 납치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나씨는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국제PJ파 조직원 조모(54)씨 등에게 납치·폭행을 당했다. 나씨의 납치 사건은 지난 3일 벌어졌다. 범서방파 조직원으로 전해진 익명의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이날 가해자 조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나씨에게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와 나씨는 과거 금전거래를 하는 등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청담사거리에는 나씨가 운영하는 유명 고깃집이 있었다. 특별한 의심 없이 조씨를 만나러 간 나씨는 이날 오후 9시께 차를 몰고 나타난 조씨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조씨는 나씨에게 "나와 이야기 좀 하자"며 나씨의 승차를 권했고, 차에 탄 나씨는 조씨에게 납치당했다.

조씨의 차량은 경기도 용인 기흥 방면으로 향했다. 이동 과정에서 조씨는 조폭 5명과 함께 나씨를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함께 있던 조폭 5명이 국제PJ파 소속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나씨를 납치한 차량은 서울을 떠난 지 약 5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1시50분께 기흥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씨는 그곳에서 조씨 등에게 "소변이 마려우니 내려달라"고 말한 뒤 차량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휴게실 식당에 숨은 나씨는 곧장 경찰에 납치·폭행사실을 신고했고, 신고 사실을 눈치 챈 조씨 일당은 즉각 사건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 패밀리 주축 악명 높은 전국구 조직
사실상 1인자 국제PJ파에 납치·폭행

사건 관련 진술에서 A씨는 "조씨가 나씨에게 '곧 큰 도박판이 열리니 2억원을 준비하라'고 전했다"면서 "국제PJ파는 오래 전부터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다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씨는 경찰 조사에서 개인적 채무 관계로 일어난 말다툼이 커진 사건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을 말한 A씨와 개인 원한을 말한 나씨의 진술이 상호 엇갈리는 상황. 현재 경찰은 금전 관계로 인한 납치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조폭 간 세력 다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씨와 조씨 모두 오래 전부터 거대 조직의 실력자로 지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 A씨는 이번 사건을 전하며 "나씨가 최근 범서방파 새 두목으로 추대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나씨가 새 두목으로 추대돼 조직을 이끌어왔다는 소문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씨와 고인인 김씨가 워낙 친밀했다 보니 "나씨가 조직을 다시 추스르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확대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씨 주변을 수년간 취재해 온 한 기자는 "나씨가 범서방파에서 행동대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복수 언론에 이미 확인된 내용으로 나씨는 김씨가 전성기를 맞았던 1980년대부터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7월 인천에서 벌어진 뉴송도호텔 사건에 개입한 김씨는 나씨에게 사주해 뉴송도호텔 H모 사장을 습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은 서울고검 P모 부장검사의 이권개입 파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검사와 조폭간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났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P검사는 결국 옷을 벗었고 폭행을 사주한 김씨는 수감됐다. 특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김씨는 수감 이후 많은 수하를 잃었는데 약해진 범서방파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씨는 계속 김씨 곁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던 90년대. 범서방파 출신 조직원들은 차례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연예매니지먼트, 외식 사업 등에서 성공을 거뒀다.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둔 나씨 역시 고깃집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간에서는 김씨가 출소 후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자 몇몇 후배들이 김씨에게 예우 차원에서 돈봉투를 건넸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 주변에서는 "김씨가 잘 모르는 돈을 받았다가 또다시 사정기관의 표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는 증언도 들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김씨는 돈봉투를 거의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씨 곁을 꾸준히 지킨 나씨는 김씨 투병 중에도 남몰래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수차례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의심이 많았던 김씨지만 그런 김씨도 나씨에게만큼은 마음을 터놨던 것으로 보였다.

은퇴한 실력자
최대조직 보스

김씨가 대외적으로는 손을 씻고 신앙 활동에 전념한 사이 나씨는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특히 나씨가 1999년부터 운영했던 고깃집은 명사들의 단골집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2000년대 초반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고깃집으로 수차례 전파를 탔던 P고깃집은 분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집의 단골 명사로 알려진 배우는 한류스타 B씨, 남자 배우 S씨, P씨, K씨, L씨, 여자배우 L씨, S씨, C씨, H씨 등이며, 가수 L씨와 J씨, 개그맨 L씨와 Y씨도 이 고깃집에 자주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깃집 사장인 나씨의 휴대폰에는 4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주로 연예계 종사자들이 많은데 웬만한 방송 드라마 종영 파티도 이 고깃집에서 열릴 정도로 연예계와 나씨의 친분은 두텁다.

특히 가수 K씨는 나씨의 고깃집 운영이 어려워지자 수천만원을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등 나씨와 각별한 우정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었다. 한때는 의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붙어 다니며, K씨 측근들과 자주 술자리를 갖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4년 나씨는 수입 소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다가 경찰에 탈세 혐의로 체포됐는데 이때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바로 K씨다. K씨 외에도 L씨와 Y씨 등이 "나씨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분"이라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나씨는 수입 갈빗살과 안창살을 한우로 속여 팔아 모두 42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10억여원에 이르는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나씨는 지난 2007년 H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도 연루됐다. 당시 행동책이었던 범서방파 출신 오모씨가 그룹 측 관계자와 나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나씨가 직접 폭행에 관여한 건 아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나씨의 마당발 인맥은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다. 나씨가 지금도 조폭계 거물로 분류되는 건 이 같은 넓은 인맥에 기인한다는 것이 사정기관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나씨가 과거 '3대 패밀리'로 불렸던 범서방파 출신인 건 사실이나 실질적인 역할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씨가) 아마도 사업이 잘 풀리면서 오래전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실제 경찰은 현재 범서방파 조직원을 11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50대에 가깝거나 이미 50대를 넘긴 원로급으로 일선에서 조직 활동을 벌이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나씨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 때문에 주변에서는 늘 나씨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씨가 한우를 공급받았던 호남 일대의 축산 농장도 조폭들의 은신처로 의심받았을 정도다.

특히 과거 범서방파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조폭들은 돈벌이가 여의치 않을 때면 과거 조직원들을 찾아가 '반강제적인 도움'을 요청했는데 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그 타깃이 됐다. 그리고 이들 사업가 중 일부는 현역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시 조폭 사업에 발을 들이는데 나씨가 지금도 이들 조폭의 이권다툼에 개입됐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은퇴 했다니까
돈만 내놓으쇼

이런 나씨를 납치한 국제PJ파는 호남을 근거로 한 광주지역 최대폭력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PJ파는 1986년 무렵, 광주 충정로에 있는 국제당구장과 PJ음악감상실을 주 집결지로 애용했는데 이를 수사하던 당국은 이들을 묶어 국제PJ파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국제PJ파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제PJ파의 탄생 배경과 관련 한편에서는 범서방파 일원이었던 김모씨가 서열 문제로 조직을 나와 국제PJ파를 만들었다는 설이 들린다. 하지만 호남을 근거로 한 조직이 워낙 많은 탓에 이들의 계보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현재 범서방파와 국제PJ파 전쟁설이 도는 이유는 양 조직 모두 호남 출신 조폭이라는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국구 반열에 올라선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세를 키웠다. 이는 양 조직 간의 격차를 불러왔다. 범서방파 김씨가 정·관계를 주무르며 사업의 스케일을 불린 것과 달리 국제PJ파의 조씨 등은 독자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실제 조직원 규모에서는 두 조직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굴리는 돈다발'이 다르다 보니 양 조직 간 격차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김씨 수감 후 범서방파는 대부분 서울에 자리 잡고 안정적인 소득원을 찾았다. 하지만 국제PJ파는 1990년대부터 광주지검의 집중 수사를 받으며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았다.

개인적인 원한? 조직 세력다툼?
"조만간 피 튀는 전쟁 일어난다"
범서방파 vs 국제PJ파 혈전 임박

재계와의 커넥션을 담당했던 현모씨, 여모씨 등이 구속됐고 이번 납치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씨도 수감됐다. 국제PJ파가 이제 막 전국구로 올라설 무렵이었다.

그러다보니 국제PJ파는 늘 범서방파에 대해 '매스컴이 만들어 낸 조폭'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세력도 약하고 깜냥도 안 되는 조직이 한 마디로 너무 과대 포장됐다'는 푸념이었다.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다른 조직과 '전쟁'도 하고 조직 보존을 위해 여러 활로를 개척하는 등 나름 조직범죄를 벌여왔다. 하지만 범서방파는 알려진 것에 비해 조직 활동도 전무하고, 그 흔한 업소 관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0년대 중반까지 조직원이 12명으로 축소된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58명을 유지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조씨 등 수뇌부는 이미 너무 많이 사정기관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기반이 있는 조직들은 손을 씻고도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방 조직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자리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제PJ파가 하우스 도박 등을 서울 인근에서 벌여온 것은 바로 본격적인 서울 진출의 신호로 해석됐다. 지방에서 안 되는 장사를 하느니 위험부담이 좀 있더라도 서울에서 돈 되는 장사를 하겠다는 속셈이다.

지난 2011년 나씨가 모친상을 당하자 김씨는 빈소로 조화를 보냈다. 국제PJ파도 조화와 함께 빈소에 방문했다. "내가 친하거나 존경하진 않아도 지킬 땐 지키는 게 건달들의 룰"이라고 한 전직 조폭은 얘기했다. 이렇듯 김씨 생전까지만 해도 양 조직 간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김씨가 그들 세계에서 분명한 '선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다르다고 한 관계자는 얘기한다. 이 관계자는 거듭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 경찰 관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조직 대 조직 간의 전쟁은 힘들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조직으로 움직이면 형량도 배가 되는데 그것도 현행범으로 체포될만한 일을 누가 하겠냐는 것이다.

전쟁보다
조직보존

이렇듯 이번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씨 등은 현재 나씨 납치·폭행 외에도 공갈 등의 혐의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다. 그들은 현재 비닐하우스 등에서 속칭 '산도박'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고, 오피스텔 등을 빌려 '하우스 도박'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 분명한 건 최근 국제PJ파 자금줄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적 정황이다. 이 같은 전제 하에 '조직 대 조직'의 전쟁은 힘들어도 '조직 대 개인'의 린치는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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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