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면 어떨까. 더 이상 살아갈 재미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인생이 살 만한 이유는 산맥처럼 높낮이가 다르고 지형이 다른 길을 걸어가듯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하늘이 요즘 밝은 얼굴로 즐겁게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는 4월23일 개봉되는 영화 <7급 공무원>에서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어느덧 배우로 데뷔한 지 14년, 첫 액션 연기에 도전, 에너지로 충만한 김하늘을 만나보았다.
국정원 요원 수지 역…제트스키·승마 배우느라 고생
코믹 연기도 찬사…“코믹 감은 본능적으로 오는 것”
영화 <7급 공무원>은 서로의 신분을 모르는 국정원 커플의 이중생활을 그린 영화로 김하늘은 극중 여행사 직원으로 위장한 경력 6년차 국가정보원 요원 수지 역을 맡았다.
“작품을 고를 때는 시나리오 전체의 재미가 가장 중요해요. <온에어>를 끝내고 액션 연기에 도전하고 싶던 차에 <7급 공무원>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사실 배우가 어떤 배역을 원할 때 딱 그런 역을 제의 받을 수는 없어요. 시간과 기회가 어긋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안젤리나 졸리의 <원티드>를 보면서 ‘내가 액션연기를 하면 어떨까’ 궁금해 하던 시기에 대본이 들어왔어요.”
“더 강한 액션 연기에 도전”
맡은 역할이 국가정보원 요원이다 보니 액션은 기본이고 제트스키, 승마도 배웠다. 그는 ‘액션을 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 시작한 도전에서 뜻밖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첫 액션 연기인 만큼 굉장한 욕심이 앞섰어요. 그럼에도 막상 해보니 몸으로 많은 부분을 소화해야 해서 다치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정적인 연기를 해왔을 때와 달리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어요. 찍을 때는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그렇게 고생했는데 저것밖에 안 나왔나 싶어 아쉽더군요. 나중에 더 강한 액션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급 공무원>에서 돋보이는 것은 액션뿐 아니라 감 좋은 코믹 연기다. 그가 연기에 본능적인 감이 있고 머리도 영민한 배우라는 것은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 눈치 챌 수 있다. 신인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대 배우의 카리스마에 밀린 적이 없었던 김하늘은 그렇다고 상대를 가려버릴 정도로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않는다.
<7급 공무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영화의 웃음 코드가 수지보다는 재준(강지환) 쪽에 많이 실려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챘고 치고 빠지며 노련하게 선을 지켰다.
“그런 감은 본능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내가 관객이라면 이런 연기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늘 생각하죠. 상대 배우가 칠 때 빠져 주고, 빠질 때 쳐주는 게 필요해요. 랍스터 장면이 그런데, 재준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목에 냅킨을 두르면서 코미디를 하는데 나까지 무언가를 하면 화면이 부담스럽겠더라고요.”
김하늘은 지난 1996년 모델로 시작해 연예계에 데뷔한 지 14년째, 이젠 ‘중견 배우’가 됐다. 대부분의 여자 연기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배역 선택의 폭이 좁아져 조바심을 내지만 그는 “여자로서는 나이 먹는 게 싫지만 배우로서의 가능성은 오히려 열려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가 <로망스> <온에어>를 안 찍었다면 지금 <7급 공무원>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은 점점 열려 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성숙한 역을 하기 어려웠어요.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7급 공무원>은 그에게 벌써 10번째 영화다. 그는 “그동안 배우로서의 길을 잘 밟아왔구나 싶어 뿌듯하다”고 말한다.
“예전에 ‘필모그래피가 알차다’ ‘많은 관객이 김하늘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제까지 김하늘이 나온 영화를 대부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좋아서가 아닌데도 제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제가 신뢰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니까요.”
김하늘은 마음에 맞는 사람 앞에서는 털털하지만 예전엔 꽤나 닫혀있고 말수도 적었다고 스스로를 평했다. 이제 현장에 가도 자신이 선배이고, 관계자들 중에도 비슷한 또래도 많아지면서 어깨를 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하늘은 앞으로 10년도 요즘 같기만 하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앞으로 10년도 요즘 같았으면”
“밝고 긍정적이고 행복한 이 기분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어느덧 30대의 문턱을 넘어선 김하늘. 이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나요. 저는 그 생각은 있어요. 둘 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사랑의 감정을 요구하기보다는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요. 저에게 맞는 짝을 하나님이 보내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