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신한사태' 막전막후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2.05 13: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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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나오는 '양파비리' 갈데까지 간 '막장회장'

[일요시사=경제1팀] 깠다. 또 깠다. 전 사장과 전 은행장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다 깐 줄 알았다. 그런데 깔게 더 남았다. 이번엔 전 회장이다. '신한사태'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갈 길이 먼 '한동우-서진원' '투톱체제'가 발목을 잡혔다.


신한금융그룹 내부 비리 사태, 일명 '신한사태'는 2010년 9월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은행이 전직 행장이자 모회사 사장을 검찰에 고소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특히 이날은 신한금융 창립 9주년 기념식 바로 다음 날이었다.

전 사장·전 행장
집행유예 선고

당시 신한은행 측은 "최근 은행에 신 전 사장의 친인척 관련 여신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 조사한 결과 950억원에 이르는 대출 취급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있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신한은행은 또 신 전 사장이 신한금융 창업자인 이희건 명예회장에게 지급될 고문료 중 15억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신한사태의 시작을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이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로 보고 있다. 2009년 정치권에서 라 전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박 전 회장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그 발원지로 신 전 사장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1인자 라 전 회장이 3인자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과 손잡고 2인자 신 전 사장을 내치려했다는 관측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신한은행은 신 전 사장 고소 후 곧바로 해임을 위한 사외이사 '표심잡기'에 나섰다. 이 전 행장은 일본 오사카와 도쿄를 방문하며 재일동포 사외이사와 주주들을 만나 신 전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소한 배경을 설명하고 신 전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 참석 등 협조를 당부했다.


라 전 회장, 이 전 행장, 신 전 사장은 사태 일주일 만에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 사외이사, 주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친회를 열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재일교포 주주 중 일부가 신 전 사장을 검찰조사 결과발표 이전에 해임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모든 문제를 이사회 결정에 따르기로 협의했다.

라응찬 전 회장 차명계좌 의혹 일파만파
발목 잡힌 '한동우-서진원' 투톱 체제

9월14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해임'이 아닌 '직무정지'안이 10대1의 표결로 통과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라 전 회장이나 이 전 행장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전은 꽤 빠르게 찾아왔다. 10월7일 금융감독원이 라 전 회장에게 금융실명제법 위반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전격 통보한 것. 이에 앞서 한국정치평론가와 한국시민단체네크워크 등 5개 시민단체는 라 전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무혐의 내사 종결됐던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와 실명제법위반 의혹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바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라 전 회장은 해외 기업설명회 도중 급히 귀국했다. 하지만 10월11일 다시 기업설명회 참석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금융당국은 이러한 라 전 회장의 행보에 대해 유감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라 전 회장은 결국 10월25일 해외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고 10월30일 열린 신한금융 이사회에 참석,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겉으로는 자진사퇴. 알고 보면 불명에 퇴진이었다.

신 전 사장은 신한사태 발생 100여일이 지난 후 사장직 사퇴의사를 밝혔고 이 전 행장은 신 전 사장 상대 횡령·배임 혐의 고소를 취하했다.

스리슬쩍 넘어간
라 전 회장 비리혐의


하지만 검찰은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 모두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횡령했다고 보고 각각 불구속 기소하고 라 전 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자문료 15억여원 가운데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된 금액은 7억1100만원, 나머지 8억여원 가운데 2억6000여만원은 이 행장이 사용했고 3억7500만원은 라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으로 지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전 행장은 이날 사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로부터 2년여 후인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30부는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에 각각 징역 1년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 전 사장의 경우 검찰의 공소사실 중 대부분이 무죄로 선고됐으나 일부 횡령 혐의 등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다.

우선 재판부는 신 전 사장의 혐의 중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수수한 8억원 가운데 2억원을 수수한 혐의와 이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 명목의 은행자금 15억여원 중 2008년 2억6000여만원을 사용한 부문에 대해서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이 투모로그룹 등에 400억원대의 불법대출에 관여한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로 결론 내렸다.

다시 살아난 불씨
차명계좌 23개

이 전 행장의 경우 재판부는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기탁금 5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고 신 전 사장과 함께 2008년 은행자금 2억6000여만원을 사용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로써 금융계를 들어다 놨다 했던 신한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신한은행은 한동우 신한금융회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 '투톱체계'를 구축하고 경영안정화와 내부 결속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 회장과 신 행장의 취임 첫 해인 2011년 사상 최대인 3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거뒀고 지난해에는 금융지주사 중 최고인 약 2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실적에서도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왔다.

특히 신한사태로 흔들렸던 일본 오사카 쪽 주주들의 신뢰와 지지도 상당부분 회복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라응찬-신상훈-이백순' 신한 빅3 중 유일하게 무혐의를 받아 멀찍이에서 재판과정을 구경하던 라 전 회장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이 속속들이 제기되면서 제대로 발목을 잡힌 모양세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 전 회장에게 라 전 회장이 50억원을 건넨 사실을 밝히고 2008년 12월 라 전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수사했다.

라 전 회장 측은 "50억원은 1991년 신한은행장 취임 당시 이 명예회장이 재일동포 원로주주 4명과 모아서 준 격려금 30억원을 4명의 주주에게 동의를 얻어 장기간 차명예금으로 관리해오다 이자가 계속 붙었고, 이 가운데 50억원을 호형호제하며 가까이 지내던 박 전 회장의 권유에 따라 경남 김해의 골프장 가야컨트리클럽 운영업체인 가야개발 지분 투자 목적으로 줬다"고 해명했다.

이에 검찰은 두 차례 수사 끝에 2009년 6월 무혐의 처분했다. 금융당국 역시 라 전 회장이 실명제 위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지만 재일동포 주주 4명의 차명계좌 운용만 문제 삼아 3개월 직무정지를 내렸다.


게다가 라 전 회장이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다른 의혹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일부 언론이 라 전 회장이 차명계좌 23개를 통해 은행 돈을 빌려 쓰는가 하면 자사주를 매매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불씨가 살아났다. 금융당국도 확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검사자료 재검토, 끊이지 않는 의혹
관계당국 비리 감싸기 의혹도 '재수사 촉구'

이 매체에 따르면 라 전 회장은 신한은행장 임기 마지막 해인 1998년부터 지인 2명과 차남의 동업자, 재일동포 주주 4명, 신한증권 임원 출신인 김모씨와 그의 친인척 9명 등 모두 23명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2008년까지 누적으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운영했다. 이는 금감원이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조사 당시 적발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2009년 5월 박모 당시 신한금융 업무지원팀장이 작성한 '총괄표'라는 문건에는 라 전 회장이 단지 실명제 위반뿐 니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불법·탈법적인 자금거래를 한 기록까지 들어있다. 예금계좌와 증권계좌로 자금이 수시로 이동했고 신한금융지주 주식 수만주씩을 사고판 흔적도 있다.

뿐만아니라 차명계좌로 받은 은행 대출금을 라 전 회장과 아들 계좌에 입금하고 나중에 다른 차명계좌에서 인출해 이를 갚은 기록도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차명계좌를 통해 라 전 회장의 세 아들에게 전달된 돈은 46억원에 이른다.


경제개혁연대는 "각종 의혹에도 사정 당국의 라 전 회장 봐주기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9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벌이다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박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달된 50억원에 대해 국세청이 이를 확인해 검찰에 수사 통보를 했지만 사정 당국이 소홀히 취급했다"며 "그동안 의혹으로만 남은 부분을 추가 조사하고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과거 금융당국이 라 전 회장을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징계했지만 발견된 추가 차명계좌의 법령 위반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며 "차명계좌로 신한금융 주식을 보유한 것도 라 전 회장의 주식보유신고서 공시의무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 만큼 내부문건을 확인하고, 당시 검사자료와 검사담당자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될 경우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심 선고가 내려진 신한 사태와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사건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신한 사태 재판 과정에서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이 전 행장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현금 3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채 슬쩍 넘어간 바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남산3억원' 미스터리다.

베일에 싸인
남산 3억 실체

이 돈은 2008년 초 이백순 당시 지주 부사장이 "라 전 회장의 지시"라며 서울 남산자유센터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에게 전달한 3억원에 관련된 돈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상득 전 의원에게 전달됐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정체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는 상태다.

신 전 사장이 1심에서 유죄를 인정받은 2억6000여만원이 남산3억원에 해당하는 돈인 것으로 알려졌다. 2심에서 '남산3억원'이 핵심 안건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신 전 사장은 항소를 준비 중이다.

신 전 사장은 1심 선고 후 "자금조달을 지시한 라 전 회장은 빠져나갔는데 자금 관리에만 관여한 죄로 유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신한금융 관계자는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관련 혐의는 과거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조사를 진행했던 사안이 다시 부각됐을 뿐이다"며 "새로운 의혹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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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