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암투] 서초구청에 무슨 일이…

툭 하면 쌈질…바람 잘 날 없는 ‘부자구청’

 [일요시사=사회팀] 서초구청이 시끄럽다. 최근 청원경찰 사인을 놓고 허준혁 전 서울시의원(서초구)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박성중 전 구청장과 진익철 현 구청장 간 공천갈등도 다시금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서초구 사태. 청원경찰 사인 뒤에 숨겨진 이면을 들춰봤다.


2013년 1월10일 오전 10시. 서초구청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던 이모(47)씨가 주차장 내 번호판 교체장소에 쪼그려 앞에 앉아 있었다. 이를 발견한 구청 직원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이씨 쪽으로 다가갔다. 이씨는 호흡곤란 상태였고, 직원은 바로 구급차를 불러 인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호송했다. 이씨는 당시 급성심근경색 증상을 보여 즉시 시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후 3시경에 급성심근경색에 따른 심장 쇼크사 및 폐부종으로 생을 마감했다.

온라인서 공방 열전
구청 측 변명 급급

지난달 10일 발생한 서초구청 청경 사망사건이다. 청경 이씨는 22년째 근무해온 우수 근속자였다. 그는 1월2일 시무식이 시행된 날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탄 관용차를 지각 안내했다는 이유로 9일, 영하 11.7도,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날씨에 해당 구청으로부터 24시간 야외근무를 지시받았다. 이씨를 포함해 같이 근무를 하던 주차장 근무 직원 3명이 시무식을 마친 후 구청으로 돌아오던 진 구청장의 관용차가 들어옴에도 지각대응한 점, 혼잡했던 주차장 상황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초소에 들어가 잡담을 하며 민원차량 주차안내 등을 소홀히 한 점에 대한 비공식 징벌이었다.

당시 진 구청장과 동승했던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그들에게 근무상태 불량을 지적하며 옥외초소 문을 잠근 뒤 “주차장 혼잡 시 모두 초소에 들어가 있을 생각하지 말고 교대로 초소 앞에서 근무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의 야외근무는 단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9일 이씨는 주간근무에 이어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당직근무를 섰다. 즉 영하의 날씨에 24시간 동안 야외에서 근무한 셈이다.

이씨는 오전 9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동료직원들과 아침식사를 한 뒤 9시30분경에 초소로 복귀했다. 이후 10시쯤 심장에 무리가 온 듯 청경 이씨는 초소 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쪼그려 앉았고, 이를 지켜보던 동료 직원들이 동료 직원들이 병원으로 호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물론 이씨의 사인이 동사가 아닌 급성심근경색이었고, 야외근무를 지시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사망한 사건이라 구청 측에 책임을 운운하긴 어렵지만 구청장 관용차량 지각안내에 따른 과도한 문책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돌연사’청원경찰 사인 두고 구청장·의회 충돌
“혹한에 가혹근무로 죽었다”vs“평소 지병 때문”

이윽고 청경죽음이 구청에서 내린 징벌과 연관성이 짙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진 구청장에 대한 해임과 형사처벌(구속)하라는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서초구청은 진 구청장을 감싸는 반박기사를 내는데 급급했다. 진 구청장과 동승했던 조 행정지원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총무과에 열쇠를 맡기며 교대로 초소를 이용하게끔 근무교육을 시키라고만 했는데 실무팀에서는 3일 오후 1시를 훌쩍 넘어 초소문을 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영하의 날씨에 청경들은 초소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야외근무를 섰으며 28시간 만에 난방기가 설치된 초소문이 열린 셈이 된다.

반면 서초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청경을 24시간 야외근무 시켰다는 주장은 물론 진 구청장 관용차량의 주차안내가 늦었다는 이유로 부당징벌 했다는 건 사실무근이다. 최근 청경이 사망한 것은 맞지만 동사가 아닌 고지혈증과 당뇨를 오랜 기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청원경찰은 바깥 근무를 할 때, 1시간 근무 후 2시간 휴식을 원칙으로 하루에 총 세 시간의 근무를 선다. 동절기에 야외에서 근무하는 청경들을 위해 오리털 파카, 방한용품 등을 지급, 휴식시간에는 환풍기와 온돌판넬이 설치된 구청사 10층 청경 휴게실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현 구청장
공천갈등 연장전?

서초구청 측의 거듭된 해명에도 청원경찰 사인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는 현재 3000여 명에 달하는 누리꾼들이 ‘서초구청장 구속 청원’에 동참했는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 사건과 관련된 검색어가 꽤 오랫동안 1∼2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곧바로 지워져 구청 측의 직접적인 개입의혹이 잇따랐다. 또 허준혁 전 시의원이 본인의 블로그에 “구청장님 관용차 주차가 늦었다고 사람을 얼려죽이다니…”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청원경찰 사인에 진 구청장의 책임이 크다고 일갈한 바 있어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에 서초구의회도 청경 돌연사 의혹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김익태 진상 조사위원장을 포함한 구의원 8명으로 구성된 ‘서초구 청원경찰 조사특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열리기도 했다.

특위 주재자인 김 의원은 “구청의 해명대로 이씨가 1시간만 근무하고 2시간은 휴게실에서 쉬었다면 8층에 있는 휴게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맞다. 그러나 지난 28일 CCTV를 확인한 결과 엘리베이터 CCTV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초소 문을 잠근 당일인 2일 영상이 남아있지 않다. 의도적으로 이를 훼손한 게 아니냐”고 구청의 자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총무과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없앤 건 아니다. 관리회사에 문의하니 복구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구청장 차량 안내 늦어서 징벌?
영하 16도 외부서 24시간 근무?

항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단순 청원경찰 돌연사로 치부하기보다 ‘전-현 구청장 간 공천후유증’이라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다. 특히 진 구청장 측이 “최근 발생한 청원경찰 돌연사를 빌미로 차기 서초구청장을 노리는 몇몇 인사가 짜고 현 구청장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벌인 비겁한 언론 플레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세력을 비난하면서 공천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또한 서초구청 측이 개인 블로그에 현 구청장을 공개 디스한 허 전 시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면서, 두 사람의 공천갈등이 정점을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진 구청장 측은 “허 전 시의원은 진 구청장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서초구청장 공천을 신청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공천 갈등이 사건의 배후라는 점을 은근히 내비친 것이다. 진 구청장은 허 전 시의원을 고소하기에 앞서 최근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박 전 구청장이 재직 당시인 지난 2009년 5000만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다. 당시 진 구청장은 “2010년 취임 직후부터 관련 공무원 실명으로 투서가 수차례 들어와 박 전 구청장에 대한 법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부서원에 돌아갈 돈을 박 전 구청장이 착복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전 구청장은 “터무니없는 혐의다. 만약 1만원이라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구청 앞에서 할복하겠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무고로 고소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마권발매소
교회 인허가

사실 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의 갈등은 진 구청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계속됐다. 그들의 악연은 공천이라는 굴레에서 먼저 시작됐다. 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은 경남고 선후배 사이지만 행정고시 23회 동기다. 먼저 서초구청장을 지낸 박 전 구청장은 지난 2010년 재선에 나서려 했다. 박 전 구청장은 열정적인 청장으로 평판이 자자했지만 주민들과의 잦은 마찰로 진 구청장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구청 주변에서는 행시 23기동기인 고승덕(당시 한나라당·서초을) 전 의원이 진 구청장을 밀어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박 전 구청장은 2012년 총선에서 서초을 공천을 다시 한 번 노렸으나 고 전 의원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터뜨리며 또 실패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분을 삼키지 못하고 “고 전 의원과 진 구청장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서초구 의원들은 공천을 앞두고 서로를 물고 뜯는 진흙탕 싸움을 전통관례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2010년 박 전 구청장이 재선을 노릴 당시 공천의혹이 있었다. 박 전 구청장은 사랑의 교회 측에 신축부지 옆 참나리길 공공도로 지하 땅 1077.98㎡(약 326평), 즉 불법특혜를 내주면서 공천과 관련한 사전결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사랑의 교회는 도로지하 점용허가에 대한 당위성 및 근거확보를 위해 서초구청과 기부채납 계약을 했고, 하루 만에 ‘도로지하에 대한 점용허가를 받은 후 건축허가를 신청하라’ 조건부 승인이 났다. 승인의 조건이 된 ‘도로지하에 대한 점용허가’가 15일 만에 났다는 점도 충분히 의심을 살 수 있을만한 사안이었다. 한편 사랑의 교회 신축공사에 들어갈 비용은 총 22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구청장 해묵은 감정표출 지적
공천 의혹 등 진흙탕 싸움 수면 위로

다음해 2011년에는 진 구청장의 공천 의혹이었다. 그는 거액의 돈을 받고 마권장외발매소 허가를 내줬다는 의혹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마권장외발행소 설립은 지난 2009년 마사회의 설립 계획이 발표된 이후, 서초구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온 서초구 최대 지역현안 중 하나다. 결국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진 구청장 측은 의혹을 제기한 발원지를 박 전 구청장으로 보고 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박 전 구청장이 박근혜 당선자 대선캠프에서 일했는데 혹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 들어갈까봐 이를 막기 위해 진 구청장 측이 말도 안 되는 혐의로 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진 구청장의 지나친 MB사랑이 특혜의혹을 불러일으키는데 한몫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시절 서울시 문화관광국장과 환경국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MB맨이다. 그런 그가 내곡동 사저 인근에 테니스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평소 테니스를 즐기는 이대통령을 의식한 게 아니냐”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진 구청장은 서울시로부터 받은 특별교부금 15억원 중 4억6000만원을 내곡동 생활체육시설 건립에 사용한다고 밝히면서 사용도 위법성 논란에 휩싸였고, 이 땅은 서초구 소유로 이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설 곳과는 1.5㎞, 이상득 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는 불과 1.7㎞ 가량 떨어져 있어 청와대와 사전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진 구청장은 내곡동 1-16번지 유휴지에 8370㎡ 규모의 테니스장 6면과 다목적구장(1000㎡), 주말농장 및 쉼터(1300㎡) 등을 갖춘 생활체육시설을 조성하기로 하고 10월12일 착공식을 했다.

구청장 공천비리
썩은내 진동

청원경찰 돌연사가 서초구 의원들 간 공천비리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 됐다. 민심을 뒤로한 채 밥그릇 싸움에만 전전긍긍하는 서초구 의원들의 추악한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최호정 서초구 시의원은 “강남?서초 지역은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으로 여기니 공천을 둘러싸고 각종 마타도어가 판친다”며 “다른 자치구에서는 주민들 이목이 부끄러워서라도 이렇게까지 못한다”고 혀를 찼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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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