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삼성 vs LG '40년 전쟁' 히스토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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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서 노는 두 공룡…안방선 아옹다옹

[일요시사=경제1팀] 싸웠고, 싸우고 있고, 싸울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벌이는 '별들의 전쟁'이 끝날 줄을 모른다. 두 업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각 분야에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회사의 창업주가 '죽마고우'라고 불렸을 정도로 한 때는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기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까.


"(1968년 봄 안양 골프장) 야외 테이블에서 아버지(이병철 회장)와 구(인회) 회장님,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전자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구 사장, 우리도 앞으로 전자 산업을 하려고 하네.' (중략) 구 회장이 벌컥 화를 내면서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고 느닷없이 쏘아붙였다. 즉, 이익이 보이니까 사돈이 하는 사업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중략) 아버지는 구 회장이 화를 내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민망해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로 두 분 사이는 아주 멀어졌다."


삼성 전자산업 진출
멀어진 사돈 지간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회고록 중 일부다. 이병철 창업주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에서 책상을 맞대고 공부하던 죽마고우였다. 또 동양방송(현 KBS2TV)도 공동으로 설립했고 이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와 구 창업주의 삼남 자학씨가 결혼해 사돈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1968년 삼성이 일본 산요와의 합작을 통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하면서 양측은 급격히 틀어지게 됐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금성사(현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8년 금성사를 세우고 창립 1년 만에 첫 국산 라디오 'A-501'을 만들어 박정희 정부의 도움(농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통해 국내 가전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LG로서는 삼성의 도전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1969년 삼성이 일본 산요와 합작투자 계약을 맺고 전자사업 인가 신청을 내자 LG전자는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과당경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정부는 "생산물량 전부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허가했다. '40년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전쟁 초기 이 둘이 처음 맞붙었던 품목은 TV였다. 1963년 LG전자는 TV 생산계획을 추진,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팀을 파견했다. 3년 만에 최초 국산 TV인 진공관식 19인치 'VD-191'을 선보였다.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격이 쌀 27가마에 해당할 정도로 사치품이었지만 공개추첨으로 물량을 배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7년 늦은 1973년 삼성전자는 독자적으로 진공관식 흑백 TV를 개발한 데 이어 1974년에는 트랜지스터식 흑백 TV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75년 8월에는 '이코노TV'를 선보였다. 당시 TV는 전원을 킨 뒤 브라운관 예열 과정을 거쳐야 해 화면이 나오는데 20초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이코노TV는 이를 5초 내로 단축했다. 전력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선발업체들을 제치고 국내 TV시장 1위로 올라섰다.

1980년 8월 컬러 TV 판매가 시작되면서 신규시장을 둘러싸고 혈전이 펼쳐졌다. 1974년부터 컬러 TV 개발에 나선 LG전자는 1977년 8월 19인치 컬러 TV를 생산하고 1979년 경북 구미에 컬러 브라운관 공장을 건설했다.

'누구 냉장고가 더 클까?' 초딩도 안하는 싸움
단순 비교광고 100억대 법정 소송으로 확대

삼성전자는 1981년 절전형 프리볼트 TV인 '이코노빅'을 내놓으면서 맞불 작전을 펼쳤다. 삼성전자의 절전형 TV는 당시 전력난에 시달리던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며 삼성전자는 국내 컬러 TV시장 1위에 오르게 된다.

TV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를 앞지르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것은 반도체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LG전자는 반도체에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1983년 삼성전자는 당시 미국과 일본만 보유하고 있던 64KD램 개발에 성공, 1984년 256KD램을 개발해 반도체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1992년에는 D램 반도체 세계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LG전자도 1979년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사들여 금성반도체를 출범,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0년 1메가D램, 1991년 4메가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비등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1997년 말 IMF 당시 국내 재계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빅딜정책으로 LG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뺏기게 된다. 당시 구 회장은 금성일렉트론의 빅딜 대상 선정을 막기 위해 청와대에 LG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결국 반도체를 하지 못하자 "모든 것을 다 버렸다"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치열한 대립각을 세운 부분은 바로 휴대폰 단말 사업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모토로라가 장악했던 국내 휴대폰 시장에 첫 도전장을 낸 건을 삼성전자였다. 1994년 "산악이 많은 국내지형에 맞는 휴대폰을 내놓겠다"며 '애니콜'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인 것. 이에 질세라 LG전자 역시 "고층빌딩이 많은 도시지형에 맞는 휴대폰을 내 놓겠다"며 '화통'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하지만 '화통'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7년 LG전자는 '귀족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싸이언'을 브랜드로 내놓았고 애니콜과 양대산맥을 이뤘다. 당시 휴대폰 전쟁은 확실한 승자가 나오지는 않았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팔린 ‘텐밀리언 셀러폰’을 3개(이건희폰, 벤츠폰, 블루블랙폰)를 보유하고 있고 LG전자는 초콜릿폰이 텐밀리언 셀러폰이다.


반도체로 삼성 웃고
반도체로 LG 울고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라이벌전이 시작됐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글로벌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도 두 업체가 전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LG전자는 2001년 가장 얇은 7.8cm 40인치 PDP를, 2003년 11월에는 76인치 PDP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2001년 8월 40인치, 2002년 10월 46인치, 12월 54인치를 개발했고 2003년 11월 57인치 TV용 HD급 TFT-LCD 개발에 성공했다.

양사의 슬림 경쟁은 발광다이오드(LED) TV가 출시되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삼성전자는 2009년 3월 LED TV 40·46·55인치 시리즈를 전 세계 동시 출시했다. 당시 삼성 LED TV 시장 점유율은 80%를 상회했다. LG전자는 자체 개발한 '컬러 디캔딩' 기술을 적용, 화질을 강조한 42·47·55인치 제품을 선보였다.

소송·맞소송·특허전
법정 대전 개막

지난 2011년에는 3D TV 기술을 둘러싸고 자사의 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주장하면서 비방 광고에 이어 원색적인 욕설까지 오가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양사의 싸움은 단순 라이벌 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양사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져 이젠 법정 대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4월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TV 관련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LG디스플레이를 경찰에 고발하면서다. 이후 두 회사는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이다 결국 법정으로 갔고 작년 9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OLED 기술유출 관련 기록 21종과 세부 기술 18종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총 5번의 소송을 주고 받았다.

이후 소송대상은 LCD기술로 확대됐고 지난해 말 LG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완제품에 대한 판매금지신청은 특허공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응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소장에서 "삼성이 갤럭시노트10.1에 채택한 PLS(Plane to Line Switching) LCD 기술은 IPS 기술의 아류에 불과하다"며 "특허침해에 대한 악의성과 침해 규모, 정도 등에 비춰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시 1일에 최소 10억원의 이행강제금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치고 나가면 LG 바로 따라 붙어
TV·냉장고·휴대폰 "한치 양보 없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삼성이 보유한 PLS라는 고유의 기술을 LG디스플레이가 'AH-IPS'라는 이름으로 LG 중소형 LCD 패널에 임의적으로 적용했다"고 맞서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는 '누구 집 냉장고가 더 큰가'로 '초딩싸움'을 연상시키는 유치찬란한 촌극이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22일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삼성전자의 지펠 857리터 냉장고와 LG전자의 디오스 870리터 냉장고의 실제 용량을 직접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냉장고를 눕힌 후 서랍 및 격벽을 제거하고 물을 부었더니 13리터 더 작은 삼성전자의 냉장고에 오히려 더 많은 물을 넣을 수 있었다는 것.

LG전자는 삼성전자에 '해당광고 즉각 중지, 사과 의사 표시 및 관련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내용증명으로 발송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2'라는 광고를 추가 제시했다. 이번엔 900리터 냉장고 지펠 T9000과 910리터 냉장고 디오스 V9100이 타깃이었다. 물, 캔커피, 참치캔으로 용량을 측정했더니 삼성전자 냉장고에 물 8.3리터, 캔커피 68개, 참치캔 90개를 더 넣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LG전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LG전자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에게 해당 동영상 게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LG전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LG전자의 삼성전자에 대한 대응은 이어졌다. 지난 14일 100억원대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것.

냉장고 용량은 늘리고
경쟁사 이미지는 깎고

LG전자는 소장에서 "삼성전자의 유튜브 광고로 기업 브랜드 가치가 최소 1% 이상 훼손됐고 허위광고에 대한 반박광고비로 5억1000만원이 드는 등 손해를 입었다"며 "이에 대한 위자료 100억원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간 대응을 자제하던 삼성도 이날 소송을 계기로 "LG전자가 소송 제기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당사의 기업이미지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며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가처분 결정 불복 절차를 진행하고,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삼성-LG CES대전>

"2015년 내가 1등"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자존심 싸움은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과 조성진 LG전자 생활가전(HA)사업본부 사장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윤 사장과 조 사장은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 2013'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란히 간담회를 갖고 올해의 시장 동향과 전략을 밝혔다.

조 사장은 "세탁기 1등 경험을 바탕으로 스마트 기술을 전면 확대해 2015년 생활가전 1위에 오르겠다" 밝혔다.

지난해 말 LG그룹 첫 고졸 출신 사장으로 승진한 조 사장은 35년간 세탁기 개발에 매진해 온 전문가다. 조 사장은 "고객의 요구를 끊임 없이 반영해 세계 1위에 올려놓은 세탁기 사업을 통해 1등 DNA를 새겼다"며 "이 과정에서의 경험을 냉장고, 오븐, 청소기 등으로 전파해 세계 1위 목표를 실현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사장은 "마켓 크리에이터로서 앞으로도 한계를 뛰어넘는 제품과 서비스로 창조적 혁신을 주도해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냉장고 세계 1등 목표도 무난하게 달성했다"며 "작년 말 홈데포와 제휴하면서 미국 4대 가전 유통업체 무대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프리미엄 가전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가전 사업은 선진시장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겠지만 신흥시장에서 성장해 전체 2% 내외로 성장할 것"이라며 "소비자 중심에서 혁신과 성능으로 편리성을 높인 놀랄 만한 제품을 계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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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대문’ VS ‘어대명’ 차이 해부

‘어대문’ VS ‘어대명’ 차이 해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10년도 안 돼 반복되고 있다. ‘평행이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다를까? 2024년 12월은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상 초유의 체포 작전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여객기 사고로 179명의 아까운 목숨도 잃었다. 8년 만에 재연됐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10여년 전 우리나라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된 사례는 세 번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 전 대통령,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서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불과 8년 새 두 명의 보수 진영 대통령이 헌재 심판대 위에 섰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볼수록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박 전 대통령은 ‘태블릿PC’ 보도가 불씨를 댕겼다면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시발점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헌재의 탄핵안 인용-특검 수사-사법 처분 등의 과정을 거쳐 단죄됐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있다. 2017년 5월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보궐선거가 열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상황은 박 전 대통령보다 복잡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내란죄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양쪽에서 압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중범죄라서 수사 속도가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빠른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 호감도 만큼 비호감도↑ 정치권의 눈은 조기 대선에 쏠려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에 놓고 심리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6월경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여야 잠룡들은 헌재의 탄핵안 인용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파면이 결정된 날부터 두 달 사이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에 기존에 인지도와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한 인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눈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쏠리는 이유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는 압도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그룹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1위위로 질주하는 중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대표가 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세훈 서울시장(7%), 홍준표 대구시장(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5%),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4%) 등이 뒤를 이었다.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였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포인트, 응답률은 22.8%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2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45.1%를 얻었다. 홍준표 대구시장(9.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7.8%),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7.2%), 오세훈 서울시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빠르면 6월 보궐선거로 이 대표의 지지율은 여당 후보 5인(홍준표·한동훈·원희룡·오세훈·안철수)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수치(33%)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높았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100% RDD 방식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조원씨앤아이 홈페이지 참조). 최근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과 함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나돌았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상황과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서 박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대선은 제3당 후보 없이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양측 모두 짜낼 수 있을 만큼 모조리 다 짜낸 선거서 패하자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지지세를 회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암흑기로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을 야권의 압도적인 대선주자로 만든 결정적 한 방은 국정 농단 사태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파생 의혹이 쏟아졌다. 1300만명(누적)의 국민이 거리로 나왔다.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업은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서 인용될 무렵 ‘차기 대통령’으로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는 말이 들린다. 이 대표가 가진 사법 리스크에 더해 ‘비토층’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 대표도 싫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면 나오면 공격거리 많아 실제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호감도, 비호감도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뉴스핌>의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6~7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39.1%가 이 대표를 꼽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9.5%, 홍준표 대구시장 9.3% 등이 뒤를 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이 대표는 40.8%로 단연 1위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3.5%, 홍준표 대구시장이 12.2% 등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호감도 1~4위(이재명·오세훈·홍준표·원희룡)와 비호감도 1~4위가 같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여야의 대선후보군이 어느 정도 추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대선후보군은 ‘이재명 1강’ 독주 속에 범여권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양상”이라며 “범여권 유력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마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이재명 대항마’는 사실상 실종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비호감도 1위 원인으로는 사법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때 불거진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의혹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를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만 5개고 검찰서 추가로 수사 중인 사건도 2개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은 1심 판결이 나왔다.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당선무효형이 나오면서 대선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수준이다. 발목 잡는 사법 리스크 박 때와 다른 보수 결집 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선고 전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위증교사 혐의의 유죄 가능성을 더 크게 봤다. 위증교사 혐의는 양형 기준에 따라 무죄 아니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어 항소심서 판결이 바뀌면 이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상대 후보의 공격 포인트 역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연루된 의혹과 논란에 크게 실망했다. 윤 대통령이 퇴장하고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검증을 받기 시작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의 결집이 심상찮은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진영은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혜) 등으로 사분오열했다. 탄핵안 표결 당시 찬반이 갈리면서 물리적으로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당시 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표는 171표였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표수(200표)는 29표였지만 그보다 많은 63표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서 나왔다.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이탈표였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는 2번의 표결 끝에 간신히 정족수를 넘겼다. 찬성은 204표로 국민의힘서 12표가량의 이탈표가 나왔다.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국민의힘은 강경 지지층을 등에 업고 결집 중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보수층과 국민의힘의 힘을 빼기 위해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과정서 중도층의 이탈이 표면화되는 모양새다. 애매한 표수 걸림돌 될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층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응하는 점은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에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유보층이 상당하다는 점을 봤을 때 중도층을 놓치면 대권서 멀어질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지지만으로는 ‘어대명’은 완성될 수 없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