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MBC <무한도전>만큼 많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예능프로그램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 방송가의 메가트렌드로 자리한 <무한도전>이 이번에는 음원 발매를 놓고, 음반 제작자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제 맛이다.
MBC <무한도전>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일 '박명수의 어떤가요'가 방송된 후 공개된 6곡의 음원은 각 음원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정형돈이 부른 '강북 멋쟁이'는 모든 음원 사이트 정상에 올랐다.
지난 17일 가온차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강북 멋쟁이'는 주간 다운로드 횟수에서 다른 곡들과 10만건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유재석이 부른 '메뚜기 월드'였고, 5위는 하하의 '섹시 보이', 7위는 길의 '엄마를 닮았네', 8위는 정준하의 '사랑해요', 9위는 노홍철의 '노가르시아'였다.
음원 싹쓸이
야심차게 컴백을 준비한 소녀시대의 신곡 'I Got a Boy'는 4위에 그쳤다. 스테디셀러 메이커 백지영의 신곡 '싫다' 역시 3위에 머물렀다. 음원차트 5위권 안에 <무한도전> 음원이 3곡이나 자리했다.
이처럼 전문 가수가 이른바 '개가수'에 밀리는 모양새다보니 음악계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레이블 제작자는 "장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음악이 급조한 개그맨들의 곡보다 안 팔린다"며 "이럴 거면 소속사 가수들에게 예능이나 준비시킬 걸 그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된 음악이 유료 음원차트에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앞서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 2009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등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된 곡들은 방송 직후 유료 음원으로 출시됐다. 다만 해당 곡들은 모두 전문 가수와의 콜라보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곡의 완성도나 음악성 논란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박명수라는 아마추어 작곡가가 만든 (심지어 한 달 만에 만든) 6곡은 그 짜임새와 상관없이 전파를 탔고, 짧은 준비 시간으로 인해 무대 임팩트가 이전 가요제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이제 이런 방식의 공연에 익숙해지면서 첫 가요제 때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무대를 시청자에게 보여줬다는 것에 있었다.
방송 후 여론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박명수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에 박수를 보낸다"는 시청자가 있었지만 "박명수 헌정방송"이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강북 멋쟁이'의 인기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에 노출된 음악이 '음원시장의 블루칩'이라는 공식은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그러나 그 스포트라이트가 전문 가수가 아닌 '개가수'에게 집중되자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는 지난 16일 총대를 메고 나섰다. 연제협은 "<무한도전>이 음원 시장에 진출한 건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며 <무한도전>을 정조준 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오히려 연제협을 비난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이와 함께 온라인 뉴스 게시판을 중심으로 <무한도전>을 옹호하는 글들이 속속 게재됐다.
야심차게 컴백 준비한 소녀시대 제치자 논란
떴다하면 음원차트 올킬…“문화 권력” 비판
닉네임 페리*는 "우리가 돈 내고 우리가 듣겠다는데 왜 연제협의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느냐"면서 "자기 밥그릇 지키고 싶으면 일단 실력부터 키워라"고 일침을 놨다.
또 닉네임 kuklu*****는 "좋은 음원이 나오면 대중이 안 들을 이유가 없는데 예능에 나온 노래라 안 된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음원도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닉네임 bo***는 kuklu*****의 글을 반박하면서 "무조건 소비자가 옳다는 식으로 말하면 SSM에 밀리는 중소상인도 자기들이 잘 팔면 되는 거지 왜 남의 탓을 하겠느냐"고 비유한 뒤 "그런 간편한 생각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작곡가 김형석(@kimhs0927)은 자신의 트위터에 "음원은 누구나 낼 수 있다. 하지만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방송국에서 자체 제작한 음원을 대놓고 홍보하는 콘셉트는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란 글을 적었다.
이어 "누굴 탓하는 것도 아니고 취향에 맞는 걸 선호하는 대중도 문제가 없다"며 "단지 공영방송인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무도팬'들의 눈치를 보던 숨은 여론도 고개를 들었다.
아이디 @sall*****은 "김형석씨의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오락은 오락으로 끝내야 한다"고 동조했다.
또 아이디 @lgh****는 "아무리 아이돌 음악이 비판받아도 박명수가 만든 곡들보다 못한 곡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없고 <무한도전> 멤버보다 노래 못하는 아이돌 가수도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디 @kong*****는 "작사 작곡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대중가요가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는 꼴이 더 웃기다"고 비꼬았다.
아이디 @desi***** 역시 "1위를 안 했으면 아무 말 없었을 텐데 배가 좀 아픈가 보다"라면서 "아이돌도 나와서 대놓고 신곡 홍보하던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공세를 취했다.
그러자 아이디 @tiny****는 "<무한도전>이 인기에 탑승하여 음원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는데…. 아이돌들 더빙하고, 연기한다고 드라마 나오는 건 성우·연기자 시장 혼란스럽게 하는 거 아니냐"고 맞장구쳤다.
아이디 @sh***는 "강북 멋쟁이를 들으면 수년간 노력한 프로 가수들이 허탈할만하다"면서 "그런데 정형돈이 열심히 춤추는 것과 박명수가 재밌게 피처링하는 건 프로가수들도 흉내 내기 힘든 것 같다"고 양시론을 폈다.
박명수 힘내요
아이디 @adesm*****는 이번 사태에 대해 조금 더 분석적인 멘션을 적었다. 그는 "연제협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초점을 잘못 잡은 것 같다"면서 "이를테면 영화의 스크린쿼터제도처럼 가수들은 곡을 알릴만한 장소가 필요한데…. 이미 고정팬층이 두터운 <무한도전>의 광고 같은 가요제는 자제해달라는 말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이디 @moo***는 "'강북 멋쟁이'와 관련된 논란을 이야기하는 곳 어디에도 박명수씨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게 참 무섭다"며 "음원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좋은 일에 쓰이는 음원 수입인데 욕을 먹는 것도 그렇고 지금 가장 상처받고 있을 사람을 박명수씨 같은데…"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