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본지 여기자의 ‘애프터클럽’ 잠입기

한창 일할 시간에…해가 중천에 뜨도록 ‘난잡 파티’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5일 오전 7시. 클럽 내부엔 아직도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야시시한 의상에 진한 스모키 화장으로 얼굴을 감춘 여성들과 상의를 탈의하고 부비부비(남녀가 몸을 밀착한 채 춤추는 것)를 시도하는 남성들까지 난잡한 댄스에 흠뻑 취한 사람들이 클럽을 장악한다. 이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클럽을 운영하는 강남의 모 애프터클럽의 모습이다. 성인들의 난잡한 놀이터로 등극한 애프터클럽의 실태를 알아봤다.

최근 매스컴에서 복고바람이 불며 클럽계에서도 복고클럽이 등장하게 됐다. 90년대 음악이 주를 이뤄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이 같은 복고클럽은 2030의 마음을 뒤흔들며 붐을 일으켰다. 이처럼 외국의 파티문화로부터 유행을 타고 온 국내 클럽의 종류는 셀 수없이 다양하다.

새벽 5시가 피크
젊은이로 북새통

나이트클럽부터 시작해 유로댄스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일렉트로닉 및 하우스클럽, 힙합클럽, 바와 스테이지가 결합된 펍클럽, 청소년만 입장 가능한 콜라텍 등 연령대와 기호에 맞게 운영되는 클럽들이 전국에 즐비해있다. 특히 서울의 강남과 홍대, 이태원은 클럽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클럽이 자리해 있고, 주말만 되면 클럽입구는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중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술과 댄스에 취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클럽이 있다. 바로 ‘애프터클럽’. 애프터클럽은 열광적인 클러버(클럽에 중독된 사람)들이 이른 심야에 운영하는 메인클럽에 들른 후, 그 다음 코스로 새벽에 가는 클럽이다.

보통 클럽들이 밤 11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4∼5시에 문을 닫는 반면 애프터클럽은 오전 5시 혹은 6시가 절정이고 일주일에 이틀 혹은 3일만 운영하는 특유의 운영방침을 고집한다. 즉 애프터클럽은 밤 12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 10시 혹은 정오에 문을 닫는 이른바 반나절 운영을 꾀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이 끝나는 이에게도 가드(안전요원)의 제지 대신 환영의 손길을 보내는 곳이 바로 애프터클럽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클러버들은 애프터클럽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1차에서 워밍업을 한 후 애프터클럽에서 진정한 파티를 본격적으로 즐긴다.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클러버들은 한층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놀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클럽은 정오까지 운영하는 방식으로 인해 새벽에 일을 마치는 동대문 20∼30대 상인 및 화류계 여성 손님까지도 섭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지는 야릇한 댄스 삼매경
일주일에 금·토 이틀만 운영…4∼5시 피크타임

해 뜰 때까지 놀 수 있는 클럽. 클러버들의 로망이자 해방구인 애프터클럽의 실태를 파헤치기 위해 본 기자가 직접 방문했다.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지 않은 애프터클럽은 강남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적 펍클럽이 활성화돼있는 이태원과 어린 대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바클럽 및 메인클럽(보통클럽을 뜻함)이 즐비한 홍대에는 애초에 애프터클럽이란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연령대에 의미를 두지 않고 클러버들이 자유롭게 놀 곳을 추구하는 강남의 경우 애프터클럽들이 거리를 두고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자는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모 애프터클럽에 방문해 메인클럽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클러버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프터클럽의 실체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지난 5일 새벽 4시 즈음에 도착한 애프터클럽 입구에는 화려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겸비한 클러버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을 잇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메인 클럽에서 1차를 마치고 온 듯한 분위기였고, 이미 술에 취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탓인지 줄은 10분도 채 안 돼 입구 앞에 다다를 만큼 줄어들었고, 2만원 이상에 달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픈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입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료의 가격 변동은 없었다.

입장료가 예상보다 비싸다는 기자의 물음에 입구 앞에 서있던 한 가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게스트 무료입장권을 받지 않는 이상 무조건 2만원을 내셔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야릇한 폴댄스
성교 연상케 해

철문으로 된 입구를 들어서니 2명 남짓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계단 또한 좁았다. 이 같은 내부 인테리어 때문에 사람들이 몰릴 시간에는 외부에서만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내부로 입성하니 일렉트로닉 장르 중 하나인 ‘싸이트랜스’ 음악과 화려한 레이저 조명들이 클럽 내 클러버들을 향해 쏘아 내리고 있었다. 지하계단 밑으로 겉옷과 가방 등 춤출 때 거슬리는 짐을 맡기는 물품보관소가 따로 마련돼있었다. 그곳 역시 줄서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보관료 3000원이 상단에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고가의 물품 및 귀중품은 분실 시 따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한 번 맡기신 물건은 다시 보관하실 경우 약 3000원이 추가로 지불됩니다.’

실제로 기자와 동행한 지인은 겉옷을 미처 맡기지 못해 추가로 3000원을 더 지불하기도 했다. 클럽 내 가운데 커다란 기둥 옆에는 칵테일 및 양주를 시킬 수 있는 타원형으로 된 주류 바가 있었고, 바텐더들도 분위기에 취한 듯 주문된 술을 제조하며 현란한 댄스를 추고 있었다. 재밌던 점은 바와 천장으로 연결된 봉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일부 여성들은 바 위에 올라가 봉을 잡고 춤을 춘다고 했다. 사람들은 입장료와 함께 받아온 무료 시음권을 내고 기호에 맞는 술을 시킨 후 기다리면서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거렸다. 수많은 인파 때문에 자신의 술이 무엇인지, 뭘 시켰는지도 모르고 남이 마시던 잔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오전 5시가 다 되가는 시간에도 여전히 클럽은 젊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짙은 화장에 가터벨트, 란제리를 연상시키는 야시시한 의상을 입고 온 여성들과 화려한 색상의 헤어, 각기 개성을 살리는 의상을 입고 온 남성들이 둘 혹은 셋 이상 등 그룹을 만들어 부비부비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나 스테이지 앞 DJ가 서 있는 부스 양 옆에도 단단한 스테인리스 소재의 봉 2개가 세워져 있었다. 이 같은 봉을 클러버들은 ‘폴’이라고 부르는데, 몇몇 남성들은 상의를 탈의한 채 란제리룩 여성과 폴을 잡고 끈적한 춤을 즐기고 있었다.

상의를 탈의한 두 남성은 한 손은 폴을 잡았고 다른 한손은 여성의 다리를 들어 올려 똑바로 보기에도 민망한 자세로 폴댄스 삼매경에 빠졌고 또 다른 폴에는 상의를 탈의한 남성과 흰 가슴을 반쯤 드러낸 여성이 성교를 연상시키는 듯한 수위 높은 야한 폴댄스를 즐겼다.

이 외에도 스테이지 내부에는 신체의 2/3를 노출하거나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타이트한 의상을 착용한 여성들과 강렬한 인상·피어싱과 문신 등으로 몸을 감싼 남성들이 야릇한 댄스와 함께 입을 맞추고 서로 몸을 더듬는 등 여느 연인 못지않은 진한 스킨십을 나눴다.


애프터 알림 불쇼
룸서 성관계 일상

진한 스킨십과 시끄러운 노랫소리, 현란한 춤들이 클럽을 장악한 가운데 갑자기 스테이지 중앙 천장에서 불쇼가 진행됐다. DJ의 멘트에 뒤이어 몇 차례 이어진 불쇼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일종의 알람과도 같았는데 보통 5시가 되면 애프터를 알린다는 의미로 불쇼를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쇼가 끝나자마자 온갖 3D 영상과 어지러운 레이저 불빛, 정신없는 음악소리 등이 어우러지며 흥분이 달아오른 클러버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아침 6시를 넘어서자 하나둘씩 짝을 지어 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늘어났다. 그럼에도 클럽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발걸음을 쉽게 옮길 정도는 가능했다. 머릿속을 정리하려 내부를 꼼꼼히 살펴봤다. 클럽 왼편에는 테이블 부스가, 오른쪽에도 부스와 벽 끝에 룸이 일렬로 이어져 있었다.

테이블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던 기자는 옆쪽에서 술 취한 채 두 남성의 부축을 받아 룸으로 끌려가는 젊은 여성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여성을 끌고 간 두 남성은 애초 연고가 없던 사람들로 보였고, 자신들이 사전에 예약한 룸에 데리고 들어갔다.

룸 창문은 지그재그로 엇갈리며 반투명으로 처리돼있어 마음만 먹으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여성은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는 상태였고, 하의가 짧은 원피스 차림이었던 터라 남성들의 스킨십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됐다. 슬쩍 지나간 그 잠시 동안에도 남성은 여성의 가슴과 허벅지를 더듬으며 키스를 시도했다.

술에 취한 여성은 아무 제지도 못하고 힘없이 남성의 의사와 목적대로 몸을 맡긴 채 그대로 옆에 누워버렸다. 

상의탈의 남성·란제리룩 여성들 봉춤
여기저기서 성교 연상케 하는 부비부비
“만취녀 강제로 룸 끌고가 몹쓸짓”

성인남녀들의 난잡한 댄스와 스킨십은 스테이지보다 룸 내부에서 더 음흉하게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일례로 타 애프터클럽에서는 룸 테이블 위에서 남녀가 호루라기에 맞춰 부비부비를 하며 키스를 나누고 분위기에 달아오르면 성교행위까지 한다고 전해졌다.

또 외국인 친구나 불법루트를 통해 대마초와 엑스터시 등과 같은 마약 복용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던 클럽에서는 금·토 중 임의적으로 마약단속반이 들이닥치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대마초나 엑스터시 등은 거의 인맥을 타고 손에 넣어졌고, 양과 개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마약을 투약하는 이유는 술 마시고 오랫동안 노는 게 힘들어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더욱 자극적이고 흥분된 상태로 놀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졌다.

친구들끼리 왔다는 한 남성은 “지난달에도 한 번 왔을 때 단속이 들이닥쳤다. 대마는 담배랑 다르게 냄새부터가 다르다. 대마 같은 게 너무 티가 나면 일부는 엑스터시를 구입해서 술에 타 마시거나 한다”고 전했다.

기자에게 말을 걸어온 대학생으로 보이는 또 다른 남성은 애프터클럽의 실상에 대해 “지난주에 여기 와서 몸매 죽이고 예쁜 누나를 만났는데 알고 봤더니 트랜스젠더였다. 예뻐서 접근했는데 기겁하는 줄 알았다”면서 “술집에서 일하는 화류계 누나들, 레이싱 모델 같은 몸매 죽이는 여자들이 정말 많이 온다. 클럽 직원들이 그런 사람들은 미리 작업해서 무료로 입장시킨 후에 홍보용으로 게스트(손님)로 끌어들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클러버들의 축제
혹은 퇴폐의 온상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난잡하게 노는 것을 즐기는 한국 남녀들. 한 외국인은 이런 한국인들을 두고 “낮에는 한없이 조용하고 생기 없어 보이는데, 밤만 되면 사람이 180도 바뀌는 열정적인 마인드를 소유한 사람이 한국사람이다. 또 진정한 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클럽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호텔클럽까지 포함하면 강남에만 무려 20개가 넘는다. 특히 메인클럽과 달리 클러버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애프터클럽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해방구만큼이나 퇴폐의 온상이라 지탄받는 곳도 바로 이 애프터클럽이다. 클러버들에게 시간의 자유를 주고자 만들어진 애프터클럽은 젊은이들의 쾌락이라는 정도를 넘어서서 퇴폐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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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