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망령 '유신마케팅' 실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11 10:21:57
  • 댓글 0개

박근혜 시대…'박정희 숭배' 전국서 돈질

[일요시사=사회팀] 경상북도를 기준으로 MB정부 5년간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에 사용된 국고는 모두 1270억원이다. 민간 출자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18대 대선을 앞두고서는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이라는 관광 코스가 개발됐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는 잔치판이 벌어졌다.

새해 첫날 오전 11시 경기 안성 영평사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신년 차례제'가 열렸다. 궂은 날씨 탓에 많은 인파는 모이지 않았지만 몇몇 스님들과 참가자들이 '박정희 추모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평사 주지인 정림스님과 신도들이 돈을 모아 건립했다는 '박정희 추모관'은 건립 대지 1만3200㎡(약 4000평), 총건평 1120㎡(약 340평) 규모다. 건립비용은 약 5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상 3층인 이 추모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등 유품 27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내가 좋아서 50억
땅 사는데도 70억

이 '박정희 추모관'을 건립한 정림스님은 "내가 좋아서 진행한 사업이며 절대로 정치권의 돈은 받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추모관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열린 '박정희 추모관' 개관식에는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가 참석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 특보단장을 지낸 박창달 전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영남학원 이사진이자 국립암센터 원장을 지낸 박재갑 교수, 황은성 안성시장 등도 함께했다. 이들은 추모관을 둘러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시주를 받은 스님도 벽에 걸린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반년이 흐른 구랍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소식이 각 일간지 머릿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1일 육 여사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은 "육영수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옥천군은 다가올 2017년까지 옥천읍 교동리에 있는 육 여사 생가 앞에 '육영수 기념관'을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부지 규모 5만㎡(약 1만5000평)에 이르는 이 사업은 대지매입까지 포함해 모두 14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옥천군 측은 이중 절반인 70억원을 부담한다는 계획이다.

옥천군의 관광개발사업 담당자는 "오래 전부터 기념관 건립계획이 있어왔다"면서 "아직 계획서만 갖고 있고 올해 예산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정도면 대지 문제가 해결되고 기념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육영수 기념관' 건립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여 있는 건립 예정 대지의 용도변경이다. 20명 남짓한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정한 개발제한구역이다.

박 당선되자 곳곳에서 '잔치판'…일가 기념사업 봇물
생가 관광코스·기념관·추모관·테마공원 건립 추진

그러나 옥천군 측은 "올해 안에 토지 용도변경을 위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 대지에 대한 실사나 농부들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단계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옥천군은 이미 지난 2011년 37억원을 투입해 육 여사의 생가를 복원했다. 조선 전통한옥으로 꾸며진 이곳은 충청북도기념물로도 지정돼있다.


특히 육 여사의 생가는 대선을 앞두고 관광 패키지 상품으로 개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대선 기간 전국 곳곳에는 '고급 한정식을 제공하는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이 단돈 1만원'이라는 전단이 나붙었다. 대구에서는 관광 가격이 5000원까지도 내려갔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선심성 관광이 아니었겠느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당시 선관위는 "의혹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지었다.

비슷한 시기 옥천군은 육 여사의 전기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와 관련된 소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직 대선이 치러지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옥천군은 "금전적 지원은 없다"고 못박았다. 옥천군의 문화사업 담당자는 "영화 제작사 측과 몇 차례 통화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의 제작사 '드라마뱅크(대표 주기석)'는 지난해 11월 제작 발표회를 가졌다.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는 기획 단계부터 '유신 마케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지적부터 '정치권이 돈을 댄 영화'라는 풍문까지 돌았다. 드라마뱅크 측이 밝힌 예상 제작비는 66억원, 이 영화의 투자를 총괄하고 있는 김용대 PD는 최근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 "순제작비 46억원에 마케팅 비용이 20억원 정도 들어가며 현재까지 목표액의 절반 정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유신 향기 솔솔
당선 특수 노려

지난해 사전 입수한 이 영화의 '투자 유치 파일'에 따르면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의 주 타깃은 40∼50대, 목표 관객은 1천만명 이상이다. 영화 관람료와 판권 등을 포함하면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특히 드라마뱅크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를 소개하면서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세대가 이 영화를 통해 향수를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이 영화는 대선 바람을 타며 지난해 12월 개봉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크랭크인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제작사 측은 당시 투자자에게 "올해(2012년) 안에 무조건 개봉합니다"라고 말하며, 대선 특수를 암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메인 투자사인 제일진흥주식회사를 제외한 개인 투자자 대부분은 50대 이상이었다.

이처럼 '유신 마케팅'을 노리는 건 비단 영화계뿐이 아니다. 영화와 동명의 뮤지컬인 <퍼스트레이디>는 '스타앤미디어(대표 박근태)'라는 제작사가 투자를 맡기로 했다. 지난달 7일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에서 제작발표회를 연 <퍼스트레이디>는 연극 <육영수>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80.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대구도 '유신 마케팅' 대열에 합류했다. 대구 소재 한 민간 호텔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박 전 대통령이 자주 들렀다는 객실을 '박정희 테마룸'으로 개조했다. 대구시도 이에 가세했다. 박 당선인이 태어난 곳에 안내표지석 등을 설치, 박 당선자를 대구 마케팅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박 당선인이 태어난 곳은 현재 대구 최고의 번화가로 그 흔적을 찾기 쉽지 않지만 대구시는 '박 당선인 기념사업'에 집념을 보이고 있다. 한 대구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살았던 곳에 생가가 남아 있으면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데 일단은 대지 매입 없이 안내표지석 등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요구도 있었고, (박 당선인이) 당선됐을 때 현수막도 걸고 한 것을 보면 사업의 의미가 없지 않다"면서 "대통령 탄생지에 안내 표식을 하는 건 우상화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박 당선인이 정확히 어디서 태어났는지 조사 단계에 있고, 현재 있는 '대구 도심 골목투어 코스'에 박 당선자 탄생지를 포함하게 되면 일정 부분 추가 경제 이득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구시가 '유신 마케팅'의 일환으로 박 당선자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입수한 구미시의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실시설계 용역 요청서'에 따르면 구미시는 지난달 7일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상모동 151번지 공원화 사업부지 내에 실시설계 용역 공개입찰을 공고했다. 생가 주변 1만5400㎡(약 4650평) 대지 규모로 35억원의 시 예산을 들여 시작된 이 공사는 13일 적격 심사를 마친 건설사를 상대로 개찰을 시작했으며, 현재 입찰이 끝나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아침이 밝았네
홍보관이 열렸네

이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사업은 인접 지역에서 진행 중인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 사업과는 별도로 관리된다. 각 사업마다 따로 예산이 배정돼있다. 최근 구미시가 입찰 용역 업체로 발송한 '과업 요청서'에 따르면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관' 건립 기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박정희 홍보관'이라고 불리는 이 시설에는 유품 전시실과 기념품 판매소 등이 들어선다. 구미시는 착공일로부터 75일 이내에 공사를 완료하고 '박정희 홍보관' 주변을 관광특구로 개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미 2008년부터 시작된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는 도비 25억원이 지원됐으며 시비는 261억원이 집행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박정희 홍보관' 주변에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 새마을 테마공원 프로젝트에는 '박정희 동상' 주변 시설을 포함한 26만3553㎡(약 7만9000평) 대지에 총 792억원의 예산이 배정돼있다.

또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내에는 근면·자조·협동 이념관, 새마을운동 연수시설 등이 들어서며, 1960∼70년대 농촌마을이 재현된다. 구미시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구미시는 매년 정수정학회와 함께 '대한민국정수대전'을 주최하고 1억7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정수대전'은 구미시에 위치한 '박정희 체육관'에서 개최되며 박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을 선양하고 그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로 96번째를 맞는 '박정희 탄신제'에는 매년 7500만원의 시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박정희 탄신제'는 말 그대로 박 전 대통령의 생일인 11월14일을 기념하면서 열리는 행사로 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그간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

육영수 전기영화 개봉 임박
비슷한 내용 뮤지컬도 제작

그러나 구미시는 2013년에도 탄신제 지원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오히려 매해 700만원 규모로 지원되던 박 전 대통령 추모제 예산을 1500만원으로 증액 편성했다.

그리고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된 지난 2일 남유진 구미시장과 심학봉 의원, 김태환 의원 등은 새해 첫 일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생가 방문을 선택했다. 이날 오전 생가를 찾은 남 시장 등은 헌화를 분향하며 박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박 당선인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향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만큼 박정희 복원사업도 다시 활개를 찾지 않겠냐"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중앙당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주민들은 이를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988년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에서 '군탄공원'으로 개명된 갈말읍 군탄공원은 최근 옛 명칭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으로 개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몇몇 '박정희 추앙 단체'를 중심으로 획책되고 있는 이 운동은 박 당선인의 강원도 방문과 함께 탄력을 받고 있다.

군탄공원은 지난 1963년 박 전 대통령이 퇴역하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우한 군인이 되지 마라"라는 말을 남긴 곳으로 1969년 육군 5군단이 박정희 정권 당시 '박정희 장군 전역비'를 세우면서 공원화가 추진됐던 곳이다. 1976년 전역비를 중심으로 공원화가 조성될 당시의 대지 규모는 2만2845㎡(약 6900평)였다.

떴다 하면 유적
역시 유신스타일

지난 7월 박 당선인은 대통령후보 신분으로 강원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던 중 선친이 전역을 맞이한 육군 5군단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과 동행하던 정호조 철원군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졌다.
"철원에 전역비가 지금도 있어요?"
박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구랍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 때 <월간 박정희>라고 적힌 종이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