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파란만장' 박근혜 60년 인생사 탐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26 1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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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여왕으로…33년 만에 궁궐로 돌아가요

[일요시사=경제1팀] '공주'가 '여왕'이 됐다. 33년 만에 '궁궐'로 돌아간다. 대통령의 딸도, 퍼스트레이디도 아닌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 자격이다. 대통령의 맏딸이자 5선 국회의원으로 마침내 대권을 향한 꿈을 이룬 박근혜 당선인.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굴곡진 그녀의 60년 인생을 <일요시사>가 집중 조명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학교 교사 출신 육영수씨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2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9살이 되던 해인 1961년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2년 뒤인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큰 영애'로 불리며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박 당선인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가혹한 운명의
퍼스트레이디

박 당선인은 이 시기부터 각종 외교행사에 참석했다.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의 방한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등장했고 1968년 9월에는 대통령 부부의 호주 방문에 동행했다. 196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당시 세계 최대의 유조선인 '유니버스 코리아호'의 진수식에서 샴페인을 떠드리기도 했다.

성심여중에 입학한 박 당선인은 성심여고까지 재학하는 동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1974년 서강대 이공학부(전자공학 전공)를 4년 평균 학점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그해 8월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갑작스런 서거로 귀국한 박 당선인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뒤 일주일도 안 돼 퍼스트레이디 직무대행을 했다.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박 당선인의 첫 일정이었다. 박 당선인은 당시 일기에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적었다. 그녀의 나이 22세의 일이었다.

1974년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은 박 당선인은 새마을운동 정신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어가자는 의미의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영세한 기업과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방문할 때 수행하기도 했다. 1979년 주한미군 철수를 두고 미묘한 시점에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철수 계획이 취소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극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머니를 잃은 지 5년 뒤 10·26 사태로 아버지를 흉탄에 잃었다. 삽교천 준공식 행사에 참석한다고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에 비보를 전해들은 박 당선자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전방은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요람에서 당선까지' 박근혜 당선인의 발자취
부친 서거 소식에도 "전방 이상 없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권력의 대이동이 시작되자 박 당선인은 지만, 근영 두 어린 동생과 함께 1980년 18년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집으로 옮겼고, 이어 성북동 자택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박 당선인은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으로부터 9억원(후에 3억원은 돌려줌)을, 1982년에는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평 규모의 성북동 자택을 받았다. 박 당선인은 2년 뒤 성북동 집을 팔아 장충동에 집을 샀고, 1990년 다시 그 집을 팔고 현재 삼성동 자택으로 이사했다.

이후 18년 동안 박 당선인은 육영재단과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 1994년 인수한 정수장학회 운영에 몰두했다. 1980년 영남대 이사장직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남긴 육영재단 이사장직도 맡았다. 일기와 독서, 시 작성, 단전호흡, 불교경전 읽기 등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며 '훗날'을 준비했다. 1990년 아버지 일대기를 다룬 책 <겨레의 지도자>를 출간했고, 영화 <조국의 등불>을 제작하며 아버지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박 당선인이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7년 발생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자서전에서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혼자 편하게 살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라고 회고했다. 마침내 1997년 12월10일, 대선을 8일 앞둔 시점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지지 선언을 통해 '정치인 박근혜'로서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박 당선인은 2000년에는 선출직 부총재 경선에 참여해 최병렬 후보에 이어 2위에 올라 부총재로 당선됐다.


'천막당사' 배수진
'선거의 여왕' 애칭

2001년 이회창 총재가 당 개혁안을 거부하자 이에 반발해 탈당하고 2002년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이던 2002년 5월12일에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특별기를 타고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들어갔다. 2박3일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나 1시간 동안 단독회담을 한 적도 있다. 들어올 때는 김 위원장의 배려로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들어왔다.

2002년 11월 16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한나라당과 합당한 박 당선인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과 '차떼기 사건'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쳤다. 당 대표 첫날 명동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고 조계사에서 108배를 한 데 이어 영락교회에서 반성의 기도를 올렸다.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5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완승을 이끌어내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박 당선인이 당 대표로 있던 2년3개월간 한나라당은 4번의 재보궐선거를 모두 승리했다. 2006년 5월20일 박 당선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서울 신촌로터리 지방선거 유세 도중 오른쪽 뺨이 면도칼에 의해 11cm나 찢기는 테러를 당했다. 의사들은 5mm만 더 찔렸더라도 경동맥을 스치며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간 박 당선인은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 지지층을 단결,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 광역단체장 석권을 만들어냈다.

이후 2007년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던 박 당선인은 2006년 6월16일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 경쟁에 돌입, 서울시장으로서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이명박 후보와 경쟁했다. 박 당선인은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전화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 후보에게 패했다. 박 당선인은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 이 후보를 지원해 '아름다운 패배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친이' '친박'계 간 갈등이 본격화 된 것. 18대 총선 때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친이계와 정면 대립했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맞서 본회의장에서 직접 연설을 하며 원안을 고수했다. 친박계 정치인들의 한나라당 복당을 꾸준히 요구해 친박계 60여 명의 복당이 관철되기도 했다.

18년간의 '공주' 생활과 18년간의 '칩거' 생활
1997년 정치권 등장, 2012년 대통령 당선

박 당선인은 2011년 말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보선 패배, 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한나라당이 휘청거리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중도적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며 쇄신작업을 진행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새누리당은 선거전 초반 부정적 여론을 극복하고 4·11 총선에서 152석으로 1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 당선인은 지난 7월10일 "국민 한분 한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18대 대선에 출마했다. 8월20일 김문수 경기지사, 안상수 전 인천시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태호 의원 등과 벌인 당내 경선에서 84%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며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박 당선인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에게 우위를 지키며 대선 레이스를 달려왔다. 중간 중간 과거사 논란·정수장학회 문제·경제민주화 갈등 등의 악재가 돌출됐지만 지지율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고비라 평가되던 문재인·안철수 간 단일화도 박 당선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 당선인은 마침내 지난 1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 첫 과반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 당선인은 1577만3128표를 얻어 문재인 후보(1469만2632표)를 3.6%p(108만496표) 차이로 눌렀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부녀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오르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신뢰의 정치로
대선 승리


박 당선인은 지난 20일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내년 2월25일 공식 취임 전까지 정권 인수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주말 인수위원회 구상을 마친 뒤 이번 주께 인수위원장과 위원 인선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약 두달 여간 정권 인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벌이게 될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은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으로 결정됐다. 내년 1월 중순까지는 국무총리 후보자를 먼저 지명한 뒤 상의를 거쳐 1월 말쯤에는 각부 장관 후보들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 임기는 2018년 2월24일까지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박근혜 당선인 프로필>

출생 1952년 2월2일
본적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5-2
혈액형 B형
신장 162cm
특기 피아노연주
취미 산책, 문화유산답사
좌우명 바르고 현명하게 살자

학력
1970년 성심여고 졸업
1974년 서강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7년 대만 중국문화대 명예 문학박사
2001년 대만 중국문화대 대학원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2008년 한국과학기술원 명예 이학박사
2008년 부경대 명예 정치학박사
2010년 서강대 명예 정치학박사


경력
1974~1979년 퍼스트레이디 대리
1974년 재단법인 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 이사장(현)
1993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현)
1994~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
1994년 한국문인협회 회원(현)
1997년 한나라당 고문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
1998~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운영위원, 한나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
2003년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2007년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11~2012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새누리당)
2012년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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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