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학교 후문, 이른바 ‘개구멍’ 등지에서 바쁜 손이 오간다. 심지어 대놓고 정문에서 거래를 하는 이도 있다. 이것은 요즘 성행하는 신종아르바이트다. 학교 앞에서 미성년자에게 술·담배 값을 원금보다 배로 받고 직거래하는 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는 용돈벌이로 꽤 짭짤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어 20대 초중반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알바로 꼽히고 있다. 철없는 성인과 미성년의 암거래. 담배 은어인 ‘빵’을 이용해 담배 구매를 뚫는다는 뜻의 ‘뚫어빵’ 실태를 낱낱이 공개한다.
‘이름: 홍OO, 담배 종류: OO플러스, 개수: 1보루, 장소: OO고등학교 정문 앞, 시간: 10시40분.’
이는 한 고등학교 학생이 담배거래를 목적으로 알바생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알바생은 해당 문자를 받고, 미성년자인 신분 때문에 부득이하게 술·담배를 구입할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친절하게(?) 대신 담배와 술 등을 사다주며 흥정을 한다.
요즘 이런 신종 알바가 중고등학교 등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당 알바생인 정모(27)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어 용돈벌이나 할 심산으로 학생들과 이 같은 거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학생들을 상대로 암거래를 시작한 것일까.
2500원→5000원
이유는 간단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술·담배를 사기 위해 길가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구걸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현재의 학생들도 당시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씨 같은 신종 알바생들은 오히려 지금의 학생들이 예전보다 강화된 신분증 검사로 인해 술·담배 구입에 목말라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들은 이 점을 곧바로 악용했다.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연락처와 문자 한통이면 충분했다. 이들이 공유하는 숨겨진 암거래 방법을 자세하게 알아봤다.
거래 당사자들은 대부분 음성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했다. 특별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요즘 학생들이 선호하는 연락수단이 비교적 기억하기 쉬운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메시지였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거래일정은 월·수·금, 주 3일이나 화·목, 주 2일로 미리 결정해서 정해진 시간에 돈과 담배를 맞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시간은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이후, 방과 후 등 가지각색이었다. 알바생이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면 학생은 학생주임교사 등의 눈을 피해 재빨리 거래장소로 달려가 돈을 주고 담배를 받아 챙겨 아이들과 나눠 피운다. 거래 장소 또한 인적이 드문 학교 후문 근처나 개구멍 등지에서 암거래를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알바생의 거래 수법 또한 학생들 못지않게 교활하고 철저하다. 신종 알바생은 학생이 요청한 담배를 원하는 개수만큼 구입하고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으로 가격을 높게 부른 후 흥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담배 한 갑 당 2500원∼2700원의 가격을 6000원 내지 5000원 이상으로 뻥튀기한 후 학생으로부터 해당 가격을 받아 챙기는 식이다. 혹여나 학생 측에서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 나오면 알바생은 “나는 고급인력이다. 제안한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사면 된다”는 식으로 여유를 부린다. 이는 성인신분이라는 이점을 악용한 것이다. 심부름값 또한 이 가격에 포함돼 있어 아쉬운 사람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과 다름없었다.
이 같은 직거래로 하루에 네다섯 군데 학교만 돌아도 20여만원은 거뜬히 벌 수 있다고 알바생들은 입을 모은다. 거래를 할 시, 한 학생이 대부분 대량구매를 원해 보루 당 거래를 하기 때문에 고액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
중고생 상대 술·담배 암거래 신종알바 성행
돈벌이 없는 대학생·백수 용돈벌이로 ‘쏠쏠’
일례로 한 학생이 3보루를 알바생 정씨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 정씨는 대량 구매한 학생에게 한 보루당 500∼1000원씩 추가로 받아 약 1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챙겼다. 정씨는 원금을 제외하고도 약 3만원의 이익을 본 것이다.
특이한 점은 담배를 대량 구매한 학생이 타 학생들에게 되판다는 점이다. 알바생과 암거래한 학생은 거금을 들여 담배를 몇 보루 구입한 후, 자신이 피울 양만 남겨 놓고 타 학생들을 상대로 원 가격의 20% 이상의 가격에 담배를 판매하며 또 다른 이익을 챙긴다고 전해졌다.
술도 예외는 아니다. 호기심으로 물든 중고등학생들이 술과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성년 신분이기 때문에 술집에 들어갈 수 없는 일부 학생들은 방과 후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이나 학교 운동장 벤치에 둘러앉아 허술한 과자 안주에 술 한 모금씩을 돌려 마신다고 한다. 하지만 술을 사는 일 또한 그들에겐 쉽지 않을 터. 신종 알바들은 이 점 역시 악용해 소주와 맥주 등을 학생들에게 대신 사주며 한 병당 5000원씩 가격을 책정하고 한 번 사줄 때마다 2만∼3만원의 돈을 챙겨 넣는다고 한다.
모 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다른 학교에서 그런 일(불법거래)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 보통 남녀공학이나 남자고등학교의 경우에는 노안인 친구들이 몇 명 있기 때문에 굳이 두 배 이상의 돈을 주며 거래하지는 않지만, 앳된 외모의 중학생이나 여자고등학생을 상대로 그런 일(불법 직거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술·담배 암거래 현실에 대해 해당 학교의 한 교직원은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은 지나가기만 해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경로로 담배 등을 구매했는지는 전혀 몰랐다. 학교 근처에서 대리 판매한다는 소문은 처음 들었다”며 “아이들을 상대로 불법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성행하니 아이들이 더 나쁜 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 학교 인근 단속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매해 되팔기도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우면서 자란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은 추악하고 그릇된 행위들을 아이들 앞에서 버젓이 드러내고 있다. 이 또한 호기심이 왕성한 미성년자를 술·담배로 유혹해 장삿속에 휘말리게 하는 어른들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