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제주 '카지노 전쟁'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21 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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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냄새 맡고…전국구 형님들 총집결

[일요시사=경제1팀] 제주도가 시끌시끌하다. 카지노 경영권을 두고 세력 간 충돌하는 등 하루하루가 긴장감의 연속이다. 지난 한 달 새 경찰에 연행된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 '명품 관광 특구' 제주를 어지럽히고 있는 카지노 전쟁.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3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영업권 분쟁 끝에 폭력사태를 빚은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호텔신라 카지노의 불법 영업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은 이 카지노 영업장 내에서 영업장부와 컴퓨터 보관 문서 등을 압수한데 이어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 중이다.

대규모 폭력사태
경찰력 대거 동원

해당 카지노 영업 분쟁은 레저와 방송수신기기를 생산하는 제이비어뮤즈먼트(옛 현대디지탈텍)이 자회사 AK벨루가를 설립해 호텔신라 제주 카지노인 벨루가를 운영할 수 있는 허가증을 지난달 13일 제주도로부터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AK벨루가는 지난 9월 예금보험공사에서 퇴출된 부산저축은행의 호텔신라 벨루가 카지노 부실채권을 이자를 포함해 모두 변제하고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카지노 영업권과 주식, 보증금, 부동산 등을 양수했다. 영업권 양수 후 AK벨루가는 지난달 5일 호텔신라와 사업장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AK벨루가가 영업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와 직원들은 카지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전 사업자가 점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들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전 사업자에 따르면 또 다른 전 사업자와 카지노 인수 계약을 둘러싸고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적 결론이 내려지기 전에는 정당한 점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 사업자 A씨는 2010년 당시 카지노를 운영하던 B씨에게 146억원을 지급하고 주식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한 후 계약금 36억원만 지급하고 카지노 영업을 시작했다. 잔금 110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서로 약속 불이행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내 카지노 업장들 경영권 분쟁 잇달아
용역·조폭 동원 폭력다툼에 검경 초긴장

결국 전·현 사업자가 동원한 경비용역 직원과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지난달 16일에는 양측 경비용역 간 폭력사태가 발생해 16명이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지난달 29일에는 경찰력과 충돌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29일 오후 4시30분께 카지노 후문 출입구로 용역직원 24명이 진입했고 카지노 안에 있던 직원 55명이 밖으로 나오며 시비가 붙었다. 이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10여 분 간 패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곧바로 강력계 형사와 서울기동대 소속 대원 등 약 10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해 진압에 나섰다. 무력을 행사한 용역 등 70여 명은 폭력 등의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양쪽이 주먹을 휘두르고 몸싸움을 벌여 즉각 개입해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관련자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AK벨루가는 지난 6일부로 카지노 객장에 들어가 영업 준비를 하고 있으며 벨루가 카지노는 '마제스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년 1월17일 개장을 목표로 인테리어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제주시내 모 호텔 카지노에서 공동운영자 등 15명이 자신들도 카지노에 일정 부분 투자 지분이 있다며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1명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나도 지분 있다"
전현직 경영진 충돌

이 호텔 카지노는 공동경영을 예고한 홍모씨 등 2명이 기존 카지노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지분 50%를 보유한 기존 대표이사 정모씨와 마찰을 빚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홍씨 측은 현 대표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식보유자 3명과 접촉해 50%의 주식을 매입했으나 경영진이 주식 매입과정에서 하자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 등 15명은 오후 5시10분경 영업 중인 호텔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 업무준비 중이던 정씨 측 직원들을 밖으로 몰아낸 후 문을 걸어 잠그고 1시간여 가량 영업을 방해했다.

이 카지노는 지난 10월28일에도 홍씨와 정씨가 서로 용역을 동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나섰다. 제주지검은 지난 10일 전·현 사업자 간 갈등을 빚는 제주시내 다른 호텔 카지노에 대해 압수수색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이 카지노는 현 경영진이 비리를 저질렀다며 전 경영진 쪽에서 검찰에 진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이어진 압수수색에서 경영상 문제가 불거진 혐의를 찾기 위한 관련 자료 등을 압수했다. 이 호텔 카지노는 전·현 사업자 간 갈등으로 수년간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겪고 있는 곳이다. 현 경영진이 소액주주연대 대표와 손을 잡고 호텔 경영권을 확보한 뒤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이번에는 현 대표이사와 소액주주연대 대표가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 상당수 영세
사업 진출 쉽다

지난해 10월에는 조직폭력배 등 40여 명이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는 등 폭력사태도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서귀포 조폭인 속칭 '땅벌파' 조직원 오씨 등 21명과 용역 17명의 신원을 파악해 36명을 검거했고 호텔 로비에서 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현 경영진의 퇴거요청에 불응하고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 경영진 이모씨 등 6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11월 한 달 동안 경찰에 검거된 인원만 110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왜 유독 제주지역 카지노에서만 이런 촌극이 연출되는 걸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2 카지노 통계'(2012년 4월 기준)에 따르면 국내 운영 중인 내·외국인 카지노는 모두 17곳. 이 중 제주지역에서 운영 중인 카지노는 8곳이다.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강원랜드카지노를 제외하면 제주지역에만 업소 절반이 모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제주지역에서 운영 중인 외국인 전용 카지노 8곳의 입장객와 매출액을 모두 합쳐도 서울 1곳보다 떨어진다. 제주지역 카지노 8곳의 총 입장객 및 매출액은 18만989명, 1014억9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에 있는 S카지노 입장객 84만7260명에 비해 66만6271명이나 적은 수치다. 비율로 보면 21%에 해당한다.

매출액의 경우 서울 P카지노는 2449억7500만원으로 제주지역 8곳을 합친 1014억9300만원에 비교해 1434억8200만원을 더 벌어 들였다.

여기저기서 물리적 충돌 발생
"한 달 새 110명 줄줄이 연행"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제주지역 카지노가 영세해 새로운 사업자의 진출이 쉽고 무비자 중국인 관광객이 늘며 관광객이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계만 봐도 업황이 좋지 않은데 제주지역에 운영 중인 카지노가 전국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난립한데다 두 곳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영세해 수익이 불안정해지고 그에 따라 주인이 자주 바뀌게 된다는 설명이다. 카지노가 입점해 있는 호텔들은 임대만 하기 때문에 영업권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분쟁이 벌어져도 모른 체하고 있다.

이번에 분쟁이 일어난 세 곳의 카지노도 모두 독립 법인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고,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새로운 사업자가 비교적 싼 값에 영업권을 사서 진출할 수 있다. 신규 사업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지급하고도 영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 경영난으로 나머지 금액을 완납하지 못하게 되어 분쟁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2008년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비자 정책과 제주도의 적극적인 외국인 부동산 투자 유치 정책도 이에 한 몫 한다. 지난 한 해 제주를 찾은 중국인 총 관광객은 약 50만명. 이 중 20%가 넘는 11만3000여 명이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했다. 2009년 5만6000여 명이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했던 것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추이가 아닐 수 없다.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2009년 제주지역 카지노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2만1500여 명. 이중 46%가 중국인이었지만 2011년에는 70%로 급증했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 10월29일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을 통해 제주공항으로 오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면서 카지노를 찾는 중국 관광객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지노 입점 호텔
"뭐가" 나몰라라

제주도와 관광업계 등에서는 제주도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카지노 영업권 분쟁이 제주관광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관광업계 관계자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이미지만 심어줘야 하는 상황에서 폭력사태만 보여주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제주도에서는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대책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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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