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재판 중인 태광그룹 모자에 돌발 악재가 겹쳤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정공방과 별도로 또 다른 예민한 사안이 터졌다. 공소장에 빠진 정관계 유착·로비·특혜 의혹이 그것이다. 향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건강상 이유로 일단 철창에서 나온 이선애·이호진 모자가 편히 쉬지도 못하게 생겼다.
태광산업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를 지낸 전성철 변호사가 태광그룹의 불법 차명거래 의혹 등과 관련한 조사자료의 공개를 금융당국에 요구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소송을 낸 지 3년 만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전 변호사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행정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금감원의 상고를 기각, 전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돌발 악재 급부상
2007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3년간 태광산업 사외이사로 재직한 전 변호사는 2008년 1월 전 직원으로부터 회사의 불법 차명거래 의혹 및 내부자 거래 의혹을 전해 들었다. 태광산업이 전·현직 임직원 명의를 도용해 채권·증권계좌를 운영했다는 의혹과 태광산업이 쌍용화재를 인수하기 전 자사의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는 의혹이다. 그 금액이 수백억∼수천억원대에 달했다. 전 변호사는 녹취록, 매매거래원장 등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입수했다.
감사위원도 겸직했던 그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 수십차례에 걸쳐 서면과 구두로 태광산업 경영진에 사실확인을 요구했다. 경영진이 이를 모두 거부하자 전 변호사는 직접 금감원에 확인을 요청했다. 금감원도 법인의 경영상 비밀 및 개인 사생활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묵살했다. 전 변호사는 2010년 2월 금감원의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1차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지만 그해 9월 각하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판결 한달 전인 2010년 10월 시작됐다. 이후에도 금감원으로부터 외면당한 전 변호사는 2개월 뒤 다시 같은 내용의 2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전 변호사는 한 웹사이트에 올린 칼럼을 통해 태광그룹과 금감원 간 유착 가능성을 제기해 큰 파문이 일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이 쌍용화재 인수 직전인 2006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직원들의 차명계좌로 쌍용화재 주식을 집중 매입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리다 금융당국에 적발돼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보고의무 위반'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500만원만 냈다.
전 변호사는 "금감원이 태광그룹의 대규모 차명주식거래를 파악하고서도 자료 요청이나 당사자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금감원은 차명계좌의 실주인으로 지목된 대주주·CEO(이호진)와 주범으로 판정된 이모씨(이선애)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심각한 정경유착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해명자료를 내고 "태광그룹 불공정거래 조사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조사해 공정하게 처리했고, 그 어떤 유착관계도 없다"며 "전 변호사의 확인요청은 금융실명법 등 실정법 위반 소지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12월 2차 소송 결과가 나왔다. 행정법원은 1차 때와 달리 정보공개 거부를 취소하란 판결을 내렸다. 금감원은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올라갔다.
전 사외이사 금융당국 정보공개 소송서 승소
태광과의 유착·특혜 수수께끼 풀릴지 주목
고등법원의 판결도 다르지 않았다. 고등법원은 "금감원은 순수한 관련자의 인적사항 등 일부정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사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전 변호사의 승소를 결정했다. 고등법원은 "회사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서 금감원의 조사 정보에 대해 알권리가 있다"며 "정보공개로 인한 사생활 침해 정도가 크지 않고, 주식매매 경위나 그 취득자금 출처 등에 관한 정보는 태광산업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다시 상고를 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면서 이번에 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성역시 됐던 금감원의 증권·금융 관련 법 위반 사건 조사기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전 변호사 측은 "비리 등 조사기록을 무조건 비공개라고 해석하면서 이를 거부해 온 금감원의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며 "금융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금융기관들의 부정·부당 행위를 예방하는데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이번 판결로 대기업 비리에 대한 사외이사 등의 감시 기능을 확대하는 중대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소송이 태광그룹과 금융당국 간 유착·로비·특혜 의혹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도 예상된다. 이 의혹은 현재 재판 중인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의 혐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법정공방과 별도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지와 수사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당초 전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은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랐었다. 정관계 로비 수사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111일에 달하는 장기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고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검찰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 수사를 마무리 지었고, 이를 두고 '용두사미 수사' '반쪽 수사'란 지적이 쏟아졌었다.
당시 검찰은 태광그룹과 금감원 관련 의혹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소환 조사를 실시했지만 기소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정관계 로비 의혹도 기소될 만한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를 확보한 바가 없다. 내부고발자의 진술을 통해서도 로비 혐의로 기소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적잖은 파장 예상
이 전 회장은 14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지난해 1월 구속, 지난 2월 1심에서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전 상무도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모자는 건강상 이유 등으로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석방된 상태다.
검찰은 지난달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면서 수감 기간이 60여 일에 불과해 거의 처벌받지 않았다"며 이 전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7년에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이 전 상무에겐 징역 5년에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항소심 선고공판은 오는 20일 열린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태광 비자금 수사 일지]
<2010년>
▲10월13일 태광산업 본사 압수수색
▲10월16일 이호진 자택 압수수색
▲10월21일 이선애 자택 압수수색
<2011년>
▲1월4일 이호진 소환조사
▲1월12일 이선애 소환조사
▲1월18일 이호진 구속영장 청구
▲1월21일 이호진 구속
▲1월31일 이선애 불구속
<2012년>
▲2월21일 이호진 징역 4년6월 선고
이선애 징역 4년 선고(법정구속)
▲3월24일 이호진 구속집행정지
▲4월21일 이선애 구속집행정지
▲11월27일 검찰 항소심 구형
(이호진 징역 7년)
(이선애 징역 5년)
▲12월20일 항소심 선고공판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