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전두환의 5공 정권은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고 가 이근안과 고문기술자들을 동원해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10차례 갖은 고문과 구타를 가했다. 결국 김 전 고문은 후유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 지난 2011년 12월30일 숨을 거뒀다. 이 끔찍한 과정을 함께 겪은 이가 또 있었다. 제19대 국회의원으로 헌정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김 전 고문의 ‘바깥사람’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인 의원은 ‘별’이 진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밝히기 위해 고된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3일 국회에서는 ‘고문 방지 및 고문피해자 보상·치유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가 열렸다. 취재기자는 세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법안을 발의한 인재근 의원과의 인터뷰를 작정(?)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문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인 의원의 ‘아프도록 귀한’ 말씀을 전해야겠단 일념이었다.
취재기자는 수차례 방문하고 전화하며 인터뷰를 성사시키기위해 공을 들였다. 그리고 지난 7일 드디어 어렵사리 인 의원과 대담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은 인 의원과의 일문일답.
- 영화 <남영동 1985> 상영으로 고 김근태 상임고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 인재근 의원께서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시는데.
▲ 영화 때문에 조금 바쁘다. 국정감사 끝나고 <남영동 1985>를 기준으로 일정이 짜일 정도다.
-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남영동 1985>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게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제2의 김근태’ 가족의 심정도 그러할 것으로 안다. 그분들을 대변하는 한 말씀, 그리고 그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솔직히 말씀드리면 감히 제가 그분들을 대변할 수 없다. 영화보다 현실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편 김근태 의장은 그분들께 미안해했다. 자신은 살아남았고 정치·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진실규명과 치유가 지체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 최근 ‘고문 방지 및 고문피해자 보상·치유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했다. 법률 제정 배경과 필요성에 대해 말씀해 달라.
▲ 당연히 있어야 할 법이 너무 늦게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수많은 고문이 자행되었고 심지어 수사상 관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위헤 소위 ‘고문법’을 제정하게 됐다.
- 법안 통과에 새누리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어떻게 극복할 계획인가?
▲ 법안이 대선 이후에야 통과될 텐데 새누리당이 반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문은 가장 기초적인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감히 반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이라도 새누리당에서 상식에 반한 행동을 한다면 국민으로부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난 그 정도로 새누리당이 터무니없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 법안 통과 후 실효성 또한 의문이다. 당시 고문을 가했거나 고문을 지휘했던 인사들이 아직 국회와 행정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난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과거 고문가해자나 지휘자들이 큰 난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실의 힘은 강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힘은 위대하기 때문이다. 고문이야말로 반드시 청산돼야 할 과거사다.
과거사에 대한 최근의 국민 법감정이나 사법부의 자세 등을 볼 때 저는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물론 저항이 있다면 앞장서 단호히 맞설 것이다.
정치적 노림수?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
“고문,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범죄”
- <남영동 1985>와 ‘고문 관련 법’에 대해 대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라고 폄하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정치적 노림수라는 말은 대선정국에 정치적으로 영향이 있다는 말이고, 누군가에게 불리하다는 말이다.
나는 고문영화와 법을 폄하하는 분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다. 도대체 고문과 같은 반인간적인 중대 범죄 때문에 불리한 사람이 대통령후보 중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그런 사람이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는 개념 없는 나라라는 말인가.
오직 정치적 이념에 치우친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영동 1985>와 고문법은 작년 겨울 남편 김근태 의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일들일 뿐이다.
- 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도적 미비 등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 둘 다 중요한 문제다. 사회적 인식보다 제도적 미비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문은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은폐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기 때문에 일반시민이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와 관련된 제도는 그렇지 않다. 우선 고문의 대부분이 과거 독재시대 국가폭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문이 반인권적·반헌법적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국가가 고문에 대해 방관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기다리기엔 고문의 개인적·사회적 폐해가 너무도 치명적이고 지독하기 때문이다.
- 이달 초 국회의원 최초로 미얀마 민주화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 의원을 방문하셨다. 계기와 소감을 듣고 싶다.
▲ 초여름쯤이었다. 김근태 의장 1주기를 맞이해 11월에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자고 논의하던 중, 행사의 취지상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구체적 인물인 수치 의원께서 참석해서 한 말씀 주시면 참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생각해보니 정말 괜찮아서 여름에 초대장을 보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수치 의원께서 국내외 일정이 너무 많아 참석하기 곤란하다고 하셨다. 그 대신 우선 나를 초대한다고 하셔서 국정감사 끝나고 다녀오게 되었다. 수치 의원은 45년생이신데 정정하고 고우셨다.
- 수치 의원은 어떤 말씀을 하셨나?
▲ 김근태 의장 1주기를 맞이해 영상 말씀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열정, 조국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민주화된 한국을 부러워하셨다. 그리고 몇 번이나 미얀마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다고 말씀하시며 방심하지 않는 굳은 결의를 보이셨다.
내년 1월 말쯤 한국을 방문하신다는데 실제로 한국을 보면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다.
- 마지막으로 고문피해자와 가족, 국민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고문피해자와 가족 여러분이 힘내시길 바란다. 너무 늦어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서야 깨달음이 있어 이렇게 고문피해에 대해 열심히 나섰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고문에 대해서는 나 인재근이 확실히 해놓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고문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라는 것, 그리고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인재근 의원 프로필>
▲민주화 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전)
▲이화여대 민주동우회 회장 (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전)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의장
▲한반도재단 이사장(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이사(현)
▲사랑의 친구들 운영위원장(현)
▲도봉희망봉사단단장(현)
▲녹색환경운동 지도위원(현)
▲제19대 국회의원(서울 도봉구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