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관양동 땅 증여 논란

부부유별이니 부인 소유 땅은 ‘신경 꺼!’

[일요시사=사회팀] ‘5공 비리’로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모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 지난 1997년 그의 비자금 비리가 밝혀지면서 수천억대의 추징금을 부과 받았지만 그는 29만원 외에 남겨진 재산이 없다며 1600억원대의 추징금은 아직까지 내놓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최근 관양동의 시가 40억원에 달하는 땅을 자신의 큰딸 전효선씨에게 증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다시 한 번 추징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또 한 번 ‘5공 비리’의 상징인 비자금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엔 관양동 땅이다.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 소유 의혹이 불거졌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일대의 2만6876㎡, 약 8000여 평에 다다르는 임야가 28년 만에 이들의 큰딸 효선씨에게 증여된 사실이 <한겨레21>을 통해 낱낱이 공개됐다.

끝없는 비자금 논란   

2013년 10월까지 내야할 1600억원대의 추징금이 버젓이 남아있는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새로운 은닉재산이 만천하에 드러나 환수여론이 들끓을 것으로 예상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 전 대통령이 딸 효선씨에게 증여했다는 이 땅은 2012년 현재 기준으로 공시지가가 3.3㎡당 19만7350원이다. 그러나 시세는 관양택지개발 등에 맞물려 3.3㎡당 5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전체 땅값으로 따지면 40억원이 이르는 것이다. 1978년 1600만원에 구입했던 당시보다 250배가 훌쩍 뛴 셈이다.

인근 모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양동 일대 임야는 10만원도 채 안 되던 땅이었지만, 택지개발구역으로 선정된 이후부터는 평당 250만원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지역주민들이 후일 택지개발구역으로 선정되면 보상받을 목적으로 500~600평씩 사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때 일각에서는 관양동 임야가 평당 1200만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확인취재 결과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 전 전 대통령 비자금 공판기록에서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있을 때 아무 것도 못 해줘 미안하다”며 1992년 8월, 자신의 비자금 가운데 1억원짜리 장기신용채권 23억원 어치를 효선씨에게 내줬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 아들들 말고 큰딸인 효선씨에게 재산이 증여된 관양동 땅 사건은 장기신용채권 증여 이후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순자씨 남동생 이창석씨가 지난 1978년 2월17일 관양동 산127-2번지 임야를 매매 형식으로 취득한 뒤 수십 년간 보유해오다 2006년 12월26일 효선씨에게 증여했다. 1984년 창석씨는 관양동 땅에 건평 77.39㎡의 단독주택을 지었다. 이후 그는 2002년 1월 김모씨에게 매매했고, 몇 차례의 매매거래를 통해 소유자 변경을 해왔다. 2006년 창석씨는 해당 임야를 잠시 모 부동산신탁회사에 맡겼다 돌려받은 후 효선씨에게 증여했고, 올해 초인 2012년 1월12일 효선씨가 이 단독주택을 등기부 기준인 37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창석씨는 지난 1984년~86년 2년 동안 (주)동일을 운영해오다 공금 29억여원을 가로채고 7억여원을 탈세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관양동 땅은 5공 비리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이다. 1988년 11월, 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전 재산을 국민 앞에 공개했다. 그는 당시 “연희동 집 안채(총 500여 평)와 두 아들이 살고 있는 바깥채(총 170여 평), 서초동 땅 200평, 그 외 용평의 콘도 34평과 골프회원권 2건 등으로 총무처에 등록한 19여억원과 증식이자를 포함해 23여억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시가 40억원 땅 이순자 남동생 거쳐 큰딸에게
3.3㎡당 10만원도 안하던 땅이 250만원 훌쩍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은 1989년 2월16일, 전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났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김운환 통일민주당 의원은 이순자씨가 시가 30억원 상당의 관양동 일대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은 등기부등본을 증거로 제시하며 의혹을 확실시 했다.

평화민주당을 포함한 다수의 야당도 김 의원의 말에 힘을 실어 “이순자씨가 공직자 재산등록을 피하려 의도적으로 명의신탁을 추진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 의원의 이 같은 주장에 이순자씨는 전면 부인했다. 전 전 대통령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이양우 변호사는 당시 국회 기자실을 방문해 “1978년 2월에 이창석씨의 부친 이규동씨가 중개인을 통해 당시 시가 1600만원에 그 임야를 이창석씨에게 사줬다”며 “이후 이창석씨가 사업을 한다며 팔겠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이순자씨 이름으로 가등기해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등기부등본에는 이창석씨가 1978년 2월17일 관양동 땅을 매매 후 취득한 것으로만 표기돼있고, 이순자씨에 대한 가등기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21>은 관양동 땅이 5공 비리에 내포돼 있다는 또 다른 증거를 찾아냈다. 비리 청문회 당시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전 전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이 딸 이순자씨와 비슷한 시기에 관양동 일대 500번지 2526㎡, 약 700여 평의 임야를 사들였다가 1985년 자신의 사위인 김상구 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게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야당은 이순자씨가 1983년 1월1일부로 시행된 공직자재산등록법을 피해 관양동에 관련된 재산을 감추려고 명의신탁을 이용, 남동생 창석씨의 명의로 바꿨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렇다면 전 전 대통령 일가는 어떻게 법망을 피해 수많은 비자금을 빼돌렸던 것일까. 원인은 재테크에 능했던 장인 이규동씨와 그의 측근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 2기 동기로, 당시 2군사령부 관리부장으로 지내면서 부대 전반 운영을 책임지는 한편 후일에는 경리감까지 맡으며 부대의 돈과 행정을 책임지기도 했다.

이규동씨의 동생인 이규광씨는 유신 말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설정보대 책임자를 역임했다. 이들은 정보력이 밝아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전 전 대통령 일가는 친인척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급격한 신분상승을 이뤘다.

당연히 비자금 의혹에 관한 견제도 받지 않았다. 독재정권이 절대적이었던 당시 아무도 태클을 거는 이가 없으니 권력과 함께 재산도 급격히 늘어났다.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 이들은 비자금만 따로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는 재산을 은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제추징 실현되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부과된 추징금 2205억여원 가운데 1672억여원을 미납했다. 큰딸에게 증여한 관양동 땅은 전 전 대통령 명의의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법률상 곧바로 추징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명의신탁 사실이 드러나면 즉각 추징 대상으로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가 자신이 경영하던 ‘창원총업(현 삼원코리아)’ 명의로 1986~87년 매입했던 제주 서귀포 신시가지 인근 임야 3만2427㎡를 2001년 5월 허모씨에게 매각한 사실 외에 다른 비자금 의혹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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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