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임 한국은행 총재 신현송

CBDC·예금토큰으로 ‘3고’ 잡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용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해 나가겠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취임식에서 각오를 밝혔다. 그가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첫 후보자라는 오명은 벗은 셈. 신 총재는 취임 후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중동발 3고(고유가·고금리·고환율) 위험성이라는 시험대로 자리를 옮겨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까지도 달고 있던 이름표다.

신 총재는 40여년간 해외 경제학계와 국제기구 등을 거치며 쌓은 명성과 이력,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목됐다.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지녀야 할 전문성과 경제 정책 방향성에서는 대체로 긍정 평가가 나온다.

탁월한
국제 감각

이재명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 사유서에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 탁월한 국제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통해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적임자”라고 지명 이유를 적었다.

이규연 대통령 비서실 홍보소통수석은 신 총재가 “학문 깊이와 실무적 통찰력을 모두 갖춘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 세계적 권위자”라며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 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물가안정과 국민 경제 성장이라는 통화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신 총재는 2009년 이명박정부 시절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한 이력을 지녔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였으며 통화정책 전문가로 통했다. 국제경제보좌관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의 중간급으로 당시 청와대 직제개편 때 신설됐다.

신 총재를 두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 애덤 투즈(Adam Tooze)는 “BIS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 금융론(Macro 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라고 적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붕괴(Crashed)>에서다.

투즈는 신 총재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줬어야 한다고도 했다. 2022년은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그 상이 돌아갔던 때다. 투즈는 당시 블로그에 “진정으로 현대 국제금융 시스템의 역동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경제학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면” 그 상은 BIS 팀과 “가장 두드러지게는 신현송에게 돌아가야 했다”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국 경제를 현 시점에서 진단하고 중점 과제를 꼽았다. 요약하자면, 신 총재호 한은은 CBDC와 예금토큰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한강과 아고라 프로젝트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취임식에서 우리 경제가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충격으로 물가와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제유가가 상승해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이 동시에 증대됐고,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금융 불균형 누증 위험도 지속되고 있다”며 “녹록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내 경제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이 구조적 문제가 세계 경제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 질서는 지정학적 갈등과 AI 기술 혁명으로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AI 기술 변화도 언급했다. AI 기술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산업 지형을 변화시켰다”며 “경제 성장과 생산성, 노동시장 등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IMF와 BIS 거친 금융통
탁월한 사상가…“버냉키보다 낫다” 평도

이를 토대로 향후 4년간 한국은행이 추진할 중점 과제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금융 안정 강화 ▲지급결제 안정성 유지 ▲경제 구조 개혁 등 네 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정부 및 관계기관과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고, 지급결제 혁신을 이루겠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수단을 재점검하고 정부와는 정책 공조를, 시장과는 양방향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급격한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건전성 지표와 시장가격 지표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조기 경보 기능을 강화할 것 역시 다짐했다. 비은행 부문 정보 접근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의 부외 거래, 비전통 금융상품 등으로 분석 범위를 확장해 중앙은행이 금융 안정 역할을 강화할 방안을 관계기관과 논의해 나갈 것을 제언했다.

‘원화의 국제화’ 추진과 ‘미래 통화 제도’ 설계 방침에 따른 도구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 원화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

기존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 등으로 화제가 됐던 스테이블코인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인사청문회 때는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각각 용도에 따라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두 가지 모두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취임식에서는 달랐다. 같은 ‘테더(USDT)’라도 기반이 이더리움인지, 트론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므로 ‘화폐 단일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보조 수단 정도로 활용할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시중은행이 협력해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행하는 디지털 화폐 실거래 테스트(Pilot Test)다. 1단계는 2023년 10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진행했다. 디지털화폐 및 예금토큰을 제조해 발행, 유통, 환수를 거쳐 폐기되기까지 전 과정 작동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2월부턴 2단계가 가동됐다. 생체인증, 개인 간 송금 등 시스템 확충을 시작으로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 지원, 시중은행과 후속 실거래를 시행하는 데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상용화 기반 마련을 위한 외부 기관 종합 컨설팅도 진행한다.

아고라(Agora)는 BIS와 국제금융협회(IIF) 등이 추진하는 블록체인 기반 국가 간 송금 개선 프로젝트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 7개국 중앙은행과 40여개 각국 주요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한강과 아고라가 연계되면 원화 예금토큰을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높은 변동성
불균형 누증

한은 조직 운영도 기존과 달리할 것을 목표했다. 임직원 각각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역설했다. “한국은행의 위상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개개인도 함께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조사 연구와 정책, 현업과 관리 등 전 부문에 걸쳐 성장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합당한 처우가 뒷받침되도록 조직 문화와 내부 경영 개선에 꾸준히 힘쓰겠다”고 했다.

신 총재가 취임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이하 재경위)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두 번씩이나 채택하지 않았다. 그는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최초 후보자였다.

앞서 재경위는 지난 15일 마련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요구한 신 총재 자녀 자료가 제출되지 않자 보고서 채택을 미뤘다. 쟁점 중 하나는 영국 국적 장녀를 서울 강남 아파트에 내국인으로 불법 전입을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국회 재경위 소속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신 총재가 2023년 서울 강남구 논현2동 주민센터에 자필로 제출한 장녀 전입신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신 총재가 1999년 영국 국적을 취득해 외국인이 된 장녀를 자신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동현아파트에 전입한 것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장녀를 외국인으로 해 사는 곳을 등록해야 했지만, 옛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그를 내국인으로 신고했다. 천 의원은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 등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하는 행위를 금지한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법에 따르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당시 신 총재가 장녀 전입 사유로 ‘가족과 함께 거주’를 기재한 점도 문제가 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그가 “장녀는 5년 전 결혼해 해외에서 독립된 가정을 이룬 상황”이라고 밝힌 부분과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천 의원은 “국회 답변서에는 ‘독립 가정’이라고 했으면서 전입신고서에는 ‘함께 거주’라고 했으니, 둘 중 하나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한국 국적자 혜택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의혹 해소를 위해 건강보험 및 출입국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991년생인 신 총재 장녀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 9월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했다. 이번 허위 전입 신고는 장녀가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행정 절차를 잘 알지 못해 국적 상실 신고가 빠졌다고 해명했다. 그의 배우자와 장남이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이미 국적 상실 신고를 완료한 것과 배치된다.

외국인 부인
외국인 자녀

배우자와 장남 국적 문제도 불거졌다. 신 총재 배우자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자다. 1996년 영국에서 태어난 장남은 영국 국적이다. 그는 만 18세 이전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학업 중이다.

신 총재는 “배우자는 한국에 정착해 거주할 예정으로, 향후 국적 회복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며 “자녀들의 국적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보유 자산 중 외화자산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사기도 했다. 지난 13일 신 총재는 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외화표시 금융자산을 상당 부분 처분했고, 외화자산 비중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총재는 본인과 배우자, 장남이 보유한 재산 총 82억4102만원 중 45억7472만원(55.5%)이 해외 금융 자산과 부동산이라고 신고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원화 환산 평가액이 불어날 수 있는 만큼, 외환 당국 수장으로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 총재는 “이해충돌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모든 정책 판단의 기준은 국민 전체의 이익일 것”이라고 했다. 또 “국내 주식은 매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 총재는 런던 증시에 상장된 한국 주식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Franklin FTSE Korea UCITS ETF’를 지명 직전 매수했다는 의혹에는 “총재 지명 시기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 증시가 여타국 대비 강세를 보임에 따라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 매입해 온 것”이라 말했다.

본인 명의로 보유한 15억900만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언주로 동현아파트(84.92㎡)와 부부 공동명의로 가지고 있는 18억원 상당의 종로구 신문로 디팰리스 오피스텔(198.108㎡), 배우자 명의 2억8494만원 상당의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아파트 등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신 총재는 다주택자 논란이 일자 “공직 후보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3채 중 2채를 매물로 내놨다”고 밝혔다.

청문회 당일 보고서 미채택 첫 사례
여권법 위반·외환 자산으로 ‘시끌’

재경위는 최초 인사청문회 개시일인 지난 15일에서 5일이 지난 20일 신 총재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재경위원장인 국민의힘 임의자 의원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해 한국은행 총재라는 직위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많은 위원님께서 공감하시는 부분”이라면서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국적을 상실한 자녀가 대한민국 여권을 이용한 출국 기록이 확인됐고, 대한민국 여권을 재발급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기재토록 하겠다. 그것은 팩트(사실)이기 때문”이라며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천 의원 의견은 인사청문 보고서에 소수 의견으로 기재됐다.

신 총재는 1959년 대구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대건설 부사장과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영국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자 1968년부터 3년여가량 런던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다시 귀국해 학업을 이은 적도 있으나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 1974년부터 4년간 이매뉴얼 스쿨에서 공부했다.

1977년 옥스퍼드대 모들린 컬리지에 PPE전공으로 합격했다. 당시 모들린 컬리지 신입생 2인에게만 수여되는 더미십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1978년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했는데, 한국과 영국 두 군데 대학 ‘이중 학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 총재는 “입대를 앞두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적응 기간을 갖고자 고려대로 편입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총재는 고려대를 1년 다니고 다음 해인 1979년 8월부터 서울 용산에 자리한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영문 타자병으로 복무했다. 입대 직후 고려대에 휴학계를 제출했으나 기한 내 복학하지 않아 1984년 제적 처리됐다. 그는 1982년 3월 전역해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학과에 정식 입학했다.

1985년 특별 최우등(Congratulatory First)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당해 모들린 컬리지 졸업생 300여명 중 3명에게 수여되는 상이었다. 이후 1988년 옥스퍼드 대학교 너필드 컬리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사우샘프턴 대학교, 옥스퍼드대 너필드 컬리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영란은행 자문, 국제결제은행 자문교수도 담당했다. IMF 상주 연구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2006년 IMF 연차 총회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기도 했다.

보유 자산
얼마길래…

프린스턴대 휴즈-로저스 석좌교수, 뉴욕·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자문교수 겸 금융자문위원도 맡았다. 2010년 안식년 기간에 청와대에서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며 G20 의제 설정에 도움을 줬다. 당시 원화 변동성 제어를 목표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마련했다.

2014년 5월부터는 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 겸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며 10년 이상 연구를 총괄했다. 비유럽·미국 출신으로는 최초였다. 2025년 1월부터 한은 총재로 지명된 지난 3월까지는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으로 근무했다.

<younm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강성 정청래’ 험지 공략법

‘강성 정청래’ 험지 공략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한 달에도 몇 번씩 험지를 찾아 선거 유세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런 그는 진보 진영에서조차 ‘강성 중 강성’으로 꼽힌다. 차가운 보수의 심장을 녹일 정 대표의 험지 공략법은 무엇일까? 6·3 지방선거가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선거가 100일도 더 남은 시점부터 선거 전략을 고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는 지난 3월 시·도당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 대표가 된 순간부터 6월3일 출구조사 발표 날을 상상했다”며 “실무자들에게 새벽 5시 일정을 좀 잡으라고 했다. 새벽 시장에 가겠다. 그리고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다니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후보들 앞으로 이어 “‘대표부터 우리 후보, 당원들, 선거운동원들까지 지극 정성을 다하면 결국 하늘도 움직이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재명정부를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험지인 지역에는 각각 ▲전재수 부산시장 ▲김부겸 대구시장 ▲오중기 경북도지사 ▲김상욱 울산시장 등이 후보로 나선다. 정 대표는 이곳에 도전한 후보를 소개할 때마다 “승리를 위한 필승카드”라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지난 18일 16개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 작업을 마무리한 민주당은 재보궐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먼저 울산 남부갑에 전태진 변호사를 공천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황희 공관위원장은 “울산 남구갑은 이번 재보궐 선거구 중 민주당 험지에 해당하는 곳”이라면서 “인재 영입 1호 인물을 울산 남구갑에 배치하는 전략공관위 결정은, 가장 험지에 가장 참신하고 뛰어난 후보를 배치한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낮은 자세’와 ‘주민 스킨십’을 투트랙으로 험지 표심 사냥에 나섰다. 정 대표는 험지에 출마한 후보의 손을 잡고 재래시장 등 바닥 민심을 훑으며 주민과의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8일 정 대표는 대구를 찾았다. 정 대표는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치켜세우며 “대구 선거에서 이길 유일한 필승 카드라고 생각한다. 지방선거 때마다 대구·경북 그러면 그늘진 생각부터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김 후보께서 대구에 밝은 희망의 빛을 쏘아 올려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8일에는 울산을 찾아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와 울산 남부갑에 출마하는 전태진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날 정 대표는 남구 신정시장에서 시민들과 만난 뒤 “울산은 민주당이 어려운 지역이라고 많이 말씀한다”면서도 “오늘 와서 보니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 상인이 귓속말로 ‘제가 지금은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마음은 파랗다’고 전했다”며 “울산에도 조심스럽게 파란 바람이 일렁이고 있다. 최선으로 울산 시민을 섬기겠다”고 강조했다. 후보 손잡고 적진으로 정면 돌파 “막상 오니 파란 물결” 자신감도 충남 보령에서는 “이곳 보령을 누가 민주당에 어려운 지역이라고 말하느냐”며 “오늘 와서 보니까 단 한 명도 웃지 않은 분이 없었다. 다들 웃어주고 엄지척 해주고 우리 민주당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해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어깨에 무거운 역사적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22일에는 약 한 달 만에 경남을 다시 찾았다. 이날 정 대표는 욕지도 앞바다에서 선상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육지 중심적인 사고에서 잠시 벗어나 섬마을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듣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최고위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와 허성무 경남도당위원장 등이 함께했다. 정 대표는 최근 약 한 달 사이에 경남만 세 차례를 방문했다. 지난달 18일 하동·진주를 찾은 데 이어 23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양산으로 향했다. 정 대표는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남 선거를 분석해 봤을 때 대체로 민주당이 약간 우세한 정도인 것 같다”며 “그래서 부산과 울산, 경남 중에서 민주당이 가장 집중해야 할 지역으로 경남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남은 무당층이 다른 지역보다 좀 많은 것으로 제가 파악하고 있다”며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서부터 파란 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오늘 섬에 왔다. 경남을 파란 바람으로 물들일 때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험지에서 ‘이곳은 예전처럼 보수 지지세가 강하지 않다’는 여론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심이 과거와 다르게 흐른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풀이된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정 대표가 험지를 방문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역시 출마 선언 당시 ‘민주당’ ‘이재명’ ‘내란’ 등 보수 지지자에게 반감을 살 만한 내용은 제외하고, “경제 도시 대구를 만들 사람”이라는 실용주의 가치를 내세웠다.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가 보수의 심장인 TK를 찾는다면 오히려 대구 표심이 돌아설 것이란 관측도 제시됐다. 그러나 정 대표가 광폭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이미 험지에서조차 표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유 있는 자신감 한 민주당 관계자는 “강성 이미지에 묻혀서 그렇지 정 대표는 이기고 지는 싸움에 있어서 굉장히 예리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갖췄다.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 단어를 써야 민심에 먹히는지 전략을 굉장히 잘 세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담이지만 일머리가 좋고 힘쓰는 일도 무척 잘한다고 한다”며 “시장에서 딸기를 상자째 나르고 농촌에서 밭을 갈아엎는 노동 현장에 특화된 인물”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여권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보수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여권 프리미엄이 핸디캡이 될 것으로 우려했지만 코스피 상승과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과 등이 맞물려 지금의 여론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텃밭을 비운 사이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경쟁하면 험지도 겨뤄볼 만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 역시 <일요시사>를 통해 “예산 배정과 정책 입법 등은 정부에서 하지만 국회의 역할도 크다. 지금 이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있고 보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 대통의 실용주의에 공감하는 분위기”라며 “그 기조와 맞물려 집권 여당 대표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대표는 “국민의힘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인 만큼 민주당 지도부의 행동이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다”며 보수 결집력이 느슨해진 점 역시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가져왔다고 봤다. 지난 20일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역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3~17일 전국 18세 이상 25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65.5%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는 30.0%, ‘잘 모름’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5%다. 리얼미터는 “중동 위기 속 원유 대량 확보 및 코스피 6200선 회복 등 경제·에너지 안보 성과가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인권 발언, 현직 대통령 최초 세월호 12주기 참석 등으로 중도층과 청년층의 지지를 확대했다”고 분석했다. 압승 어게인? 민주당도 정당 지지율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6~17일 전국 18세 이상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민주당은 50.5%, 국민의힘은 31.4%를 각각 기록해 19.1%p 격차를 벌렸다. 두 조사는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응답률은 5.4%다. 정당 지지도 조사 응답률은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3.9%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은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해당 지방선거는 2017년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년여 만에 실시된 첫 전국 단위 선거로, 민주당은 17곳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4곳에서 승리해 중앙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쥐게 됐다. 당시 민주당은 처음으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3곳에 모두 승기를 꽂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대구와 경북 단 2곳의 광역단체 수성에 그쳐 ‘보수 침몰’ 직전까지 내몰렸다. 최대 승부처였던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서도 ▲부산 오거돈(55.2%) ▲울산 송철호(52.9%) ▲경남 김경수(52.8%) 후보 등이 과반을 넘겨 당선됐다. 민주 계열 정당이 부·울·경 광역단체에서 승리한 사례는 처음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성공한 동진 전략’으로 평가했다. 국회의원 재보선도 사실상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민주당은 ▲서울 송파을 ▲부산 해운대을 ▲울산 북구 ▲경남 김해을에서 당선을 확정 지었다. 기초단체장 선거 역시 총 226곳 가운데 민주당이 151곳, 한국당이 53곳에 승기를 꽂았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선거도 서울 서초구를 제외하고는 24개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다. 다시 한번 기대하는 ‘2018 지선 압승’ 지지율 업고 싹쓸이…이번에도 통할까? 당시 민주당의 당대표는 추미애 의원이었다. 선거 기간 동안 추미애 대표는 특유의 ‘추다르크’ 성격을 앞세워 험지를 찾았고, 투표 전날에는 마지막 유세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경부선 라인을 따라 움직였다. 추 대표는 “영남지역은 저희가 조직을 갖추지 못했는데, 한 분 한 분 눈빛을 지켜보니 과거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8년 전 추 대표가 문정부 국정 기조에 맞춰 ‘한반도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면, 지금 정 대표는 ‘강력한 개혁’과 ‘일하는 정부’를 강조하고 있다. 선거 유세 역시 추 대표는 연설로 표심을 공략한 반면 정 대표는 선상 최고위 회의 등 입체적인 퍼포먼스에 공을 들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2018년 지방선거 역시 ‘보수 막판 결집’이 최대 분수령이었다.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목소리를 낮춘 ‘샤이 보수’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끝내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결국 샤이 보수의 반란은 없었다는 게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선거 마지막 날까지 ‘문정부 심판론’을 밀어 붙였지만 민심은 집권여당 쪽으로 기울었다. 과거 사례를 이정표 삼기에 앞서 민주당이 마지막까지 자세를 낮추고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 대표 역시 “대통령 지지율도 고공행진이고 민주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다 보니 일부 후보나 당에서 마치 선거가 쉬운 것처럼, 다 이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며 “쉬운 선거는 없다. 모든 선거는 다 어렵다”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경계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지방선거가 2018년 지방선거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정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방심했다 ‘훅’갈라 이 관계자는 “지금 각종 여론조사 수치는 샤이 보수가 포함되지 않은 결과”라며 “최근 현장 사진을 보면 험지를 찾은 민주당과 그들을 반기는 시민이 한 컷에 담기는데 이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유세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물론 샤이보수 성향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가 변수”라며 “보수 결집력이 민주당 험지 선거를 판가름할 하나의 척도”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 나갔다 돌아오니 ‘싸늘’ 아직도 시달리는 대표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지도부가 뚜벅뚜벅 험지로 향하는 사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여전히 방미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장 대표는 “지방선거를 위해 방미했다”고 밝혔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귀국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당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은 당무가 지연된 점을 언급하며 “열흘이나 집을 비운 가장이 언제 와서 정리하려나 실소만 터져나온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서조차 날 선 목소리가 나오자 장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맹탕 방미’ 논란을 반박했다. 장 대표는 “미국 정부와 의회, 조야를 아울러 많은 분을 만나 우리 입장을 충실히 전달했다”며 “미국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 실질적인 핫라인을 구축해 한미 동맹을 지탱할 신뢰 토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접촉 인사를 묻는 질문에는 “외교 관례상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당 지지율 하락에 따른 사퇴 압박에는 “저는 당원들이 선택한 대표”라며 “필요한 거취는 제가 결정할 것”이라며 사퇴에 선을 그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