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청부살인’ 비정한 남편 풀스토리

완전범죄 노리다…들통난 ‘마누라 죽이기’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거듭된 사업실패로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려 청부살인을 의뢰한 매정한 남편이 경찰에 구속됐다. 남편은 비교적 사업수완이 좋았던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 당하자 양육권과 재산 등이 빼앗길까 두려워 심부름센터에 아내 살인을 청부했다. 무능력한 남편과 부자 아내.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0대 남성 정모씨는 지난 5월2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심부름센터 사장 원모씨를 만나 현금 3000만원을 건네며 아내의 청부살인을 요청했다. 원씨는 정씨가 제안한 착수금 3000만원과 성공보수인 6000만원이 청부살인 대가로 한참 부족했던지 시간을 질질 끌며 총 9차례에 걸쳐 1억9000만원까지 심부름값을 올렸다. 원씨는 “범행을 준비하는데 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갈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정씨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심부름센터 통해
살인 계획 세워

약속의 날 9월14일이 다가왔다. 원씨는 정씨를 이용해 정씨의 부인 박씨가 살해 장소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씨는 아내를 불러 “친한 동생이 카센터를 운영하는데 수리를 싸게 해주니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꾀었다.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꿈에도 몰랐던 부인 박씨는 남편의 말만 믿고 자신이 운영하는 성동구 성수동 소재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오후 4시쯤 짙은 회색 빛깔 인피니티 차량이 박씨의 업체로 들어왔다. 박씨는 순전히 카센터 직원으로만 생각했던 원씨를 자신의 업체로 들인 뒤 원씨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원씨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박씨를 태운 후 인근 오피스텔로 향했다. 원씨는 CCTV를 피하기 위해 오피스텔 지하 3층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량을 세운 후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겨 계획대로 박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그는 박씨의 얼굴을 검정 비닐봉지로 덮어 테이프로 감았다. 원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완전범죄를 위해 증거를 없애야 했다. 원씨는 살해 당일 8시경 연고가 있던 인적이 드문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야산 계곡 근처를 삽으로 구덩이를 판 후 박씨의 사체를 유기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

거듭된 이혼요구에 양육권까지 뺏길까 우려
월수익 2억 아내 사업체 가로채려 살인 의뢰


남편 정씨는 원씨로부터 아내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후 완벽한 알리바이 설계에 치중했다. 정씨는 청부살인이 발생한 다음 날인 9월15일 오전 7시쯤 경찰서에 직접 걸음 해 아내를 단순가출로 신고했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가출신고를 마친 정씨는 박씨가 단순 실종사건에 휘말려 아내에 대한 청부살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사건으로 남길 원했다. 정씨는 원씨와 사건 당일 대포폰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아내 살인과 향후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세세하게 의논했다.

이후 정씨는 원씨에게 박씨의 휴대폰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고, 경찰 추적에 의심될 만한 사항들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이를테면 원씨는 박씨의 휴대폰 위치를 수차례 옮겨가며 전원을 껐다, 켰다 반복하면서 아내 박씨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정씨의 알리바이는 박씨 측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정씨는 원씨를 시켜 피해자 박씨의 어머니와 친구, 실종신고를 받은 담당 경찰관의 휴대폰에 “잘 있어요, 전혀 그런 일 없어요” “개인적인 문제로 얘기 중이예요” “나중에 들어가서 말씀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등의 문자를 보내도록 했다.

문자 알리바이에 성공한 원씨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장소들을 사전 조사해 경기 수원 및 강남 일대에서 여성들이 주로 방문·소비하는 네일샵, 숙녀복 판매점, 선글라스 가게, 커피숍 등을 전전하며 박씨의 법인카드 및 개인 신용카드로 약 270여만원을 결제했다. 이는 박씨의 가출에 힘을 실을 중점적인 알리바이였고 경찰 측 수사의 혼선을 유도한 사전에 계획된 정씨와의 모략이었다.

알리바이 만들어
수사 혼선 유도

그렇다면 왜 정씨는 심부름센터에 2억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아내가 죽기를 원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양육권에 있었다.

지난 2004년 박씨와 결혼한 정씨는 근로기준법위반을 포함한 범죄 경력 13범의 전과자였다. 그럼에도 정씨는 박씨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했고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박씨와 슬하의 자식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정씨 가족은 말 못할 고민에 빠지게 됐다. 정씨의 사업이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기 때문. 정씨는 결혼 뒤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사업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렌트카 사업이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그는 지난 2008년 사업을 정리할 요량으로 아내 박씨에게 업체를 위임했다. 이후 같은 해 정씨는 서울 강남 일대에 유흥주점 및 노래방 등 3개 업체를 개업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씨는 또다시 사업난에 허덕이는 고배를 맛보았다. 반면 남편으로부터 렌터카 사업을 물려받은 아내 박씨는 의외의 사업수완과 출중한 미모를 한껏 내세워 다 죽어가던 렌터카 업체를 보란 듯이 살려 놨다. 최근엔 월수입 2억에 다다르는 매출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아내의 사업이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자 위기감과 자괴감에 빠진 정씨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남편의 무능함과 의욕상실에 진저리가 난 박씨는 정씨를 향해 잔소리를 늘어놨고 둘의 싸움은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됐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싸움은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박씨는 남편 정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줄곧 남편에게 “위자료 6억원을 줄테니 자녀 양육권을 달라”며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정씨는 아직 어린 자신의 자식들을 빼앗기는 게 두려웠다. 연이은 사업부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아내가 자신의 무능함에 마음이 떠났다고 생각해 사업을 되살리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사업을 되살리면 아내가 이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 정씨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아내와의 이혼에 구두 합의한 후 위자료 총 6억원 중 4억원을 미리 당겨 받았다.

이후 주점사업에 올인 했다. 그는 거액을 쏟은 주점사업이 전보다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은 여전히 부진했고 더 이상 회복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남은 위자료 2억원을 더 받으면 그는 자식은 물론 재산까지 모두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아내의 이혼요구도 이전보다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결국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다. 정씨는 자신이 위임했던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고 아이들 양육권까지 자신의 몫으로 돌려놓으려 아내 살해를 사주했다. 정씨는 자신의 주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심부름업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한 심부름업체 사장 원씨와 접촉했다.

원씨는 범죄경력 15범의 전과자로 타인의 불륜관계 뒷조사와 인적사항 등을 주로 진행하는 흥신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정씨와 원씨의 만남은 훗날 파국을 몰고 올 위험한 만남이었다.       

지속된 이혼요구에
위기감 느껴 범행

박씨에 대한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신고 당일 오전 7시경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위치추적 결과 박씨는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카드를 결제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러 차례 박씨 측에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매번 부재중이었고, 박씨는 “사정이 있어 잠시 나와 있다”는 문자만 보낼 뿐 묵묵부답이었다.

박씨의 소재파악이 힘들었던 당시 경찰은 아이를 돌보고 있던 박씨의 모친을 만나 가출경위에 대해 물었다. 박씨 모친은 “내 딸이 가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제발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경찰은 박씨 주변인 등을 찾아다니며 수사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박씨 측근은 “박씨가 남편에게 1년 여 전부터 계속 이혼을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실종당일 박씨의 행적을 낱낱이 조사했다. 그 결과 실종 전 날인 9월14일 2시경 사무실 인근 차량전시장 개업식에 참가한 후 혼자 유유히 떠나는 박씨가 포착된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의 이후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의 휴대전화 사용내역과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한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알리바이 탓에 하마터면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경찰의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차량서 살해하고 야산에 암매장
가출신고·부인 카드 쓰며 위장


9월23일과 24일 양일간 약 7개 업소에서 박씨 소유의 법인카드 및 개인카드에서 270여만원이 결제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현장에서 CCTV를 분석한 결과 한 젊은 남성이 동일하게 나온 영상을 증거자료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10월14일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한 스파의 종업원으로부터 “우리 업소 회원과 매우 흡사하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한 뒤 원씨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원씨가 심부름업체인 S기획의 대표임을 확인한 경찰은 원씨의 전 여자친구와 접촉했다. 그녀는 원씨가 최근 돈을 펑펑 쓰고 다닌 점과 “잘못되면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얘기를 건넨 점, 결별선언 이후 카카오톡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애를 해온 점 등을 진술했다. 경찰은 진술 확보를 마친 후 당일 오후 8시40분께 경기도 수원시에서 원씨를 긴급체포했다. 원씨는 체포당한 후 “살인청부를 받았지만 살인을 하지 않고 돈만 빼앗았다. 피해자 박씨는 남양주시 화도읍 부근에 숨어있으라며 보내줬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18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양주에서 피해자 박씨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원씨의 거짓은 탄로 나고 말았다. 모든 증거가 확실시 되자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원씨와 정씨는 결국 모든 사실을 자백했고 경찰은 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원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그릇된 과욕
재앙 불러와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 남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남편 정씨는 일반적인 가출 및 실종사건과 달리 경찰에 크게 협조적이지 않았고, 부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경제난과 이혼요구에 시달렸을 정씨를 계속 주시한 결과 수상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점을 미뤄 탐문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전했다.

위기감에 휩싸여 아내살해를 청부하고 완전범죄를 꾸미려 실종신고까지 했던 매정한 남편 정씨. 아내만 죽으면 모든 게 자기 몫이 될 것이라는 그의 그릇된 과욕이 결국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재앙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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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