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인생캐 만난 ‘왕사남’ 박지훈

눈빛이 만든 ‘단종 오빠’ 신드롬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아역 배우로 출발해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유행어로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년은 이제 스크린을 책임지는 배우가 됐다. <약한영웅>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데 이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흥행 배우가 됐다.

박지훈은 1999년생으로, 2006년 MBC 드라마 <주몽>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8살이었다. 극 중 소금 장수의 아들 역으로 출연하며 처음 촬영 현장에 섰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박지훈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TV에서 어떤 배우가 화를 내는 장면을 보고 ‘나 저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순한 동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여의도에 있는 연기 학원에 등록했고,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주몽 데뷔
당시 8살

<주몽> 출연 이후 박지훈은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어린 나이에 드라마 촬영장을 경험했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때 작품에 출연하면서 카메라와 많이 친해졌다”고 밝혔다.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박지훈은 중학생 시절 팝핀 댄스를 접하면서 또 다른 꿈을 품게 됐다. 그는 “팝핀 영상을 보고 ‘난 이거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춤 연습에 몰두했다. 박지훈은 “수업 시간에도 팝핀 동작을 연습했다”고 했으며,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목표로 삼은 뒤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쏟았다.

그는 “오후 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며 당시를 두고 “독기가 가득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물론 연습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그 나이에는 흔하지 않은데 무릎에 물이 찼다”며, 병원에서 물을 빼고도 다시 지하 연습실로 돌아가 연습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했으나, 101명의 연습생이 무대에 선 첫 방송에서 그는 “카메라가 저를 안 잡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그는 무대 엔딩에서 윙크를 했다. 박지훈은 “엔딩을 하는데 카메라 렌즈가 저한테 오는 게 느껴졌고, 빨간 불이 보였다. 그때 ‘됐다’ 싶었다”고 말했다. 해당 장면은 방송 직후 화제가 됐고, 그는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멘트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최종 순위 발표에서 박지훈은 2위를 기록했고,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의 멤버로 선발됐다. 2017년 정식 데뷔 이후 그룹은 큰 인기를 얻었고, 그는 팀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박지훈은 당시를 돌아보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지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Wanna One 활동이 2019년 1월 공식 종료된 이후, 박지훈은 개인 활동을 이어가면서 가수 활동과 함께 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박지훈이 배우 활동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언급하는 작품은 2022년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성적 상위 1% 모범생 연시은이 학교폭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박지훈은 극 중 연시은 역을 맡았다. 공개 당시 <약한영웅 Class 1>은 OTT 화제성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12월12일 발표된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가장 높은 화제성을 보였다. 또 그해 웨이브 콘텐츠 가운데 높은 유료 가입자 수를 기록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아역으로 시작해 명불허전 주연 배우로 우뚝
<약한 영웅>이어 <왕사남> 압도적 연기력

이후 <약한영웅 Class 1>은 넷플릭스를 통해 재공개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투둠 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총 67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2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600만 시청 수를 기록한 <폭싹 속았수다>를 제쳤다.

박지훈은 이전 작품들에서 밝은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왔다. 드라마 <연애혁명>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연시은은 과묵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박지훈이 연기한 연시은은 극 중 말수가 적고, 눈빛과 표정의 변화로 감정을 표현한다.

체격 조건에서는 우위를 점하지 못하지만,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다. 작품은 폭력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중심에 둔다. 극 중 연시은은 감정을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눈빛과 호흡의 변화로 상황을 표현한다.

초반에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친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이어간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연시은의 상황은 달라진다. 친구를 잃는 사건 이후 감정의 변화가 이어지고, 인물의 태도 역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약한영웅 Class 1>은 공개 당시 4주 연속 OTT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이후 플랫폼을 넷플릭스로 옮겨 다시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 집계 기준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시리즈 2위에 오르며 해외에서도 긍정 반응이 이어졌다. 여기에 이어 시즌2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은 “이 역할은 박지훈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 “눈빛만으로도 인물을 표현했다”며 극찬했다.

박지훈은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2’에 출연해 <약한영웅> 촬영을 계기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봤다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 속 학창 시절 모습과 실제 나는 너무 달랐다”며 “사실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산 출신이라 사투리가 굉장히 심했고 말투도 억셌다. 체격도 통통한 편이었다”며 “TV에 나온다고 하면 ‘뚱뚱한데 쟤랑 친구하면 말투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 말투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피하나 싶었다”고 했다.

극 중 연시은이 또래 사이에서 고립된 인물로 설정된 만큼, 이 같은 경험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지훈은 “중학교 이후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아이돌 찍고
배우로 활약

박지훈은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연기 활동을 이어오던 중 인생작을 만나게 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이홍위 역을 맡으면서다. 작품은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유배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의 시간을 따라간다.

단종은 조선 6대 왕으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된 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영화는 권력투쟁의 중심이 아닌, 유배지에서의 시간을 조명한다. 극의 중심에는 쇠약해진 단종과 그를 보살피는 엄흥도의 관계가 놓인다. 박지훈은 식음을 전폐하고 무기력에 빠진 어린 왕을 연기했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단종이 겪었을 정서적 고립과 인간적 두려움, 그리고 유배지라는 공간이 주는 물리적 단절을 따라간다. 정치적 패배의 상징이 아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존재로서의 단종을 화면에 올리는 작업이었다.

박지훈은 이런 방향성에 대해 “비극을 강조하기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 깊었다. 감히 단종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운의 왕 단종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이 많았다.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단종은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큰 인물인 만큼,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는 것이다.

단종은 기록 속에 남은 인물이나 기록은 감정까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박지훈은 “기록에 없는 부분을 상상해야 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폐위됐으며,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남아 있지만, 그 사이의 정서적 공백은 배우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왕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를 계속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고민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었다. 그는 “유해진 선배가 주는 에너지를 잘 받아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고 말했다.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은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엄흥도는 단종에게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이자, 인간적인 체온을 전달하는 존재다.

박지훈은 “단종이 엄흥도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경계심이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조금씩 경계가 풀리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시선을 잘 맞추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개를 드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회상했다.

연기 천재
약한 영웅

장항준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캐스팅 과정을 언급했다. 장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내고 네 번을 만날 때까지 확답을 주지 않아 애를 태웠다”고 했다. 박지훈 역시 감독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감독님이 ‘단종은 너여야만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을 갖고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그는 감독과의 대화에서 단종을 단순히 ‘비운의 왕’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독님이 단종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방향성에 동의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할 수 있었다.

단종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구체적인 준비로 이어졌다. 박지훈은 “나약하지만은 않은 단종을 그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유배지에서 식음을 전폐한 모습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왕으로서의 기개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목소리에 디테일을 잡았다. 단전에서 끌어 올리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힘없이 축 처진 인물이 아니라, 약해졌지만 완전히 꺾이지는 않은 존재로 그리고자 했다.

또 울음으로 설명하지 않으려고 하는 등 감정 표현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신 호흡의 길이, 시선의 방향, 어깨의 기울기로 인물의 상태를 드러내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보다 침묵이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이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지훈은 “유배 과정에서 피폐해지는 단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체중 감량을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운동으로 건강하게 살을 빼는 느낌이 아니라, 식음을 전폐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두 달 반 동안 사과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며 약 15kg을 감량했다.

박지훈은 뼈밖에 없다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 급격한 감량은 화면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목선이 얇아지면서 인물의 쇠약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단종이 점점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급격한 감량은 몸 상태에 변화를 가져왔다.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다 보니 음식을 먹으면 토할 정도로 몸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준비 기간에는 방 안에 틀어박혀 대본과 역사 자료를 계속 봤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지냈다. 그는 “준비하던 기간에도 너무 예민해져 있었다. 방에 틀어박혀 대본만 보고 역사 공부만 했다”고도 회상했다.

장항준 러브콜 3번 고사 끝 출연
완벽한 단종 역 위해 15㎏ 감량

극 중 단종의 상태를 생활 리듬으로 체화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촬영 기간 동안 일상에서도 말수를 줄였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대신, 가라앉힌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도 체력적 부담은 이어졌다. 그는 “극 중 밥을 먹는 장면을 찍을 때 속이 울렁거렸다. 음식이 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한명회에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먹은 게 없는 상태였다. 그날 촬영을 하다 핑 돌았다. 몸이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다슬기 국을 먹는 장면에서는 “염분이 확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이 장면은 극 중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된다. 단종이 처음으로 음식에 반응하는 순간이다. 박지훈은 “그 장면은 단순히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감각이 돌아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유해진과의 작업 과정은 촬영이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소 선배에게 계획적으로 다가가거나 억지로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예뻐해 주신 것 같다”는 박지훈은 “강가에서 자주 산책했다. 촬영장으로 함께 걸어 올라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이 관계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정도 깊어져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감사 인사했다.

유해진의 연기에 대해서는 “감히 제가 연기가 어땠다고 말 못한다. 선배가 주는 에너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끌리는 이유가 없어서 끌리는 것 같다. 어떨 때는 형 같고, 어떨 때는 아버지 같고, 어떨 때는 선배 같다”고 전했다.

장 감독에 대해서도 “배우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이 열려 있다. 납득할 수 있는 디렉션을 주신다”고 말했다.

영화는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을 모았다. 개봉 1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20일째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500만 관객을 넘긴 첫 작품으로도 언급됐다. 흥행 속도 역시 주목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눈빛이 인상 깊다” “박지훈이 아닌 단종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흥행의 이면에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 그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시사회 다음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치매였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물어보고 싶다. 꿈에라도 나오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번째
전성기

<왕과 사는 남자>는 박지훈에게 첫 상업영화이자 흥행작이 됐다. 그는 “유해진, 전미도, 유지태 등 선배들과 장항준 감독님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배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현재 박지훈은 차기작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 촬영에 돌입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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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