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문 닫는 스키장 속사정

사람 없는 텅 빈 슬로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겨울의 대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키장이 사라지고 있다. 성수기에도 열리지 않은 슬로프, 운영이 중단된 리프트, 그리고 방치된 산자락. 스키장은 여전히 겨울을 맞이하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풍경은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겨울 성수기를 맞은 스키장 슬로프가 닫혀있다. 상급자 코스는 아직 눈이 충분히 쌓이지 않아 운영을 시작하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 전후로 이용이 가능했던 코스지만, 이번엔 해를 넘겨서야 개장이 검토됐다.

성수기인데…
텅텅 비었다

강원 춘천의 한 스키장은 본격적인 스키 시즌임에도 슬로프 일부를 열지 못한 채 운영하고 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는 날이 잦아 인공 눈을 깔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스키장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슬로프 운영 면수를 줄이거나, 개장 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용객의 체감도 크게 달라졌다.

온라인상에는 “성수기인데도 사람이 없다” “예전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한 이용객은 “스키장이 한산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정말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스키장은 눈과 추운 날씨가 있어야 운영되는 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기온 상승과 강설 변화로, 스키장 운영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스키 산업은 이미 몇 년간 진통을 겪어왔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전국 스키장은 한때 17곳이 운영됐으나, 폐업과 휴업, 운영 중단을 거치며 현재는 13곳만 남아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 여러 스키장이 문을 닫았고, 특히 최근 3년 동안 폐업 사례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키장 이용객 수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스키 인구는 2011년 전후 680만명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이용객이 140만명대까지 급감했다. 팬데믹 이후 일부 회복이 이뤄졌지만, 최근 시즌 이용객 수는 430만~440만명 수준에 머물러 전성기 대비 60%대에 그치고 있다.

스키장이 폐업하는 사례는 수도권에서 먼저 나타났다. 경기도 용인의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은 지난 2022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남양주의 스타힐리조트 스키장은 2021년, 포천의 베어스타운 스키장은 2022년 이후 스키장 운영을 중단했다. 한때 수도권 대표 스키장으로 불리던 곳들이다.

저출산에 전성기 대비 이용객 60%
눈 부족·비용 부담에 경영난 가중

수도권 스키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강원 지역 스키장으로 수요가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스키장을 찾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이러한 이동이 뚜렷한 반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스키장 운영의 핵심 지표 중 하나는 영업일 수다. 과거 국내 스키장은 한 시즌에 120일에서 길게는 130일까지 운영되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평균 운영일 수는 80일에서 100일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시즌에는 80~90일에 그친 사례도 확인된다.


개장 시점 역시 점차 늦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이르면 10월 말, 늦어도 11월 중에는 개장하던 스키장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12월 이후에야 문을 여는 경우가 늘었다.

이는 기온 상승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간 강원 주요 산지의 평균기온은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오르면서 자연설이 줄어들었고, 인공 제설에 필요한 영하권 기온이 확보되는 시간도 짧아졌다.

전북의 한 스키장은 이 같은 여건 변화를 이유로 슬로프 운영 면수를 줄였다. 과거 20개가 넘던 슬로프를 단계적으로 축소해 현재는 일부 코스만 운영하고 있다.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코스부터 운영을 중단하는 방식이다. 다른 스키장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다.

자연설이 줄어들면서 스키장들은 인공 제설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 눈을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제설기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런 조건이 충족되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낮 동안 기온이 오르면서 이미 쌓인 눈이 녹고, 밤에 다시 얼어붙는 현상도 잦아졌다. 이 과정에서 설질은 나빠진다. 고운 눈 대신 얼음 알갱이가 섞인 까칠한 상태로 변하면서 이용객의 불만도 늘고 있다.

눈 없는
한겨울

눈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눈 관리 비용은 약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눈이 쉽게 녹아 다시 뿌려야 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 사용량과 전력 사용량도 함께 증가했다.

한 스키업계 관계자는 “눈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자주 인공 눈을 뿌려야 한다”며 “관리 비용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눈 상태에 대한 고객 불만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눈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스키장은 운영 조건을 맞추는 데서부터 부담을 안고 시즌을 시작하고 있다.

스키장 운영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비용 부담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 제설과 직결되는 전력 사용과 토지 대부료 문제가 업계의 주요 부담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강원 지역 스키장 관계자들은 제설기 가동이 집중되는 겨울철 전력 사용량을 기준으로 1년 치 기본요금을 산정하는 전력 요금 체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른바 ‘전력피크제’가 되면서, 겨울 성수기뿐 아니라 비시즌에도 높은 기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스키장 측은 눈을 뿌려야 영업이 가능하지만, 제설기를 가동할수록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눈을 뿌려야 손님을 받을 수 있는데, 눈을 뿌릴수록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여기에 국공유림 대부료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수의 스키장은 국유림이나 공유지를 임대해 슬로프와 리프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공시지가 상승과 함께 대부료가 매년 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영업일 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 지역 스키장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 자리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개장 늦추고
면수 줄이고

이 자리에서 업계는 전기요금과 국공유림 대부료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통합 이용권 도입, 겨울 테마파크 전환 등 다양한 자구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용 구조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스키장을 찾는 사람 자체가 줄어든 점도 업계의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저출산과 함께 여가 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키는 장비 구매와 이동, 체력 소모가 필요한 활동으로, 상대적으로 비용과 부담이 큰 레저로 분류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러닝이나 여행, 도심형 여가로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스키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단체 수요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안전 문제 등으로 학생 단체 이용이 줄어들었고, 스키장을 찾던 단체 고객이 크게 감소했다는 현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키장 시즌권 가격은 큰 폭으로 오르지 못했다. 일부 스키장의 경우 10여년 전과 비교해 시즌권 가격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고물가 상황을 감안하면 체감 가격은 오히려 낮아진 셈이다.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강원 고성군의 알프스 스키장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뒤 수년째 운영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스키장 부지에 조성된 콘도 건물은 방치되면서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남아 있다. 리모델링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무산됐고, 철거 비용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라고 해서 별반 상황은 다르지 않다. 프랑스 알프스산맥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스키장들은 강설량 감소와 기온 상승으로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알프 뒤 그랑 세르 리조트는 개장 85년 만에 폐업을 결정했다. 이 지역에는 수년간 보조금 지원이 이어졌지만 적자가 누적되면서 운영 중단이 결정됐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저지대와 중저고도 스키장을 중심으로 폐쇄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 시즌 중반에 스키장 운영이 중단되거나, 아예 개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고됐다.

120일서 80일로…짧아진 스키 시즌
운영일 축소에 지역 경제도 직격탄

일본에서도 적설량 부족과 따뜻한 겨울 기온으로 스키장 도산이 증가했다. 2023년 일본에서는 스키장 운영 기업의 도산이 7건 발생해 최근 10년간 최다를 기록했다. 대형 스키장은 제설 설비 도입으로 버티고 있지만, 중소 스키장은 시설 노후와 비용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키장이 문을 닫은 뒤 남겨진 공간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강원 고성 알프스 스키장의 슬로프는 운영이 중단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흙이 드러난 상태로 남아 있다. 스키장 조성 과정에서 깎아낸 산림은 자연 복원이 쉽지 않은 상태다. 비가 내릴 때마다 토사가 유출되는 구간도 확인된다.

슬로프로 사용되던 경사면은 나무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해당 지역은 백두대간 보호구역과 맞닿아 있지만, 국유지와 사유지가 섞여 있어 복원 작업은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강원 태백의 또 다른 스키장 역시 일부 슬로프를 10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산림 보호구역과 인접해 있지만, 복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산을 깎아 조성한 훼손지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키장 운영 악화는 지역 경제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키장 인근의 장비 대여점과 식당, 숙박업소들은 겨울철 매출에 크게 의존해 왔다. 평창의 한 스키장 인근에서는 최근 3~4년 사이 상점의 약 30%가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상인들은 관광객 감소로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장비 대여업 종사자는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으며, 최근 몇 년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폐업 위기에 놓인 스키장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시도하고 있다. 여러 스키장이 통합 시즌권을 도입해 이용객 유치에 나섰고, 성인 시즌권 구매 시 미성년 자녀에게 무료 또는 할인된 시즌 패스를 제공하는 방식도 확대됐다.

키즈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일부 스키장은 전문 강사가 강습과 식사, 전반적인 관리를 맡는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보호자 동행 없이도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스키 산업
존폐 기로

해외에서는 사계절 관광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알프스 지역 일부 스키장은 산악 자전거, 하이킹, 패러글라이딩 등 여름 관광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키장 경영난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노력만으로 폐업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눈 없는 스키장 해외는?

스키장 폐업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스키장들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겨울 관광지인 알프스에서도 이미 스키장 폐업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개장 85년 만에 스키장 폐업을 결정한 프랑스의 알프 뒤 그랑 세르 리조트의 스키장은 해발 1370m에서 1800m 사이에 위치해 있다.

최근 수년간 강설량이 줄고 기온이 오르면서 방문객 수가 감소했고, 연간 수십만 유로의 손실을 기록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알프스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던 그랑 푸이 리조트의 스키장 운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 지역 역시 눈 부족으로 운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스키장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스위스의 일부 스키장은 이번 겨울 시즌을 아예 포기했다.

스위스 알프스의 저지대에 위치한 한 스키장은 기후 변화로 인해 문을 닫았고, 60개가 넘는 슬로프가 방치된 상태다.

스위스 기상 당국은 알프스 지역의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빠르다고 분석했다.

알프스 산맥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지표면이 더 많은 열을 흡수하고, 이로 인해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1월 평균 기온과 비교해 최근 겨울 기온은 섭씨 2도 이상 높아진 것으로 관측됐다.

이탈리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아펜니노산맥 일대의 스키장들은 알프스보다 고도와 위도가 낮아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이번 겨울 이 지역의 적설량은 평균치보다 약 4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높아 인공 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조차 갖추지 못하면서, 일부 스키장은 시즌 초반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지 스키장 운영자들은 물을 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온이 0도에 가까운 환경이 필요하지만, 최근에는 겨울철에도 섭씨 10도 이상으로 오르는 날이 잦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제설 설비를 갖추고 있어도 실제로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유럽 연구진은 기후 변화가 지속될 경우 스키장 운영 환경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면 유럽 28개국 스키장의 절반이 눈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분석됐다.

기온이 4도 상승할 경우에는 98%의 스키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특히 해발 1800~2000m 이하에 위치한 스키장들은 슬로프 운영 자체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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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