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캐럴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12월이면 거리는 자연스럽게 캐럴로 채워졌다. 특별히 누가 틀자고 정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가게의 문틈에서, 노점의 스피커에서, 시장 골목의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캐럴은 연말이라는 시간 자체를 설명해 주는 공기였다.

특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캐럴은 물질이 아닌 분위기로 사람을 위로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연말을 버텨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온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 캐럴을 듣지 못한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저작권’이라고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거대한
합창장

▲거리의 캐럴이 만들던 연말의 풍경=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12월의 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합창장이었다. 백화점 앞, 재래시장, 동네 가게, 심지어 버스 종점 근처에서도 캐럴은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음질은 거칠었고, 스피커는 낡았지만,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캐럴은 소비를 자극하는 음악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리듬이었다.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도 캐럴은 ‘함께 사는 시간’의 상징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설렘을, 어른들에게는 한 해를 버텨온 자신을 위로해 주는 배경음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일수록 캐럴은 더 큰 위로가 됐다.


그래서 캐럴은 단순한 ‘크리스마스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리에서 공유되는 정서였고, 개인이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함께 듣게 되는 사회적 소리였다. 그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같은 소리를 함께 듣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캐럴은 원래 ‘크리스마스 노래’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캐럴을 크리스마스 전용 음악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캐럴(carol)은 중세 프랑스어 ‘카롤(carole)’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는 둥글게 손을 잡고 추는 원무를 의미했다. 즉 캐럴의 본질은 ‘함께 부르고 함께 움직이는 노래’였다.

종교적으로도 캐럴은 성탄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활절, 고난 주간, 성령 강림절 등 교회력 전반에 걸쳐 불려왔고, 실제로 옥스포드대가 엮은 <The Oxford Book of Carols>에는 연중 모든 절기에 맞는 캐럴이 실려 있다. 캐럴은 특정 날짜의 음악이 아니라, 공동체가 시간을 함께 건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캐럴은 점차 상업화되고, 크리스마스 이미지에 고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럴의 핵심은 여전히 ‘함께 듣고, 함께 부르는 소리’였다.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 공동의 소리가 사회에서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구조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캐럴이 없어진 이유=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진 이유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저작권 문제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설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저작권료 납부 의무는 카페, 대형마트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되며, 대부분의 소규모 가게는 저작권 문제 없이 음악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그 원인은 소음 규제와 에너지 규제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르면 매장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틀 경우 주간 65dB, 야간 60dB을 넘으면 과태료 대상이 된다. 이는 일상 대화 수준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행인이 자연스럽게 들을 만큼의 음악을 틀기조차 어렵다.

몇 년 전만 해도 음악으로 채워진 거리
연말이란 시간 자체를 설명해 주는 공기


여기에 에너지 절약 규제까지 겹친다. 매장 안에서 음악을 틀고 문을 열어두는 방식은 난방 효율 저하를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된다. 결국 법과 제도는 ‘거리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상황’ 자체를 구조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캐럴은 불법이 된 것이 아니라, 허용 불가능한 소리가 된 것이다.

음악 소비 방식 변화와 거리 침묵= 캐럴이 사라진 또 다른 이유는 음악 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거리의 스피커와 라디오, 음반 노점이 새로운 노래를 접하는 통로였고, 자연스럽게 들은 음악이 대중의 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음악은 개인이 선택해 듣는 대상이 되면서, 공공의 공간에서 함께 소비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MP3와 스트리밍,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음악은 완전히 개인화됐다. 이제 음악은 거리나 공간을 채우는 소리가 아니라, 각자가 선택해 소비하는 대상이 됐다. 듣는 시간과 장소, 취향까지 철저히 개인의 몫이 되면서, 함께 듣는 경험은 줄어들었다.

이 변화는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거리의 소리를 앗아갔다. 캐럴은 집 안이나 이어폰 속에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공공의 공간에서는 울리지 않는다. 거리의 침묵은 기술 발전의 부산물이자, 사회 구조 변화의 결과다.

대중사회의 감정= 캐럴이 울려 퍼지던 시절의 사회는 ‘대중사회’였다. 대중사회란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표, 비슷한 정보, 비슷한 리듬 속에서 움직이는 사회를 말한다. 방송은 동시에 시청됐고, 음악은 동시에 들렸으며, 계절의 분위기도 공유됐다.

대중사회에서는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의 정서가 앞섰다. 거리의 캐럴은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울 수 있었지만, 이를 함께 사는 사회가 치르는 자연스러운 비용으로 받아들였다. 그 안에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소음 규제와
에너지 규제

이 사회에서는 질서와 통제가 비교적 쉬웠고, 동시에 공동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캐럴은 그런 대중사회의 감정을 묶어주는 장치였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였지만, 그 불가피함조차 공동체를 이루는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다중사회로의 전환과 개인의 우선성= 오늘날 우리는 대중사회를 지나 ‘다중사회’에 살고 있다. 다중사회란 개인이 각자 다른 정보, 다른 취향,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것을 보지 않고, 같은 소리를 듣지 않는다.

‘저작권’ 족쇄로 사라진 대중사회
정치적 메시지보다 강력한 위로

다중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공동체의 편의보다 앞선다. 소음은 더 이상 함께 감수하는 요소가 아니라, 즉각 제거해야 할 불편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리는 곧바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캐럴 역시 공동체의 정서를 나누는 소리가 아닌 ‘원치 않는 소음’으로 분류된다.


이 변화는 음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국가와 조직의 정보가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보호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는 진보이지만, 동시에 공동의 경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콘서트는 허용된 대중성, 캐럴은 금지된 대중성= 흥미로운 것은 대중사회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공간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수만명이 모이는 가수의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동시에 노래하고 환호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대중사회의 모습이다. 대중사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공간’ 안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콘서트장의 소음은 문제 되지 않는다. 수만명의 함성도 사전에 통제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비용을 지불한 사람만 누리기에 허용된다. 오늘날 사회는 대중성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된 대중성’만 인정하며 누구나 듣게 되는 거리의 캐럴만 규제한다.

이 대비는 오늘날 사회가 불편해하는 것이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공동체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콘서트는 관리되기에 허용되지만, 거리의 캐럴은 통제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에 불편의 대상이 된다. 다중사회는 대중사회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대중성만 선택하고 있다.

다중사회의 장점과 분명한 한계= 다중사회는 개인의 선택과 거부가 존중되는 자유로운 사회다. 누구도 같은 것을 보거나 듣도록 강요받지 않으며, 각자의 취향과 속도가 우선된다. 그러나 그 자유의 이면에서,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공동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중사회는 하나의 리듬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위기 앞에서도 빠르게 결집할 수 있었다. 같은 정보와 감정을 공유했기에 방향을 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면 다중사회는 각자의 판단이 존중되는 만큼, 모두가 옳아도 하나의 움직임으로 모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함께 듣는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다. 다중사회는 효율적이지만, 따뜻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단점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럴 되살려 대중사회의 온기를=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정부가 12월20일부터 31일까지 약 12일 만이라도 캐럴에 한해 소음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자. 이는 무분별한 허용이 아니라, 소리의 크기와 시간대를 정해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간만큼은 거리의 온기를 다시 허용하자는 뜻이다.

이는 연말에 국민에게 던지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보다 강력한 위로가 될 수 있다. 특히 60대 이상 세대에게 캐럴은 추억이며, 삶을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지켜야 할 정서가 있다.

한시적
완화하자

시대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좋은 것까지 없애는 것이 진보는 아니다. 이제는 다중사회의 자유 위에 대중사회의 따뜻함을 다시 얹을 때다. 거리의 캐럴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사람의 마음을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숨 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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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