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오늘 하체 운동을 심하게 해서 집에 못 가고 있다. 데려다 달라.”
119구급차를 마치 개인 ‘콜택시’처럼 이용하려 한 황당한 신고 사연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신고자는 자신의 요구가 거절당하자 해당 소방관에게 불친절 민원까지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119종합상황실 근무자입니다. 민원을 받게 됐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현직 소방공무원이라고 밝힌 작성자 A씨는 최근 겪은 황당한 신고 내용과 그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신고자는 의식이 명료한 젊은 남성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길에 주저앉았다”며 119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가 환자 여부와 음주 상태를 확인한 뒤 병원 이송을 위한 신고인지 묻자, 남성은 “오늘 하체 운동을 해서 집에 못 가고 있으니 데려다 달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이에 A씨는 “119는 응급실로의 이송은 가능하지만, 집으로는 모셔다드릴 수 없다. 택시를 이용하셔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신고자는 이를 납득하지 못했고, 실랑이 끝에 A씨가 “응급실 갈 게 아니면 부모님께 연락하거나 택시를 타라. 운동하고 집에 못 간다고 신고하면 어떡하냐”며 언성을 높이자 신고자는 A씨의 관등성명을 요구하며 전화를 끊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20분 뒤 재차 전화를 걸어 신고자의 귀가를 확인하고 사과까지 했지만, 며칠 뒤 돌아온 것은 국민신문고를 통한 ‘불친절 민원’이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는 “갑작스러운 회의감이 들고 저를 컨트롤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앞으로는 묻지 않고 다 출동을 보내야 하나 싶다가도, 성격상 그렇게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해당 사연을 접한 보배 회원들 사이에선 “119가 콜택시냐” “올해 들은 얘기 중 가장 어이없다” “업무방해로 역으로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 “욕을 해도 무죄인 상황” “도대체 어디까지 친절해야 하느냐” 등 신고자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판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한 회원은 “국민의 요청도 정당성이라는 기본원칙이 전제가 돼야 한다”며 “사회 통념상 맞지 않는 민원은 기관 차원에서 강경하게 대처하고, 민원 사유가 아님이 소명되면 제기자에게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회원들은 A씨를 향해 “혹여 불이익을 받는다면 탄원서라도 쓰겠다” “관등성명까지 말했으면 도리는 다했다” “항상 노고에 감사드린다” 등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현행법상 A씨의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 ‘소방기본법’ 및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방 당국은 비응급 환자의 경우 구급 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법이 규정하는 비응급 환자란 단순 치통, 감기, 타박상 환자나 단순 주취자 등으로, 생명에 위협이 없거나 위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편의를 위해 구급차를 이용하려는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같은 법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비응급 신고로 인한 소방력 낭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119 구급서비스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구급활동 미이송 건수는 120만7780건으로, 전년(115만6913건) 대비 4.4%(5만867건)나 증가했다.
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했으나 환자를 이송하지 않은 구체적인 사유를 살펴보면, 현장에 환자가 없는 경우(17.1%)나 이송 거부(12.5%) 외에도 ‘이송 불필요’로 판단된 경우가 13.4%에 달했다. 이는 A씨가 겪은 내용과 같이 구급차 이용이 굳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신고하는 경우가 상당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119 구급차 이용 서비스를 유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19 서비스가 ‘공짜’라는 인식이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구급차 이용 시 비용을 청구하거나, 비응급 상황으로 판명될 경우 높은 요금을 부과해 무분별한 신고를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119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공공성에 있기 때문이다.
자칫 유료화가 도입될 경우, 경제적 취약계층이 비용 부담을 느껴 위급한 상황에서도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돈 때문에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면적인 유료화보다는 비응급 상습 신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명백한 비응급 이용 시 과태료 부과 기준을 구체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소방 관계자는 “법적인 제재에 앞서 119가 나의 편의가 아닌 ‘이웃의 생명’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며 “비응급 신고로 인해 정작 골든타임이 필요한 위급 환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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