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강원 양양군에서 7급 공무원이 환경미화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속초경찰서는 양양군 소속 7급 운전직 공무원 A씨를 강요 혐의로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언론 보도를 통해 A씨가 지난 7월부터 환경미화원들에게 폭행과 부당한 지시를 지속해 온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이른바 ‘계엄령 놀이’를 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청소 차량에 태우지 않은 채 뒤따라 달리게 하거나 특정 색상의 속옷 착용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이 손실을 보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을 폭행하고, 해당 종목의 매수를 강요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고소는 아직 없지만, 인지 수사로 A씨를 입건했다”면서 “피해자들로부터 진술을 청취했고,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해 조만간 소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보도된 직후인 지난 23일, 양양군은 입장문을 내고 “조직 전체의 중대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피해자 보호와 건강한 조직문화 조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 방지를 위해 관련 제도와 관리·감독을 더욱 철저히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엄정하게 추진하겠다”며 “철저한 후속 조치로 상호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확립하고 신뢰받는 공직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후속 조치에 대해선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와 피해자는 즉각 분리 조치했다”면서 “전문 상담기관과 연계한 치유 프로그램 등 피해 직원의 안정적인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문화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으로는 ▲피해 직원에 대한 휴가 지원 ▲업무 조정 등 근무환경 개선 등을,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선 ▲전 직원 대상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강화 ▲보복 우려 없는 익명·비밀 보장 신고 시스템 보완 등을 제시했다.
A씨에 대해선 “우리 군은 어떤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도 단호히 용납하지 않는다”며 “조사 후 확인된 사실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에 따라 강력한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양군은 이날 전 부서장을 긴급 소집해 사건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조직문화 개선 대책을 논의했으며, 전 직원 대상 직장 내 괴롭힘·갑질·부당 지시 등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도 예고했다. 특히 읍·면사무소,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상수도사업소 등 외곽 청사와 직속 기관을 중심으로 집중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이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경찰 등 관계기관에 철저하고 엄정한 조치를 지시한 바 있어, 정부 차원의 후속 대응도 이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양양군 7급 공무원의 갑질 의혹이 사실이라면, 공직자의 기본 자세와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함은 물론이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범죄행위”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전수 조사와 조직문화 개선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려 깊이 송구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피해자들의 신분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미화원들이 양양군이 직접 고용한 공무직·무기계약직이라면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보호 대상이 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넘어 타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
반면 이들이 공무원 신분이거나 민간 용역업체 소속 하청노동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공무원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온 만큼,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 공무원 행동강령, 공무원 고충처리 규정, 공무원 징계령 체계 안에서만 보호와 제재가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31일, “공무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이 학교 등 다양한 신분이 혼재된 곳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며 “현행법 개정 등을 통해 공무원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청노동자의 경우에도, 원청 공무원과 ‘같은 사용자 소속’이 아니라는 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 성립이 어렵다.
실제로 직장갑질119 등 노동단체 분석에서도 “하청노동자를 향한 원청 회사 관리자와 직원의 폭언과 모욕, 성희롱은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반복돼왔다.
다만 A씨에 대한 법적 처벌이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행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폭행·협박·강요 등 혐의는 근로기준법과 무관하게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로 처벌될 수 있다. 또 현장 안전을 해치는 가혹행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의무 위반으로 문제 삼을 여지도 있다.
양양군에서도도 공무원 행동강령이나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새로 신설된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한 비인격적 부당행위’ 조항 등을 근거로 A씨에게 감봉·정직·강등·해임·파면 등 징계를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법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에 따라 실제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막상 조사가 끝난 뒤엔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징계 조치를 받은 지방공무원은 총 112명으로, 이 가운데 107명(약 95%)이 신분을 유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강등 5명, 정직 36명, 감봉 29명, 견책 37명이었고, 직을 박탈당하는 징계인 해임과 파면은 각각 4명, 1명에 그쳤다.
또 공무원의 부하 직원 등에 대한 갑질 사례에서 경징계에 그친 사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우려에 무게를 더한다.
경남 산청군에선 지난 7월께, 전 산청읍장이 두 달여 동안 부하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가족 비하 등 폭언과 모욕적 언행을 일삼고, 여직원에게 탕비실 접대를 시켰다는 제보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에 접수돼 논란이 됐다.
산청군은 신고가 접수된 뒤 읍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인사위원회엔 해당 사안을 개인 갈등 수준으로 보고 견책이나 감봉 등 경징계 의견만 제출해, 노조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서울시에선 한 과장급 간부가 부하 직원을 공개 장소에서 모욕하고, 주말에도 업무 수행을 지시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등 심각한 피해를 호소했으나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선 위원장 전결로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공무원노조는 “서울시가 가해자에게 내린 조치 결과는 훈계였다. 징계는 인사기록에 따라다니지만, 훈계는 6개월 지나면 기록에서 없어진다”며 “가해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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