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73)“여긴 선감도가 아니니까”(완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10.20 03:18:01
  • 호수 1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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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길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체가 될 뿐이다! 그러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나를 좋아할 수 없다! 죽어서도 퉁퉁 분 내 시체가 그놈들의 놀림감이 되겠지.”

흐린 한 점 불빛

용운은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컴컴한 바다 속에서 그에겐 다만 흐린 한 점 불빛이 보일 뿐이었다.

천둥 번개가 치고 파도는 가파른 벼랑처럼 조금이라도 기어오르려는 그를 밀어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제 용운은 지레 겁을 먹거나 기가 꺾이지만은 않았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견뎌내자!

그는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결연한 동작으로 목표인 마산포의 불빛을 향해 묵묵히 나아갔다.

한 걸음 밀려나면 이를 악물곤 한 걸음 나아갔다. 목표도 현재도 두려움도 죽음까지도 모두 다 잊어버린 무심함 그 자체로 바다와 맞서 있을 뿐이었다.

하나의 물거품이랄까. 파도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킬킬거리며 그를 갖고 논다. 거대함의 장난질.

용운은 허덕거리며 쓴물을 들이켠다. 강철 같은 파도에 뺨을 얻어맞곤 팽개쳐져도 낙심하지 않았고, 마침 밀려가는 파도를 타고 운좋게 성큼 전진해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바닷속에서 바다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그 바다를 이용하여 소망하던 뭔가를 향해 발버둥치고 있는 하나의 미천한 생물일 뿐이었다. 낙엽이 아닌 뜻을 지닌 생명…….

그렇긴 해도 지난 초여름에 틈을 내어 기본적인 개구리헤엄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응용 수영법을 익히고 실력을 쌓아 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정신력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외롭게 투쟁하다가 물고기의 밥이 되기가 십상일 터였다.

다리가 부러진 새는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며, 날개뿐만 아니라 다리에도 힘이 있어야 비로소 날개짓을 할 수 있다는 어떤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어둑한 새벽 바다는 말 그대로 고해(苦海)였다. 용운은 그 속에서 안간힘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얼핏얼핏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반추하고 있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후 근본도 알 수 없는 거지 신세가 되어 떠돌았던 날들……

그리고 죄없이 잡혀와 어린 머리와 가슴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을 겪었다. 그것에 비하여 이 바다는 오히려 순수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용운은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추악하더라도 그것에 물들어 자기를 더럽히거나 타락하면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 내게 주어진 온갖 억울함과 고통을 잘 활용하고 이겨내어, 과거나 지금보다 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금 이런 생사를 버린 헤엄도 필요없다!”

그는 입속에 들어온 바닷물을 긴 숨과 함께 내뱉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도 모르고 부모님도 모르는 것을…… 억울하고 서글픈 과거를 버리고…… 나 스스로 참다운 나를 만들어 가야만 한다. 물론 그러려면 이 바다부터 건너가야만 하겠지…….”

막막한 시공간 속에서 용운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물살을 헤쳐 나갔다.

심연 속의 고독, 공포…… 미지의 괴물들이 발을 휘감아 끌어들이는 듯하다. 몸이 뻣뻣해지며 타인의 물체만 같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먼동이 트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도 몰랐다.

한참 후에 바다의 물이랑에 여명이 비쳐 그 현란한 빛이 금꽃뱀처럼 잔잔히 퍼덕거릴 때야 머리를 들어 심호흡을 했다.

정신력으로 계속 수영
드디어 들어선 마산포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포구의 불빛은 그때부터 꺼져 가고, 그토록 힘겨웠던 여로(旅路) 뒤에 수평선으로부터 맑게 씻긴 태양이 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용운은 수면으로부터 상체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태양 빛이 비쳐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해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알고 보면…… 당신께서도 원래 포악하기보다는 더 나약해서…… 그런 이상스런 사이비 종교에 홀려 자식까지 버린 것이 아닌가요? 만약 제정신이었다면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아버지, 당신께선 저를 모르겠지만…… 저는 차차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알아갈 거예요.”

그는 눈을 들어 새벽 노을이 진하게 퍼져 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엄마도 강한 게 아니라 약해서…… 그때 저를 버린 게 아니라…… 어쩌면 어떤 사정 때문에 잃어버리고 찾으려 애쓰다 그냥 가신 거겠지요?”

용운은 바다를 벗어나 해변으로 올라섰다. 조약돌들이 발 밑에 밟혀 오그락 가그락 감질맞은 소리를 냈다.

거센 파도에 매일 시달리면서도 울기보다는 웃는 빛으로 내면을 다져 가는 조약돌들…… 용운은 그중 하나를 집어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운이 작은 마을 어귀에 도달한 것은 새벽이 다 열리고 다시 하루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그리 위험한 곳은 없었으나 참으로 멀고 더딘 걸음이었다. 땀투성이가 되어 도착한 용운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샘터에서 몸을 씻고 복장을 갖춘 다음 찔레덩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다시 하루낮 하룻밤을 꼬박 산길을 걷고 나서 이튿날 새벽, 드디어 단단한 땅을 밟고 마산포에 들어섰다.

‘피에로 형, 잘 있어. 어디로 가든 형을 잊지 않고 행복을 빌어줄게. 박꽃 누나도…….’

아득한 선감도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어느 한적한 들길로 내려서게 되었다. 모든 게 싱그러웠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정겹게 느껴졌고, 길섶에 뽀얗게 먼지를 쓰고 앉은 이름 모를 풀꽃까지도 아름답게 미소짓는 듯했다.

느티나무 위에서 새소리가 물었다.

정처없는 나그네

“얘, 너 어디루 가니?”

“그냥 발길 따라 간단다. 여긴 선감도가 아니니까.”

“선감도가 어디니?”

용운은 대꾸하지 않고 내처 걸어갔다.

“이 세상엔 없는 곳이지. 천당이나 천국보다 더 아름다웠던 지옥이니까…….”

용운은 수풀 속에서 뱀딸기를 하나 따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회를 끝으로 <선감도>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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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