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에 무용지물 기프트카드 해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24 1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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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기 바쁜 카드사, 나몰라라 내뺀 유통사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기프트카드'가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사에선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카드사들의 기프트카드 발행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었지만, 대형유통사들은 자체 상품권 수익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로 기프트카드를 받지 않고 있는 것. 이 와중에 카드사는 수백억대의 낙전수입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카드사와 유통사 간 '밥그릇 싸움'에 소비자들의 피해만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는 명절선물로 받은 기프트카드를 쓰기 위해 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낭패를 봤다. 평소 갖고 싶었던 브랜드 가방을 고른 뒤 30만원권 기프트카드로 계산하려 했지만, 백화점 점원이 "기프트카드로는 계산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최씨가 "백화점이랑 같은 계열사 카드인데 왜 사용할 수 없느냐"고 따져 묻자 점원의 "카드 가맹점과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결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날 최씨는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했다.

낭패 당하기 십상

기프트카드는 쉽게 말해 상품권을 신용카드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카드사들이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 무기명 카드다. 이용약관에도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다'고 설명돼 있다.

문제는 자체상품권을 발행하는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는 상품권의 판매 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 심지어 카드사와 같은 계열사에서도 기프트카드가 통용되지 않아 많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1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2002년 기프트카드는 현재 삼성·신한·KB국민·하나SK·비씨카드 등 대부분 카드사가 발행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또 기프트카드는 매월 100만장 가량 발매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8000억원 이상 사용될 정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전년 동기의 배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 주요백화점과 롯데마트, 이마트, 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가맹점에서는 10년째 기프트카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롯데 기프트카드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심지어 롯데리아에서도 거부하고 있고 현대·기아차에서도 현대 기프트카드로 결제할 수 없다. 현대캐피탈을 낀 현대카드의 핵심 경쟁력이 현대·기아차라는 점을 고려하면 언듯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뿐만 아니다. 기프트카드로는 TV홈쇼핑,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권 구매, 이동통신 요금, 기차표 예매, 인터넷 티켓 예매, 호텔·콘도 등 숙박업소 예약, 여행사 여행경비 등의 결제도 할 수 없다.

이토록 사용이 제한되는 곳이 많다 보니 기프트카드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결제가능 여부를 놓고 혼란을 겪기 일쑤다. 심지어 기프트카드 사용자체를 단념하는 사람들과 제값보다 낮은 가격에 되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사 손사래
계열 카드도 거부…잔액 수백억 카드사로

항공권 및 호텔, 인터넷 예매가 불가능한 것에 대해 카드사 한 관계자는 "기프트카드는 예약 취소가 빈번한 가맹점 등은 적용이 어렵다"며 "잔액이 없을 때 취소 수수료가 생기면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들은 기프트카드 적용을 위해 카드사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야하는데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기프트카드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난 만큼 소비자 편의를 위해 가맹점 확대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프트카드는 사용처를 찾기도 어렵지만 사용 내역 확인이 바로 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기프트카드를 쓰고 남은 금액을 환불받는 절차가 까다로워 환급을 포기하는 통에 카드사들은 한 해 수십억원씩 '공짜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박대동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카드 잔액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소멸시효 경과로 인해 카드사 수입으로 처리된 카드수는 201만개, 낙전수입총액은 무려 1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낙전수입액은 2007년 5억8600만원에서 지난해 51억5200만원으로 5년새 9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33억100만원이 발생했다. 기프트카드 잔액을 고객들에게 환급해주려는 카드사의 홍보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잔액 환급 창구 운영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권은 이용현장에서 즉시 환불받을 수 있는 데 반해 기프트카드는 카드사나 은행의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누리집,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프트카드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이용할 수 있지만, ATM기로 환급이 가능한 곳은 신한카드, 삼성카드, 경남은행 단 3곳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이 10만원 단위로 발급되는 기프트카드의 이용 현황을 일일이 메모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사용 후 잔액을 조회하거나 환급하기 위해선 해당 카드사의 홈페이지, ARS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롭다. 기프트카드 뒷면에는 잔액을 확인할 수 있는 ARS번호가 안내돼 있지만 이를 아는 고객도 많지 않다.

더구나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기프트카드는 잔액이 권면금액의 20% 이하가 될 때 환급이 가능하다. 백화점 상품권이 20∼40% 이하일 때 환급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기프트카드는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다.

낙전수입 143억

기프트카드는 카드사 입장서 보면 미리 현금을 받고 판매한 선불카드다. 소비자가 기프트카드를 늦게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이자수익이 창출되고 소비자가 잔액 사용을 포기하면 낙전수입도 두둑이 챙길 수 '황금알'인 셈이다.

반면 이미 상품권 시장을 확보한 대형유통사 입장에서 기프트카드는 자기 밥그릇을 뺏으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카드사와 유통사 간 황금알을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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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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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