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 야인으로 돌아간 윤석열 정치 인생

결국 김건희가 말아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주목받도록 했던 발언이다. 정권에 대한 수사로 대권주자에 오른 그는 권력을 잡은 후 자멸했다. <일요시사>는 윤 전 대통령이 걸어온 정치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수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검찰총장이 된 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과의 대립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정치 새내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몰락했다.

윤 전 대통령이 처음 정치적으로 관심을 받은 시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3년 윤 전 대통령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한 직후 국가정보원 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게 된다.

여주지청장
존재 급부상

당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다. 이로 인해 검찰 수뇌부를 비롯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검찰 내부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국정원 직원에 대해 압수수색 및 체포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결국 업무서 배제됐다.

며칠 뒤인 10월21일 국회 법사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정원 수사에 외압이 심각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수사 외압의 실체를 물으며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포함되지 않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윤 전 대통령의 소신 발언이 이어지자,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증인은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단히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사람(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답변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누가 봐도 위법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그것에 이의제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어떻게 따르냐”면서 “위법한 지휘·감독은 따를 필요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그의 발언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윤석열 어록’으로 명명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당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글을 올렸고,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국민은 압니다. 국정원 트윗 5만6000건을 의롭게 수사한 윤석열 여주지청장! 검찰에 윤석열 경찰에 권은희! 그래서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글을 트윗에 적었다.

같은 해 11월9일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국정원 수사 과정서 상부 보고를 누락하는 등 절차를 어겼다며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확정했다. 이후 2014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된 것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을 두고 검찰 내부에선 ‘조만간 옷을 벗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찬밥 신세였다고 한다. 2016년 1월에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아 지방을 전전했다. 그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이었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부터 주목
한직 있다가 국정 농단 당시 재기


2016년 1월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대전고검 검사로 재직 중인 윤 전 대통령을 수사팀장으로 파견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다. 박 특검은 ‘수사 대상’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국무총리로부터 특검 임명장을 받은 직후, 곧바로 법무부와 검찰에 윤 검사의 파견을 요청했다.

박 특검처럼 특정 검사를 콕 집어 파견을 요청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당시 수사팀장은 역대 특검 중 최대 규모인 20명의 파견검사와 검찰·경찰·국세청 파견 공무원 40명을 지휘하는 자리로, 특검법이 정한 14개 수사 대상과 세월호 7시간 의혹 등 추가 인지 수사를 맡게 되는 자리였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놔야 할 특검이 윤석열이라는 ‘잘 드는 칼’을 뽑아 들었다. 60명에 달하는 수사팀을 지휘해 복잡한 수사 내용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윤 검사가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박영수 특검의 성공 여부는 박근혜-최순실-삼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밝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그중 삼성 수사를 맡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 기소했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모두 구속 수감되면서 특검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마무리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후 ‘국민 검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이를 통해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르며 화려하게 검찰 중심부로 복귀했다. 당시 청와대는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고검장급이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을 지검장급 직급으로 내렸으며, 차장검사급이던 그를 검사장으로 파격 승진 기용했다.

잘 드는 칼
잘 쓰는 칼

윤 전 대통령은 이런 파격 기용에 보답이라도 하듯 보수 정권과 대기업 등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동안 서울중앙지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다스(DAS) 의혹 ▲사법 농단 의혹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산하 ‘민간인 댓글부대’ ▲옛 국군기무사령부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 와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에 넘겼다.

문정부의 ‘적폐 청산의 칼’로 신임받던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7월 문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문 전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임명식서 그를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부르며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격한 수사를 당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우리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을 받았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청와대든 정부든 또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형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이 총장으로 취임한 직후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검사와 특수통 검사들의 약진이 있으면서 문정부와 검찰의 관계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 2019년 8월27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조국혁신당 전 대표)을 둘러싼 가족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며 관계는 틀어졌다.

해당 수사로 조 전 대표는 법무부 장관 임명 35일 만에 전격 사퇴했으며 그의 후임으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취임했다. 추 의원은 취임과 동시에 인사권과 직제개편 등을 무기로 검찰을 흔들었고, 이 과정서 관행처럼 내려왔던 부분에서조차 윤 전 대통령을 배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척을 지게 되는데, 추 의원과 크게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추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는 동시에 윤 전 대통령은 그와 검찰 인사,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등과 관련해 사사건건 부딪쳤다.

게다가 추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19일 헌정사상 세 번째, 법무부 장관 취임 후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라임 사태와 윤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씨, 장모 최모씨 사건에 대해서다. 첫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 윤 전 대통령의 측근을 겨냥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윤 총장을 직접 겨냥했다는 의견이 법조계와 정치권으로부터 나왔다.

배신에 배신
좌에서 우로


이 같은 추 의원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예외적으로 외청이라고도 하지만, 과거에는 외청이라고 얘기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검사들과 법조인들은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검사들이 대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일선은 다 위법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를 법적으로 다투게 된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특정 사건에 대해 장관과 쟁탈전을 벌여 경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국감 발언이 추 의원의 심기를 건들였는지 지난 2020년 11월24일, 그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면서 징계를 청구했고, 윤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16일 2개월 정직을 당하게 된다.

추 의원은 당시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서 “오늘 검찰총장의 징계를 청구하고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했다”면서 “그간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여러 비위 혐의에 관해 직접 감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 의원이 윤 전 대통령의 직무배제 사유로 꼽은 것은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채널A 사건 및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검찰 수사 방해 ▲채널A 사건 감찰 정보 외부 유출 ▲검찰총장 대면조사 과정서 감찰 방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신망 손상 등이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그동안 한 점 부끄럼 없이 검찰총장의 소임을 다해 왔다”고 주장했고, 대검 측에서도 추 의원이 윤 전 대통령의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 사유로 든 6가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총장 되자 민주당에 칼 겨눠
추와 갈등 이후 대통령 당선

이후 효력 정지가 인용되어 1심 판결 후 30일 뒤까지 직무집행정지와 징계에 대한 효력이 정지됐다가 2021년 10월14일에는 서울행정법원이 정직 징계처분이 정당한 결정이었다고 판결 내렸고, 2021년 12월10일 서울행정법원서 윤석열 총장이 직무집행정지 소송서 해당 처분이 합리적 근거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각하됐다.

2022년 4월5일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이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고법에 소 취하서를 제출하고 법무부도 2022년 4월8일 서울고법에 소 취하 동의서를 제출하면서 법적으로 항소를 제기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돼 1심 각하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윤 전 대통령을 야권 대권주자급 반열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찰총장 시절 추 의원이 수족 자르기, 수사 관여 등 윤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마다 오히려 지지율만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여야 가리지 않고 그에게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민의힘도 정치 선언도 하지 않은 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검찰의 중립 원칙을 깨는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었다. 당시로서는 윤 전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어 국민의힘 후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인물난을 겪던 제1야당으로서 대권에 뛰어들 당내 인물들의 주목도를 그가 완전히 가렸기 때문에 마냥 반길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은 2021년 3월3일,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 및 박탈하려는 문재인정부 및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 완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제야 윤 전 대통령을 반기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과정서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세력의 차기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하기도 했다. 이튿날 그는 검찰총장직서 자진 사퇴했다.

그해 6월29일에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7월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해 11월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서 국민의힘 제20대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로써 인생의 첫 공직선거를 제20대 대통령선거로 치르게 됐다.

아직도
계엄 의문

이듬해 3월9일 실시된 제20대 대선서 역대 대선 최다 득표인 1639만4815표를 받으면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단 0.73%p 차이라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 차로 신승하면서 첫 공직선거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 5월10일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지난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탄핵당했다. 그의 정치 인생은 정부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주목받았다가 결국 돌아오는 칼을 맞았다는 평가가 많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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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