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㊻눈에 담긴 깊은 소망과 결의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4.07 04:00:00
  • 호수 1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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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새봄이 왔다. 1년이 흘렀는지 2년이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떤 원생은 어린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져 몇 살쯤 더 먹어 보였고 어떤 원생은 눈에서 정기가 빠져 애늙은이 같았다. 

다들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은 몰골이었다.

다가온 새봄

하지만 용운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살은 빠졌을지언정 두 눈이 그윽히 깊어지고 정기가 모여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거친 환경에 찌들어 얼굴 색은 거칠고 어두웠으나 입가엔 굳은 의지(意志)의 빛이 감돌았다. 그 얼굴에 여드름이 돋고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라 그런지 뒷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나 들녘의 아지랑이를 보노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모양이었다.

출렁이는 남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깊은 소망과 결의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바다 너머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마산포엔 꿈과 욕망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지 않을까?

그곳을 지나 서울로 가면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꿈과 소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견뎌내고 막노동이라도 하며 고학을 해볼 참이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그래서 성공을 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꼭 성공해서 이 지옥을 세상에 고발하고, 또 그 괴상스런 사이비 종교의 정체를 까발려 더 이상 엄마처럼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자!

용운뿐만 아니라 수많은 원생들이 겨우내 억눌렸던 모종의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발산하리라는 걸 잘 아는 선감원 측은 말 잘 듣는 원생들로 순찰대를 조직하여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그들에게는 빨간 완장을 차게 하고, 탈출자를 발견하면 부득이한 경우 죽여도 좋다는 밀명을 내렸다.


일단 결심이 선 일에는 조급함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용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려고 애썼으나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실행의 날은 의외로 더디게 왔다.

그래, 어떤 성현께서, 목표를 세우되 서두르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고 실행하라 하셨다지. 그래야지.

그런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용운은 하루하루 그곳의 생리를 터득해 가고 있었다. 선감도의 지형에도 점차 밝아졌다.

당산, 상삿골, 물비탈 등 세 개의 작은 산이 주축이 된 선감도의 둘레는 8킬로쯤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인근에는 털미, 불도, 탄도, 누에섬, 대부도 등등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이 섬은 경기만에 속하며, 마산포와의 거리는 강한 물살을 사이로 2킬로쯤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직 꽃샘바람이 불고 있었다.

용운은 연이틀 보리밟기에 동원되었다. 웃자란 보리를 밟아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지난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해서 작업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요즘 들어 탈출에 대한 기회와 방법 모색,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자정이 넘도록 잠을 못 이루기가 일쑤였다.

요사이 그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러나 복잡한 만큼 문제 해결 방안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첫 번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느냐 하는 것이었다. 바닷물은 하루에 어김없이 두 번 나가고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경기만 해협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한번 물이 빠지면 개펄이 상당 부분 드러나는 게 사실이긴 했다.


조급함 뒤따르는 결심
사전준비를 위한 새벽

그때는 마산포와 실제 물의 거리가 1백 미터 남짓하다고 했다.

하지만 물살 강한 그 1백 미터의 바다를 헤엄칠 능력이 과연 내게 있는가? 익사자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1백 미터에 불과하다는 거리상의 유혹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잘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에 너나없이 빠진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시간의 한계였다. 목숨을 걸고 결행한다 해도 그랬다.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숙사를 빠져나갈 기회가 주어질 리도 없지만 혹시 주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해변까지 들키지 않고 무사히 당도해야 한다. 그런 다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개펄을 통과해야 하고 다시 1백 미터에 이르는 수영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3단계 과정을 모두 거치자면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의 여유는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시간의 공백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꽉 짜여진 일과, 인원 점검, 단체 행동, 행동반경의 제약, 그리고 수많은 타인의 눈, 눈, 눈들……. 그런 제약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용운은 틈을 보아 밖으로 나갔다. 사전 준비를 위해서였다.

험한 당산으로 들어가 나루오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순간 축사 쪽에서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용운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무뿌리에 채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면서 그는 숨가쁘게 기슭을 탔다. 속새풀이 자꾸만 발목을 휘감았다.

그렇게 허겁지겁하면서도 용운은 쉬지 않고 사방으로 눈알을 굴렸다. 쓸 만한 통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몸통 정도의 크기는 돼야 물에서 매달려 가기가 쉬우리라.

그런데 그 순간, 용운은 불현듯 가슴속이 허전해지면서 이상스런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박꽃 누나의 핼쑥하고 애잔한 얼굴이 문득 떠오르더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왠지 그 지옥 같은 선감도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용운은 얼굴을 노을빛처럼 붉혔다. 그 누나가 살고 있는 선감도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처럼 여겨졌다.

용운은 박꽃 누나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써 보았으나 왠지 잘 되지 않았다. 용운은 안타까움을 못 견디는 양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산을 헤매었다. 나뭇가지에 찢기기라도 했는지 이마께가 쓰라렸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마땅한 통나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낫에 잘린 잔가지들은 많이 널려 있었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죽어 넘어진 고사목 하나 없었다. 그런 것쯤이야 산에 흔하리라 생각했던 발상이 빗나가는 중이었다.

무정한 바다

새벽이 빠른 속도로 눈을 뜨고 있었다. 정신없이 산을 걷던 용운은 어느새 나루오름의 산비탈을 내려서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아뜩한 현기증이 일었다. 아, 저 한 치의 융통성도 보이지 않고 출렁이는 새벽바다는 얼마나 무정한가!

긴 곡선을 이루며 겹겹이 밀려와 사그라지는 포말은 또 얼마나 견고한가! 그리고 저 아득한 마산포…….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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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