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㊻눈에 담긴 깊은 소망과 결의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4.07 04:00:00
  • 호수 1526호
  • 댓글 0개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새봄이 왔다. 1년이 흘렀는지 2년이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떤 원생은 어린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져 몇 살쯤 더 먹어 보였고 어떤 원생은 눈에서 정기가 빠져 애늙은이 같았다. 

다들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은 몰골이었다.

다가온 새봄

하지만 용운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살은 빠졌을지언정 두 눈이 그윽히 깊어지고 정기가 모여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거친 환경에 찌들어 얼굴 색은 거칠고 어두웠으나 입가엔 굳은 의지(意志)의 빛이 감돌았다. 그 얼굴에 여드름이 돋고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라 그런지 뒷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나 들녘의 아지랑이를 보노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모양이었다.

출렁이는 남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깊은 소망과 결의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바다 너머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마산포엔 꿈과 욕망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지 않을까?

그곳을 지나 서울로 가면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꿈과 소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견뎌내고 막노동이라도 하며 고학을 해볼 참이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그래서 성공을 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꼭 성공해서 이 지옥을 세상에 고발하고, 또 그 괴상스런 사이비 종교의 정체를 까발려 더 이상 엄마처럼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자!

용운뿐만 아니라 수많은 원생들이 겨우내 억눌렸던 모종의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발산하리라는 걸 잘 아는 선감원 측은 말 잘 듣는 원생들로 순찰대를 조직하여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그들에게는 빨간 완장을 차게 하고, 탈출자를 발견하면 부득이한 경우 죽여도 좋다는 밀명을 내렸다.


일단 결심이 선 일에는 조급함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용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려고 애썼으나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실행의 날은 의외로 더디게 왔다.

그래, 어떤 성현께서, 목표를 세우되 서두르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고 실행하라 하셨다지. 그래야지.

그런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용운은 하루하루 그곳의 생리를 터득해 가고 있었다. 선감도의 지형에도 점차 밝아졌다.

당산, 상삿골, 물비탈 등 세 개의 작은 산이 주축이 된 선감도의 둘레는 8킬로쯤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인근에는 털미, 불도, 탄도, 누에섬, 대부도 등등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이 섬은 경기만에 속하며, 마산포와의 거리는 강한 물살을 사이로 2킬로쯤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직 꽃샘바람이 불고 있었다.

용운은 연이틀 보리밟기에 동원되었다. 웃자란 보리를 밟아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지난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해서 작업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요즘 들어 탈출에 대한 기회와 방법 모색,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자정이 넘도록 잠을 못 이루기가 일쑤였다.

요사이 그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러나 복잡한 만큼 문제 해결 방안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첫 번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느냐 하는 것이었다. 바닷물은 하루에 어김없이 두 번 나가고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경기만 해협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한번 물이 빠지면 개펄이 상당 부분 드러나는 게 사실이긴 했다.


조급함 뒤따르는 결심
사전준비를 위한 새벽

그때는 마산포와 실제 물의 거리가 1백 미터 남짓하다고 했다.

하지만 물살 강한 그 1백 미터의 바다를 헤엄칠 능력이 과연 내게 있는가? 익사자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1백 미터에 불과하다는 거리상의 유혹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잘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에 너나없이 빠진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시간의 한계였다. 목숨을 걸고 결행한다 해도 그랬다.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숙사를 빠져나갈 기회가 주어질 리도 없지만 혹시 주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해변까지 들키지 않고 무사히 당도해야 한다. 그런 다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개펄을 통과해야 하고 다시 1백 미터에 이르는 수영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3단계 과정을 모두 거치자면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의 여유는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시간의 공백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꽉 짜여진 일과, 인원 점검, 단체 행동, 행동반경의 제약, 그리고 수많은 타인의 눈, 눈, 눈들……. 그런 제약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용운은 틈을 보아 밖으로 나갔다. 사전 준비를 위해서였다.

험한 당산으로 들어가 나루오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순간 축사 쪽에서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용운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무뿌리에 채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면서 그는 숨가쁘게 기슭을 탔다. 속새풀이 자꾸만 발목을 휘감았다.

그렇게 허겁지겁하면서도 용운은 쉬지 않고 사방으로 눈알을 굴렸다. 쓸 만한 통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몸통 정도의 크기는 돼야 물에서 매달려 가기가 쉬우리라.

그런데 그 순간, 용운은 불현듯 가슴속이 허전해지면서 이상스런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박꽃 누나의 핼쑥하고 애잔한 얼굴이 문득 떠오르더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왠지 그 지옥 같은 선감도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용운은 얼굴을 노을빛처럼 붉혔다. 그 누나가 살고 있는 선감도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처럼 여겨졌다.

용운은 박꽃 누나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써 보았으나 왠지 잘 되지 않았다. 용운은 안타까움을 못 견디는 양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산을 헤매었다. 나뭇가지에 찢기기라도 했는지 이마께가 쓰라렸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마땅한 통나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낫에 잘린 잔가지들은 많이 널려 있었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죽어 넘어진 고사목 하나 없었다. 그런 것쯤이야 산에 흔하리라 생각했던 발상이 빗나가는 중이었다.

무정한 바다

새벽이 빠른 속도로 눈을 뜨고 있었다. 정신없이 산을 걷던 용운은 어느새 나루오름의 산비탈을 내려서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아뜩한 현기증이 일었다. 아, 저 한 치의 융통성도 보이지 않고 출렁이는 새벽바다는 얼마나 무정한가!

긴 곡선을 이루며 겹겹이 밀려와 사그라지는 포말은 또 얼마나 견고한가! 그리고 저 아득한 마산포…….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