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의정 갈등을 말하다’

“완전히 붕괴해야 대안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개혁’이라는 이름의 큰 그림은 이미 사라졌다. 한쪽이 제안하면 다른 한쪽이 반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화폭은 누더기가 됐다. 수십년 전, 첫 붓질부터 잘못 칠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오랜 시간 이 문제에 천착한 한 노(老) 교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이른바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다. 같은 달 전공의는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학교를 쉬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는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공의-개업의-의대생-의대 교수 등 의료계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정부에 맞섰다.

무너진
단일대오

정부는 ‘의료 개혁’을 내세우며 의료 현장을 바꾸겠다고 나섰고 의료계는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의정 갈등은 12‧3 비상계엄 사태서 나온 포고령에도 언급될 만큼 지난해를 달궜던 이슈다. 당시 포고령에는 ‘48시간 이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처단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린 지도 1년이 넘었다. 정부는 당근을 주고 채찍을 휘두르며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했지만 의사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2026년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며 그 조건으로 ‘3월 말까지 의대생 복귀’를 내세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의대 정원 백지화로 배수진을 친 정부에 학교가 호응했다. 더 이상의 집단 휴학은 받아줄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등록 기간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은 의대생은 학칙에 따라 제적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실제 일부 의대는 미등록 학생을 제적 처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와 학교의 강경한 조치에 의대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80%가량이 등록했고 서울대는 전원 복귀를 결정했다. 일부 의대생 사이에서는 등록 후 휴학한다는 움직임도 있지만 대체로 수업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의대생의 단일대오가 깨진 셈이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 상황서 의대생과 전공의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라며 “이 상황서 의대생이 복학하지 않으면 누구 손해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대생 개인과 그 부모, 사회까지 모두가 손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면 배출되는 의사 수가 줄어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의대생은 빨리 의사가 되는 게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인데 1년을 허비했다”고 한탄했다.

전공의에 대해서는 “그들은 일단 의사면허가 있지 않나.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지 않아도 일반의로 개업해서 살아갈 수 있으니 의대생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2000년 건보 통합 이후
지방 의료‧필수 의료 붕괴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사무실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건강복지정책연구원서 발간하는 <ISSUE PAPER>, 지난해 7월 쓴 저서 <의료개혁 무엇을 어떻게?> 등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냈다. 특히 이번 의정 갈등이 일어나기 십수년 전부터 한국 의료의 붕괴를 예측하는 등 의료 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의료 제도가 밑그림도 없이 만들어진 ‘사상누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정책 입안자의 부족한 인식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는 사회적 갈등을 더했을 뿐 한국 의료는 이미 붕괴 상태로 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이 교수는 윤정부가 내세운 ‘2000명 증원’에 대해 비판했다. 의대 입학 정원을 한꺼번에 65%나 늘리는 방식은 의료계에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사 부족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의약분업 직후 351명이 감축돼 3058명으로 정해진 후 20년 동안 유지됐으니 (의사 부족은) 예상된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의대 입학 정원을 700명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351명이 감축된 수준으로 20년이 지났으니 그 2배 정도로 증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700명 증원도 좀 많을 수 있다”며 AI(인공 지능)의 발달, PA(진료 지원) 간호사 증가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주먹구구식”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700명이든 2000명이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료 계획을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국가 상황에 맞게 시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되는 대로 정책을 진행하면서 본래의 의도나 취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료 사회화’라는 키워드를 인터뷰 내내 중요하게 언급했다. 의료 사회화는 모든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하게 하고 보험료는 경제력에 비례해 징수하면서 의료서비스는 낸 보험료와 무관하게 누구나 똑같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료를 인간의 ‘기본권’ 개념으로 본다.

계획 없이
정책 급급

이 교수는 “2012년에 폐암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생겨 펠스타인이라는 의료경제학자의 저서를 읽게 됐다. 펠스타인은 사회적 권리로 의료를 보장할 때 의료서비스 배분은 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의료서비스가 시장 수요에 따라 나뉘면 환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재정 고갈 등)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한국 환자의 본인 부담률과 의료 이용률 간의 상관관계였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내는 의료비용이 커지면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한국은 본인 부담률이 전 세계서 제일 높은 수준인데도 의료 이용률 역시 일본과 함께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에는 이를 제지할 장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서비스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공공재라는 개념서 배분돼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제도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가 내세운 방책은 ‘필요도’에 따른 의료서비스 배급제다. 의료기관을 계층화해 환자를 분류해서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배급의 주체는 정부나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된다.

이 교수는 “1977년 7월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때 사회보험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시작된 점이 현 상황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 1인당 소득 1000달러 달성 이후 극빈층,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복지혜택을 베풀어야 한다는 취지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런 상황에서도 ‘의료기관이 영리화돼서는 안 된다’ ‘의료보험제도는 보험료로 조달되는 재정 범위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교수는 2000년 7월 의료보험조합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한 것을 의료 붕괴의 시발점이라고 봤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관련 문제의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권과 비급여 문제를 언급했다. 19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전국을 140개 중진료권, 8개 대진료권으로 분류했다. 중진료권은 시‧군‧구, 대진료권은 도 단위로 나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에 사는 주민은 지역 의료기관을 우선 이용해야 한다. 서울 소재의 병원서 진료받기 위해서는 지역의 3차 의료기관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수요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당연히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환자 수가 제한됐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반발이 제기되면서 1995년 8월 대진료권, 1998년 10월 중진료권이 폐지됐다.

이 교수는 “의료 지역화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면서 환자의 수도권 병원 쏠림 현상은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환자가 서울로 몰리니 의사나 병원도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늘날 지역의료의 붕괴는 진료권을 철폐한 의료정책이 초래한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이른바 비급여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이 교수는 “비급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가격을 누가 설정하냐면 의료기관이 한다. 이 과정서 초과 이윤이 발생한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로 기능할 때 초과 이윤을 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깨져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급여 문제는 필수 의료의 붕괴로 이어졌다.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의료기관이 정할 수 있다 보니 수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런 과정서 의사 배치의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소아과는 거의 모든 진료가 건강보험에 포함된 급여 항목이다. 하지만 미용, 성형은 어떤가? 부르는 게 값이다. 의사들도 수지 타산을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윤정부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단순하게 의사가 부족해서 지역의료가 붕괴하고 필수의료가 망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의사를 2000명 ‘듬풍듬풍’ 늘리면 여기저기에 난 구멍이 메워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도 이에 동조해 의사 집단을 몰아갔다”고 꼬집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환자의 의료 공백 체감도는 높지 않다. 이 교수는 비급여 비용을 커버하는 ‘실손보험’을 언급했다. 실제 기자는 최근 한 대형병원서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검사비로 22만원을 냈는데 실손보험을 통해 20만원을 보장받았다. 본인 부담은 2만원인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 교수는 실손보험을 ‘비급여용 보험’이라고 칭하면서 이로 인해 의료민영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이라는 민간보험이 보장하면서 의료기관이 이미 영리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결국 그 끝은 건보재정 고갈로 인한 의료 붕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환자의 불편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빅뱅이 곧 일어날 것이다. 제도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까지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시기를 2030년대 중반으로 예상했다. 건보 재정이 마르는 시기로, 이 교수는 “도저히 제도를 지탱할 수 없게 되는 때”라고 말했다.

결국 이 교수는 의료 문제가 정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사회 상황 따라 정책 바꿔야
공보의 제도 “수명 다했다”

그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의료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는 당연하다”며 “건강보험제도를 통한 기본권으로서의 의료는 공공재가 돼 의료의 배분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의대 정원 결정과 같은 사항 역시 정부의 역할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놓고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공공의료’ ‘필수 의료’ 등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건강보험 의료는 공공재다. 그런데 건강보험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 이런 식으로 정의해 버렸다. 또 공공의료 관련 법률을 제정하면서 공공병원서 하는 의료만 공공의료라는 이상한 인식이 생겼다. 나머지는 전부 민영 의료로 치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적 재정, 그러니까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모든 의료가 공공의료다. 다시 말해 한국에는 공공의료밖에 없다. 이걸 법으로 나누면서 공공의료는 선, 민간 의료는 악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필수 의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서 보장하는 모든 의료가 필수 의료”라고 강조했다. 공공의료니 필수 의료니 나눠놓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 가족계획 사업이 1962년부터 시작됐다. (합계)출산율이 국가가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면 그 사업을 멈춰야 할 것 아닌가. 가족계획 사업이 언제 중단됐는지 아나? 노무현정부 때다. 뭐든지 하나를 잡으면 사회가 바뀌든지 말든지 주구장창 간다. 그만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관료들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예로 공보의(공중보건의사) 문제를 꼽았다. 일부 지역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들이 보건 업무로 군 복무를 갈음하게 한 제도다. 산간벽지나 섬 등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어촌에 공보의를 배치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 교수는 “아무리 의사가 없다 해도 지금은 면 단위에 가정의학과 하나씩은 다 있다. 옛날처럼 공보의가 아니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공보의들이 뭘 하는 줄 아나? 처방전 써주는 일이나 하고 있다. 공보의 제도는 1980~1990년대 이후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2030년대 중반
“빅뱅 온다”

이 교수는 정부 정책에 따른 의료계의 대응 방안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도 “계속 이런 상태로 가면 의사는 국민에게 더는 이해받을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제는 의사들도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의사단체는 개업의, 전공의, 교수,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대의 기능이 없는 상황이다. 의견을 모아서 정부와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가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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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