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의정 갈등을 말하다’

“완전히 붕괴해야 대안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개혁’이라는 이름의 큰 그림은 이미 사라졌다. 한쪽이 제안하면 다른 한쪽이 반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화폭은 누더기가 됐다. 수십년 전, 첫 붓질부터 잘못 칠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오랜 시간 이 문제에 천착한 한 노(老) 교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이른바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다. 같은 달 전공의는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학교를 쉬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는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공의-개업의-의대생-의대 교수 등 의료계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정부에 맞섰다.

무너진
단일대오

정부는 ‘의료 개혁’을 내세우며 의료 현장을 바꾸겠다고 나섰고 의료계는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의정 갈등은 12‧3 비상계엄 사태서 나온 포고령에도 언급될 만큼 지난해를 달궜던 이슈다. 당시 포고령에는 ‘48시간 이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처단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린 지도 1년이 넘었다. 정부는 당근을 주고 채찍을 휘두르며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했지만 의사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2026년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며 그 조건으로 ‘3월 말까지 의대생 복귀’를 내세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의대 정원 백지화로 배수진을 친 정부에 학교가 호응했다. 더 이상의 집단 휴학은 받아줄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등록 기간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은 의대생은 학칙에 따라 제적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실제 일부 의대는 미등록 학생을 제적 처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와 학교의 강경한 조치에 의대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80%가량이 등록했고 서울대는 전원 복귀를 결정했다. 일부 의대생 사이에서는 등록 후 휴학한다는 움직임도 있지만 대체로 수업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의대생의 단일대오가 깨진 셈이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 상황서 의대생과 전공의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라며 “이 상황서 의대생이 복학하지 않으면 누구 손해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대생 개인과 그 부모, 사회까지 모두가 손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면 배출되는 의사 수가 줄어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의대생은 빨리 의사가 되는 게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인데 1년을 허비했다”고 한탄했다.

전공의에 대해서는 “그들은 일단 의사면허가 있지 않나.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지 않아도 일반의로 개업해서 살아갈 수 있으니 의대생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2000년 건보 통합 이후
지방 의료‧필수 의료 붕괴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사무실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건강복지정책연구원서 발간하는 <ISSUE PAPER>, 지난해 7월 쓴 저서 <의료개혁 무엇을 어떻게?> 등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냈다. 특히 이번 의정 갈등이 일어나기 십수년 전부터 한국 의료의 붕괴를 예측하는 등 의료 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의료 제도가 밑그림도 없이 만들어진 ‘사상누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정책 입안자의 부족한 인식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는 사회적 갈등을 더했을 뿐 한국 의료는 이미 붕괴 상태로 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이 교수는 윤정부가 내세운 ‘2000명 증원’에 대해 비판했다. 의대 입학 정원을 한꺼번에 65%나 늘리는 방식은 의료계에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사 부족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의약분업 직후 351명이 감축돼 3058명으로 정해진 후 20년 동안 유지됐으니 (의사 부족은) 예상된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의대 입학 정원을 700명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351명이 감축된 수준으로 20년이 지났으니 그 2배 정도로 증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700명 증원도 좀 많을 수 있다”며 AI(인공 지능)의 발달, PA(진료 지원) 간호사 증가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주먹구구식”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700명이든 2000명이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료 계획을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국가 상황에 맞게 시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되는 대로 정책을 진행하면서 본래의 의도나 취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료 사회화’라는 키워드를 인터뷰 내내 중요하게 언급했다. 의료 사회화는 모든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하게 하고 보험료는 경제력에 비례해 징수하면서 의료서비스는 낸 보험료와 무관하게 누구나 똑같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료를 인간의 ‘기본권’ 개념으로 본다.

계획 없이
정책 급급

이 교수는 “2012년에 폐암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생겨 펠스타인이라는 의료경제학자의 저서를 읽게 됐다. 펠스타인은 사회적 권리로 의료를 보장할 때 의료서비스 배분은 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의료서비스가 시장 수요에 따라 나뉘면 환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재정 고갈 등)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한국 환자의 본인 부담률과 의료 이용률 간의 상관관계였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내는 의료비용이 커지면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한국은 본인 부담률이 전 세계서 제일 높은 수준인데도 의료 이용률 역시 일본과 함께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에는 이를 제지할 장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서비스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공공재라는 개념서 배분돼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제도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가 내세운 방책은 ‘필요도’에 따른 의료서비스 배급제다. 의료기관을 계층화해 환자를 분류해서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배급의 주체는 정부나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된다.

이 교수는 “1977년 7월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때 사회보험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시작된 점이 현 상황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 1인당 소득 1000달러 달성 이후 극빈층,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복지혜택을 베풀어야 한다는 취지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런 상황에서도 ‘의료기관이 영리화돼서는 안 된다’ ‘의료보험제도는 보험료로 조달되는 재정 범위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교수는 2000년 7월 의료보험조합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한 것을 의료 붕괴의 시발점이라고 봤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관련 문제의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권과 비급여 문제를 언급했다. 19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전국을 140개 중진료권, 8개 대진료권으로 분류했다. 중진료권은 시‧군‧구, 대진료권은 도 단위로 나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에 사는 주민은 지역 의료기관을 우선 이용해야 한다. 서울 소재의 병원서 진료받기 위해서는 지역의 3차 의료기관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수요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당연히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환자 수가 제한됐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반발이 제기되면서 1995년 8월 대진료권, 1998년 10월 중진료권이 폐지됐다.

이 교수는 “의료 지역화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면서 환자의 수도권 병원 쏠림 현상은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환자가 서울로 몰리니 의사나 병원도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늘날 지역의료의 붕괴는 진료권을 철폐한 의료정책이 초래한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이른바 비급여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이 교수는 “비급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가격을 누가 설정하냐면 의료기관이 한다. 이 과정서 초과 이윤이 발생한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로 기능할 때 초과 이윤을 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깨져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급여 문제는 필수 의료의 붕괴로 이어졌다.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의료기관이 정할 수 있다 보니 수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런 과정서 의사 배치의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소아과는 거의 모든 진료가 건강보험에 포함된 급여 항목이다. 하지만 미용, 성형은 어떤가? 부르는 게 값이다. 의사들도 수지 타산을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윤정부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단순하게 의사가 부족해서 지역의료가 붕괴하고 필수의료가 망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의사를 2000명 ‘듬풍듬풍’ 늘리면 여기저기에 난 구멍이 메워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도 이에 동조해 의사 집단을 몰아갔다”고 꼬집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환자의 의료 공백 체감도는 높지 않다. 이 교수는 비급여 비용을 커버하는 ‘실손보험’을 언급했다. 실제 기자는 최근 한 대형병원서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검사비로 22만원을 냈는데 실손보험을 통해 20만원을 보장받았다. 본인 부담은 2만원인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 교수는 실손보험을 ‘비급여용 보험’이라고 칭하면서 이로 인해 의료민영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이라는 민간보험이 보장하면서 의료기관이 이미 영리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결국 그 끝은 건보재정 고갈로 인한 의료 붕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환자의 불편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빅뱅이 곧 일어날 것이다. 제도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까지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시기를 2030년대 중반으로 예상했다. 건보 재정이 마르는 시기로, 이 교수는 “도저히 제도를 지탱할 수 없게 되는 때”라고 말했다.

결국 이 교수는 의료 문제가 정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사회 상황 따라 정책 바꿔야
공보의 제도 “수명 다했다”

그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의료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는 당연하다”며 “건강보험제도를 통한 기본권으로서의 의료는 공공재가 돼 의료의 배분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의대 정원 결정과 같은 사항 역시 정부의 역할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놓고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공공의료’ ‘필수 의료’ 등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건강보험 의료는 공공재다. 그런데 건강보험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 이런 식으로 정의해 버렸다. 또 공공의료 관련 법률을 제정하면서 공공병원서 하는 의료만 공공의료라는 이상한 인식이 생겼다. 나머지는 전부 민영 의료로 치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적 재정, 그러니까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모든 의료가 공공의료다. 다시 말해 한국에는 공공의료밖에 없다. 이걸 법으로 나누면서 공공의료는 선, 민간 의료는 악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필수 의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서 보장하는 모든 의료가 필수 의료”라고 강조했다. 공공의료니 필수 의료니 나눠놓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 가족계획 사업이 1962년부터 시작됐다. (합계)출산율이 국가가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면 그 사업을 멈춰야 할 것 아닌가. 가족계획 사업이 언제 중단됐는지 아나? 노무현정부 때다. 뭐든지 하나를 잡으면 사회가 바뀌든지 말든지 주구장창 간다. 그만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관료들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예로 공보의(공중보건의사) 문제를 꼽았다. 일부 지역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들이 보건 업무로 군 복무를 갈음하게 한 제도다. 산간벽지나 섬 등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어촌에 공보의를 배치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 교수는 “아무리 의사가 없다 해도 지금은 면 단위에 가정의학과 하나씩은 다 있다. 옛날처럼 공보의가 아니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공보의들이 뭘 하는 줄 아나? 처방전 써주는 일이나 하고 있다. 공보의 제도는 1980~1990년대 이후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2030년대 중반
“빅뱅 온다”

이 교수는 정부 정책에 따른 의료계의 대응 방안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도 “계속 이런 상태로 가면 의사는 국민에게 더는 이해받을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제는 의사들도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의사단체는 개업의, 전공의, 교수,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대의 기능이 없는 상황이다. 의견을 모아서 정부와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가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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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