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삼중고⋯포스코, 초격차 기술 경쟁력으로 극복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포스코가 미국 보호무역 장벽, 수입산 저가 공세, 그리고 환경 규제 부담이라는 삼중고 속에서도 고유의 철강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를 돌파해 나가고 있다.

한국 철강업계는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저가 수입재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당시 한국산 철강에 부여된 쿼터가 폐지되며, 대미 철강 수출시장은 사실상 무한 경쟁에 놓이게 됐다.

각국의 무역장벽은 높아지는데 내수 방어는 쉽지 않다. 수입산 저가 철강재가 품목을 가리지 않고 국내 시장에 쏟아져 들어와 국내 철강사들의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환경 규제 또한 철강업계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해 탄소 배출량에 따라 수입 철강 제품에 추가 비용을 부과할 예정이다. CBAM이 시행되면 EU로 철강을 수출하는 국내 철강업체들은 추가 비용 부담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초격차 철강 기술력과 그룹 시너지로 LNG 밸류체인 강화

이 같은 글로벌 철강공급과잉과 경제블록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의 초격차 철강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그룹 시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그룹내 시너지를 모아 LNG 관련 생산-운송-저장·판매-건설에 이르는 글로벌 밸류체인 확장에 힘쓰고 있다. 특히 LNG 시장서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소재인 LNG 저장탱크용 ‘극저온 고망간강’과 이 소재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포스코이앤씨가 건설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LNG터미널’이 대표 사례다.

초격차 기술력으로 개발 한계 극복한 ‘고망간강’

포스코는 ‘고망간강’으로 그룹의 LNG 밸류체인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LNG는 천연가스서 암모니아, 황화수소, 이산화탄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대량수송을 위해 -163°C에서 약 1/600로 압축 및 액화해 선박으로 운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에 LNG를 대량 운반 및 저장하기 위한 인프라는 극저온성과 함께 고강도와 내마모성 등 특별한 물질적 특성이 요구된다.

우선, 매우 낮은 온도서 액체 상태를 유지해야 하므로 극저온인성(매우 낮은 온도서도 충격이나 하중에 견디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또, 저장 탱크나 운반 중 강한 압력과 외부 충격을 견딜 수 있어야 하므로 고강도(높은 인장 강도와 탄성)와 내마모성(마모와 부식에 대한 저항성)을 갖춘 재료가 사용돼야 한다.

기존 LNG 탱크용 소재는 주로 고가 원료인 니켈·알루미늄 등의 합금소재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니켈은 일부 국가서만 생산돼 공급이 불안정하고,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문제가 있었고 이 외 까다로운 작업 공정, 낮은 강도 등의 단점을 지녔다.

포스코는 LNG 저장 및 운송을 위한 소재 시장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망간 합금강을 주목하며 2008년 고망간강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망간 합금 시장서 고망간강은 기술력 측면서 구현이 어려운 제품이었다. 강철에 망간을 첨가하면 내마모성과 강도를 높이지만 소재 특성상 밀도가 높아 단단하지만 부서지기 쉽다.

하지만 포스코는 수십년간 철강분야에서 축적한 기술 노하우의 산물인 제어압연과 냉각기술로 망간을 포함하면서도 강도가 우수한 제품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코가 독자 개발한 고망간강은 철에 다량의 망간(Mn, 22.5~25.5%)을 첨가해 -196℃의 극저온서도 우수한 기계적 특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고강도, 내마모성 등 다양한 성능을 특화시킨 철강소재다.

포스코의 고망간강은 LNG 운송, 저장용 소재로서 모든 조건을 만족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적용하던 소재보다 비교우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포스코의 고망간강은 소재 성질과 가공성에서는 강도가 높으면서 연신율(강재가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 또한 우수하다.

특히 고망간강에 첨가하는 망간은 전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기존 소재로 쓰이던 9% 니켈강 대비 약 30% 저렴하다.

고망간강은 LNG 저장 및 운송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광양LNG터미널 5, 6호기에 적용됐으며, 현재 공사중인 7, 8호기에도 적용하고 있다. 고망간강은 LNG터미널 내조 탱크(Inner Tank)에 적용되는데 이는 영하 163℃의 LNG를 직접 담아두는 곳이다.

또 2017년 세계 최초로 LNG추진선 ‘그린아이리스’호(재화중량톤수 5만톤급 벌크선) 연료탱크에 고망간강을 적용하는 데 성공하고, 지난 2022년에는 양산화와 가공성 검증을 마친 끝에 세계 최초로 LNG연료탱크를 한화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에 탑재시켰으며, 2024년에는 컨테이너선에도 LNG 연료탱크에 고망간강을 적용했다.

미래를 준비한 장인화 회장

한편 포스코가 고망간강의 연구와 사용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학생 시절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하고, 철강 연구원 생활로 조선과 철강 양쪽 분야에 깊은 이해가 있는 포스코그룹 장인화 회장의 기여가 컸다.

특히 장 회장은 특히 고망간강의 육상 및 선박용 저장탱크에 실제 적용해 판매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트랙 레코드(실제 적용 사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7년 포스코 부사장 재임 당시 광양 LNG터미널 5호기 건설이 결정됐을 무렵, 포스코 고망간강을 LNG터미널에 적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포스코 소재의 트랙레코드를 직접 만들어 향후 시장을 개척하자는 복안으로, 포스코의 소재를 활용해 포스코이앤씨가 건설하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용하면 그룹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또 LNG추진선의 LNG연료탱크에 적용할 수 있게 해 선박용 신수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신소재인 고망간강을 LNG추진선 사업 분야에 적용할지 여부를 고민할 때, 한화오션 경영진을 직접 만나 고망간강의 안전성을 적극 설명하며 적용을 이끌어냈다. 한화오션은 2022년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을 사용한 LNG 연료탱크를 초대형 원유운반선에 탑재했으며, 이어 컨테이너선에도 이를 적용했다.

최근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의 보호무역 장벽, 중국의 저가 공세, 환경 규제 부담이라는 삼중고를 극복하기 다각적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기술력을 바탕으로 소재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서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