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명승부, ‘전설’ 톰 모리스 기구한 운명

영국은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골퍼를 다수 배출했다. 특히 부친에 이어 골프계의 전설이 된 ‘영 톰 모리스’는 영국이 배출한 전설적인 골퍼 중에서도 유독 사랑받던 선수다. 15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 톰 모리스는 스코틀랜드서 엄청난 인기를 끌던 골퍼였다. 17세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디 오픈 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으며, 이를 계기로 모로코산 챔피언 벨트를 영구 소장한 당대의 최고수였다.

치열한 집안 대결

디 오픈은 영 톰 모리스가 트로피를 가져간 직후인 1871년에는 개최되지 않았다. 이듬해가 돼서야 트로피를 다시 제작해 대회가 개최됐는데, 이 대회조차 영 톰 모리스의 우승으로 끝났다. 새롭게 제작된 트로피가 오늘날의 디 오픈 ‘클라렛 저그’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골프의 신 알렌 로버트슨이 사망한 지 10년 만에 등장한 그를 최고의 선수로 추켜세웠다. 그에게 패배란 없었다. 특히 부친인 올드 톰 모리스와 짝을 이뤄 출전한 대회서 엄청난 승률을 자랑했다.

1875년 9월 스코틀랜드의 노스윅골프장에는 톰 모리스 부자와 ‘파크 형제(윌리 파크, 멍고 파크)’가 모였다. 이들은 포섬 방식으로 승부를 겨룰 예정이었다. 12홀 코스를 세 번 도는 2인1조 36홀 매치 플레이 방식이었다. 1만여명에 이르는 갤러리가 아침부터 골프장에 모여 진을 쳤다.


최고수들이 벌이는 대결이니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사실 영 톰 모리스는 아내 마가렛이 아이를 낳기 직전이라 대결을 내켜하지 않았다.

디 오픈서 4차례나 우승한 윌리 파크는 직전 연도에 올드 톰 모리스를 이겼다. 또 1860년 치러진 제1회 디 오픈서 올드 톰 모리스를 누르고 첫 우승을 차지했던 것도 윌리 파크였다. 15년 전 9세에 불과했던 영 톰 모리스는 부친이 윌리 파크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훗날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1867년 불과 16세였던 영 톰 모리스는 카누스티서 윌리 파크와 맞대결을 벌였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영 톰 모리스는 윌리 파크를 플레이오프서 눌러버리면서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했다.

두 집안은 이렇게 골프에 관한 한 양보할 수 없는 숙적 관계였고, 4명이 참가한 이날의 대결은 원수와도 같은 집안이 외나무다리서 만난 셈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양측은 팽팽한 신경전으로 일관했다. 한 홀씩 주고받으며 12홀 한 라운드가 끝났음에도 우열을 가릴수 없는 무승부가 지속됐다.

당대 호령하던 비운의 천재
승리와 맞바꾼 아내의 죽음

영 톰 모리스의 스윙이 단연 돋보였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게임은 34홀까지 팽팽하게 이어졌고, 대결은 단 두 홀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골프장에 누군가가 끼어들어 적막을 깨뜨렸다. 전보를 들고 온 우체부였다. 우체부는 홀에 서 있는 올드 톰 모리스의 손에 용지를 쥐어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웅성거리는 관중들에게 둘어싸인 채 올드 톰 모리스는 급히 전보를 펴보았다.


“영 톰 모리스의 부인이 난산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아들 영 톰 모리스는 퍼팅을 준비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올드 톰 모리스는 종이를 주머니에 슬그머니 구겨넣었다.

35홀 그린서 버디를 눈앞에 둔 영 톰 모리스는 전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성공하면 대결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결국 영 톰 모리스는 버디를 했고 모리스 부자가 한 홀 앞서갔다. 마지막 36홀은 동점으로 끝났고 모리스 부자는 파크 형제를 한 타 차로 이기게 됐다.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아버지가 주머니서 내놓은 구겨진 전보 종이를 확인한 영 톰 모리스의 얼굴은 상기됐고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부자는 골프장을 가로질러 반대쪽인 바닷가로 뛰었지만, 기차는 이미 끊어졌다.

두 사람은 간신히 배를 타고 세인트앤드루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으로 뛰어간 영 톰 모리스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도착했을 때 아내는 산고를 이기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사망한 상태였다. 두 사람을 함께 잃어버린 영 톰 모리스는 넋을 잃은 채 지냈다.

그렇게 100여일이 흘렀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 톰 모리스는 침대서 일어나지 못했다. 24세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영원히 잠든 것이다.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슬픔의 상처가 주된 원인이었다.

안타까운 개인사

올드 톰 모리스는 전보를 주머니에 숨긴 죄책감으로 아들을 먼저 보낸 이후 평생 골프채를 손에 잡지 않았다. 불세출의 골퍼를 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다. 신이 내린 골퍼였던 영 톰 모리스는 144년이 흐른 지금도 영국인들 사이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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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