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으로 범죄학계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범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굳이 범죄를 정의하자면 ▲세금 체납 ▲국방의 의무 회피 ▲무단횡단 ▲음주 운전 등 크고 작은 법률 위반 행위를 포괄한다.
범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법률적으로만 범죄를 규정하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범죄의 상대적 특성 때문이다.
법률이란 사회적 현상과 그 현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다. 이렇게 제정된 법률은 시대 흐름에 따라 적용 방식에 변화가 있기 마련이고, 범죄 규정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법률적으로 정의된 범죄는 시간적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과거엔 범죄였으나 지금은 아니거나, 반대로 과거엔 범죄가 아니었으나 지금은 범죄인 경우가 생기게 된다.
또한 국가에 따라 같은 행위에 대한 범죄 성립 여부가 다르게 해석되는 지리적 상대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몇몇 사회서 성차별, 인종차별 등 비윤리적 사안이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범죄에 대한 법률적 정의의 더 큰 문제는 광범위한 모든 인간의 활동을 법률로 규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같은 한계를 인지한 전문가들은 범죄의 개념과 규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급기야 범죄의 개념과 경계를 확장하자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물론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모든 인권침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면, 현재 법률적 정의로는 범죄로 규정되지 않을 수 있는 성차별, 인종차별도 범죄로 규제될 수 있다.
더욱이 법률 제정의 기초로 만약 갈등론자의 주장을 따른다면, 법이란 어쩔 수 없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요, 도구가 되어 사회의 범죄 실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즉,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관련되는 전통적 노상 범죄는 과장되고, 환경 범죄나 기업 범죄와 같은 사회에 더 큰 피해와 영향을 주는 가진자의 범죄는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전통적 범죄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경계를 허물고 확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위해학’ 또는 ‘해학학(Zemiology)’으로 불리는 신흥 학문 부류다.
이들은 범죄학이 모든 ‘사회적 위해(Social Harms)’를 다룰 수 있도록 범죄학의 영역, 대상, 주제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접근이 전 생애에 걸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 고통의 원인과 위해, 해악의 범위와 정도에 대한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초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적 위해·해악’이라는 개념이 그 정의와 규정에 있어서 분석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념과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 있고, 그래서 물리적 위해서 재정적·사회적·문화적 위해에 이르는 거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할 수 있게 됐고, ‘위해’라는 것이 ‘범죄’라는 개념을 정의하기보다 위해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위해의 개념은 경험자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고, 따라서 인간 고통의 원인을 더 폭넓게 고려할 수 있고, 피해자-지향, 피해자-중심의 정책과 제도에 더 부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