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어벤져스 ‘개헌파’ 시나리오

기세 좋았지만…뭉칠 수 있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최근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개헌이다. 매번 대선 때마다 돌림노래처럼 개헌을 외치지만 한 목소리로 모이지 않는다. 1987년 이후 개헌을 성공한 대통령이 아무도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까? ‘탄핵 물타기’부터 ‘이재명 흔들기’까지,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두고 갖가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개헌에 소극적이던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 이후 눈에 띄게 빠른 걸음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맞서 비명(비 이재명)계도 “절대권력 분산”을 외치며 개헌 논의에 올라탔다. 여야 할 것 없이 동상이몽을 꿈꾸기엔 덥석 손을 잡기에는 망설임이 더 크다.

너도나도
급 띄우기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열고 개헌을 언급했다. 정작 본인은 대권 행보와 선을 그었지만, 국가 개조의 핵심 키워드로 ‘지방 분권’을 제시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했다.

이날 오 시장은 중앙집권적 구조로 인한 지역 간 불균형과 지방 소멸을 언급하며 “중앙정부가 예산을 나눠 주고 일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자생적 성장을 촉진할 수 없다. 각 지역이 독자적인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산과 인력, 규제라는 3대 권한을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조력자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특히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하고 자원과 행정 인력을 균형 있게 재배치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3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개헌하고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2026년 지방선거 실시와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또 다른 보수 잠룡인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4년 중임제를 비롯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역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힘을 실었다.

야권서도 활발하게 개헌 논의에 군불을 때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행정수도 세종 이전의 추진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했다. 개헌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국토 균형 발전을 통한 초광역 단위 지방정부 시대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된 지방정부를 위한 개헌이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외 비명계 모임 ‘초일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기대 전 의원이 꾸린 ‘희망과 대안 포럼’은 지난 18일 출범식을 통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헌을 통해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를 분권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실현하는 연대의 틀을 만드는 데 포럼이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날 출범식에 자리해 “헌정 질서를 짓밟는 절대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견제가 가능한 권력구조로의 개편을 포함해 국민소득 3만5000불 시대에 맞는 헌법, 지방분권이 포함된 헌법을 위해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 로드맵을 제시하고 약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 개헌 밀어붙이는 잠룡들
이 “빨간 넥타이만 좋아해” 선 긋기

지난 전당대회서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두관 전 의원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개헌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제도상 허점이 많다는 게 여실히 증명됐음에도 7공화국을 열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 당의 주류나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중요하지, 개헌이 무슨 소리냐’는 분들도 계신다”며 “정치인들이 이런 혼란스러움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사회권, 기본권,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 등 너무 많은 것을 한번에 담기보다 원포인트 4년 중임제에 초점을 맞추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재 전 의원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탄핵이 인용된 이후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며 “계엄, 특히 불법 계엄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두 번째는 위협받는 국민의 삶을 안정화하고 배고프지 않은 나라, 배 아프지 않은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 원로도 한목소리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을 비롯해 ▲김원기·박병석·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부겸·이낙연 전 국무총리 ▲여야 당 대표를 지낸 서청원·김무성·손학규·황우여 전 대표 등이 함께하는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모임’은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추경과 함께 개헌 과제를 여야정 협의체에 조속히 상정해 본격 논의하고 이른 시일 내 국회 헌법 개정특위를 구성해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야 모두 7공화국의 문을 여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나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쯤에서 민주당 이 대표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개헌에 침묵하는 민주당이 여야의 압박을 언제까지나 모른 척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다. 개헌 얘기를 하면 이게 블랙홀이 된다.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이 좋아하게 돼있다”고 밝힌 게 전부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개헌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2022년 대선후보이던 시절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 책임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가 세계적인 추세, 권력이 좀 분산된 4년 중임제로 가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알맹이 없는
말, 말, 말…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서 ‘개헌에 합의할 경우 임기를 1년 단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며 “국가 백년대계, 경국대전을 다시 쓰는 것이다. 국민에 필요한 제도를 만드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 중에서도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는 매번 대선 때마다 화두에 오르는 주제다. 후보들은 앞다퉈 개헌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개헌을 약속했지만 임기 내 실현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2016년 민주당 전 대표이던 시절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막기 위한 개헌론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개헌의 방향을 특정해 임기 단축을 말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공학적 얘기다.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한다면 다음 정부는 과도정부밖에 되지 않는다”며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대청산과 개혁을 해내려면 5년 임기도 짧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당시 비문(비 문재인)계로 불리는 이들이 개헌을 압박 카드로 제시하고 나선 때다. 이른바 ‘개헌파’로 불리던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마찰을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문 전 대통령도 2017년 대통령 후보가 되자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며 “차기 대선을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서 이 때부터 4년 중임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개헌안은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직 야권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서 “대통령이든 뭐든 후보가 되면 일단 다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특히 야당이 그렇다. 그러고는 막상 집권하면 흐린 눈으로 외면하는 현실”이라며 “권력구조와 정치권의 의지 문제다. 어렵게 얻은 권력을 조금이라도 단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직은
각개전투

이 대표가 개헌 논의에 확답을 주지 않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선두주자는 안정적인 현 체제를 유지하길 원하지만, 나머지 주자는 개헌 등을 차별화 포인트로 판을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신 개헌파’의 목적이 정말 개헌인지 의문스럽다는 눈빛을 보낸다.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이라는 대권후보를 압박하기 위한 요소로 개헌을 쥐고 흔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현직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모두가 개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언제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국민의힘이 앞다퉈 개헌을 주장하는데,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받기 좋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무책임한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을 고리로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시나리오가 여의도 곳곳서 풍문으로 들려온다. 여당과 비명계가 동시에 개헌 논의를 띄운 만큼 이들 중 일부가 빅텐트를 세워 제7공화국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란 예측이다.

김 전 의원은 희망과 대안 포럼을 주축으로 ‘탄핵과 개헌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50년, 미래 100년의 대한민국 운명을 건 개헌을 통해 7공화국을 이뤄내야 한다”며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내란 세력 제압이 먼저라고 말을 하지만 조기 대선에 승리해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여야 빅텐트는 어렵다” “의미 있는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선을 그었다.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등 각자 원하는 방향이 달라 같은 당에서조차 손을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이유다.

번갯불에 콩 굽듯…우후죽순 쏟아지는 안건
충돌하는 이해타산…똑 떨어지지 않는 답

당장 민주당만 하더라도 저마다 개헌을 외치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개헌 방안이 중구난방인 만큼 최종 개헌안을 제시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방식의 개헌을 주장하며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각과 국회로 나누는 분권형 4년 중임제, 대통령 권한을 총리와 나누는 책임총리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적대적 공생관계인 양당 체제를 다당체제로 바꿔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민 컨센서스가 높은 분권형 4년 중임제로 개편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주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다음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2년 단축해 2028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당 개헌특위를 꾸려 자체 개헌안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행정·입법권력 견제와 균형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양원제를 제시한 것에 그쳤다.

여권서 가장 눈여겨보는 건 오 시장과 안 의원 간의 연대 가능성이다. 지난 12일 안 의원은 오 시장의 개헌 토론회에 찾아간 만큼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개헌을 교집합 삼아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안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연대 이야기하는 거는 너무나도 앞서 나간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야5당이 함께하는 원탁회의가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 19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은 ‘내란 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 출범식을 열고 내란 종식과 정치·사회·권력기관 개혁 및 민생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걸었다.

또 다른
연결고리

이날 개헌은 논의 대상서 빠졌다.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임에도 협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하면서 동력이 저하될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권력기관 개편과 불법 계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개헌은 사실상 수순”이라면서도 “국민의힘 개헌 논의에 말리지 않기 위해 수위 조절을 하겠지만 결국 논의할 수밖에 없다. 추후 개헌 관련 합의구조를 만드는 과정서 야권연대 후보 선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5당 원탁회의 차기 집권 노림수?

야5당이 뭉친 원탁회의의 목적과 지속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조기 대선이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차기 집권여당으로서 발돋움을 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내란 수괴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포함한 극우 내란 세력의 헌정 파괴 행위를 막아낼 것”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뜻을 모아 나가겠다. 그 과정에서 늘 광장의 민심에 주파수를 맞추겠다. 시민사회와도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야5당 대표들은 “광장의 민심에 주파수를 맞추고 시민사회와도 연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다음 달 1일 원탁회의 차원서 공동집회를 여는 데 합의했다.

다만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범야권 연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 대변인은 “대선 혹은 대선 준비·야권 단일 후보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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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