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㊵깊은 바다 섬에 건립된 왕국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2.24 01:00:00
  • 호수 1520호
  • 댓글 0개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빨리 가서 들것 가져와!”

왕거미 사장이 이르고는 용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이 자식, 이 기회에 똑똑히 봐 둬! 도망자의 꼴이 어떤가를…….”

그러나 용운의 귀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뜩해지는 의식으로 팔딱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만 들을 따름이었다.

제왕 원장


시신은 공동묘지로 운반되고 원장의 명령하에 매장을 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해변에서 파도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외로운 주검에게 들려주는 장송곡과도 같았다.

용운은 묘지 위로 눈물을 뿌리며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하늘나라에 가거든 다시는 부모랑 헤어지지 마세요. 다시 태어나더라도 부랑아나 거지는 되지 말구요.”

그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저 무덤 속에 누운 사람은 이 땅 선감도에서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곤 시간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곳을 향해 스스로 떠났는지도 몰랐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동작이 좀 굼떴는데, 언젠가 원장이 시킨 일을 성격대로 느릿느릿 하다가 원장의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뒤부터 그렇게 변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일반 사회로부터 외떨어져 깊은 바다의 섬에 건립된 선감원은 하나의 특별한 왕국이었다.

원장은 그곳의 제왕과 같았다. 그는 군사정권의 의지(意志)를 선감학원에서 실현해 보려고 광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부 숙사의 명칭을 군사정권의 이상(理想)이 반영된 ‘개척사’나 ‘창조사’ 등으로 바꾸어 독려하기도 했다.


그게 그닥 큰 효과가 없자 나중에는 ‘비둘기사’ ‘종달새사’ ‘앵무새사’ 따위로 교체해서 원생들이 고분고분하게 교화되기를 희망했다.

모든 것이 군대식으로 상명하달되었고 그것을 거부하면 고통과 죽음이 따를 뿐이었다. 탈출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 등의 경우엔 그나마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선생들의 폭행으로 인한 죽음이나 자살일 경우에는 허름한 가마니에 둘둘 말아 산골짝 으슥한 곳에 던져 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그렇게 죽어 나가는 원생들의 수가 많을 때는 하루에 네댓 명이나 될 때도 있었다.

선감학원 측에서 쓰레기라고 비하하는 원생들의 탈출을 기를 쓰고 막는 것은 원생들이 쓰레기이기도 하면서 재산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착복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염전이나 양잠 등등 원생들의 피땀 어린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수천 가마의 소금이 군대에 납품되었다.

수많은 원생들이 배를 곯으며 일한 대가인 그 돈으로 원장은 서울에다 으리으리한 저택과 빌딩을 구입해 두었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새어나왔다.

또한 원장은 가까운 장래에 정치계로 진출하기 위하여 권력 고위층에다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다는 풍문도 떠돌았다.

선감도에는 뱀이 많았다. 원생들은 틈이 나면 막대기를 들고 뱀을 잡으러 다녔다. 독이 잔뜩 오른 가을 뱀에 물려 시퍼렇게 부은 얼굴로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뱀을 잡는 건 사장의 지시에 의해서였다. 그렇게 잡힌 통통한 뱀들은 원장에게 상납되었다.

원장은 몸 보신을 위해서인지 아무튼 뱀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원장 사택에서는 뱀탕을 끓이는 연기가 늘 몽실몽실 솟아오른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산기슭에서 왕거미 사장이 직접 뱀 대가리를 잡아 들고 목을 따서는 껍질을 쫙 벗겨 내리는 모습을 용운은 본 적이 있었다. 뱀은 핏물이 도는 허연 알몸뚱이로 꿈틀거렸다.

군사정권의 의지 실현
재산 가치 있는 원생들


사장은 손목을 감는 뱀의 꼬리를 훑어내리곤 뱃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창자 속에 든 노란 팥알 같은 게 줄줄이 달려 나왔다.

사장은 입술에 뱀 피를 묻힌 채 그것을 하나하나 신속히 따 먹었다. 그리고 뱀 몸뚱이는 불에 구워 걸신 들린 듯 씹어 삼키는 것이었다.

용운은 지난번에 그에게 당한 추악한 기억이 떠올라서 구역질을 했다. 그는 그 후로는 용운의 거센 반항에 질린 듯 손을 뻗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어린 소년들이 그의 추악한 욕망의 제물이 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때 용운의 눈 앞으로 꽃뱀 한 마리가 스르르 지나갔다.

용운은 엉겁결에 대나무 막대기로 뱀의 허리를 내리쳤다. 별로 잡을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리친 것은 관성적인 동작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용운의 마음속 깊이 또아리 친 증오심과 살해욕에 의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뱀은 괴로운지 하늘을 쳐다보며 꿈틀거렸다. 용운은 갑자기 불쌍한 느낌이 들어 막대기를 더 내리칠 수가 없었다. 그 틈에 뱀은 수풀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죽여! 어서 죽이라구, 멍충이 새끼야!”

사장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새끼 넌 이제 일났어! 그렇게 때려놓고 완전히 죽여 버리지 않으면 밤중에 찾아와서 꼭 해꼬지를 한단 말이야. 흐흐흐…….”

그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용운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치 자신의 허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왠지 뜨끔뜨끔했다. 밤엔 눈에 벌건 불을 켠 뱀떼에 쫓기는 꿈을 꾸며 가위눌림을 당했다.

가을에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백곰 반장과 절름발이 누나의 연애에 관한 일이었다. 용운은 그동안 틈틈이 쪽지를 전달해 주곤 했었지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 누나는 하얀 얼굴로 함초름하게 웃을 뿐 깊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양잠반으로 차출되어 가 있던 피에로가 마치 채플린처럼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고 얄궂게 웃으며 얘기를 전했다.

가위눌림

“요즘 가을누에가 뽕잎을 아주 많이 먹거든. 그래서 애들 몇이 저녁에 뽕밭으로 갔던 거야. 맨 앞에 가던 방개 놈만 봤다는데 말야, 으슥한 뽕잎 속에서 두 청춘 남녀가 달콤하게 밀어를 속삭이고 손을 잡더니 입맞춤을 하더라는 거야. 그런 후에 허연 젖가슴을 봤다나, 허벅지를 봤다나…… 아무튼 인기척을 느꼈는지 뒷산 쪽으로 줄행랑을 놓더래.”

“그 방개란 애가 분명 허풍을 친 걸거야. 그 누나가 몸도 약한데 밤중에 거긴 뭐하러 갔겠어, 안 그래?”

“난 모르지 뭘. 아무튼 하얀 옷자락이 펄럭이는 걸 봤다니까.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