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꾸띠아주, 누아주’ 신성희

40년 회화세계의 정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허상의 그림이 아닌 공간의 영역을 소유한 실상으로서의 회화의 옷을 입고 빛 앞에 서자! 작가 신성희는 우리들로 하여금 예술이라는 나라의 존재자가 되게 했다.” - 신성희 작가 노트 <평면의 문: 캔버스의 증언>

갤러리현대가 신성희의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서 열리는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이다. 1980년대 초반 김창열 화백의 추천으로 프랑스 파리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신성희의 작업실에 방문한 것을 인연으로, 갤러리현대가 1998년 오광수와 이일이 에세이를 쓴 도록을 발간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평면성 파괴

1980년대 신성희는 한국 미술계서 찾아볼 수 없던 화려한 색채에 ‘종이 뜯어 부치기’와 ‘뚫린 공간’을 특징으로 내세우며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선보였다. 갤러리현대는 1998~2000년 프랑스 파리서 트럭을 빌려 그의 ‘누아주’ 시리즈 신작 수십점을 싣고 아트 바젤 페어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3년 연속 완판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신성희는 평면 캔버스 회화의 해체를 통해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로서의 다차원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회화를 추구하며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이번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는 한국회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신성희의 작업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신성희 작업세계의 정점인 ‘누아주’ 시리즈를 중심으로 작가의 40여년 예술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주요 작품 32점으로 구성됐다. 특히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1971년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서 특별상을 받은 ‘공심(空心)’ 3부작과 절정기인 1990년대부터 작고한 해인 2009년까지의 주요 작업이 최초로 소개된다.

신성희의 회화세계는 ‘마대회화(극사실 물성 회화)’ 시리즈, ‘콜라주’ 시리즈, ‘꾸띠아주’ 시리즈, ‘누아주’ 시리즈 등 네 시기로 분류된다. ‘마대회화’ 시리즈는 실제 마대 위에 마대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마대 위에 얹힌 물감 덩어리로서의 실상과 마대처럼 보이는 허상을 동시에 지각하게 했다.

과감한 색으로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을 직조한 ‘콜라주’ 시리즈,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박음질로 이은 ‘꾸띠아주’ 시리즈, 그리고 잘라낸 캔버스 색띠를 틀이나 지지체에 묶어 유연한 평면과 기하학적 입체 공간의 통합을 이룬 ‘누아주’ 시리즈로 신성희의 작품세계는 확장됐다.

갤러리현대와 10번째 개인전
마대회화·콜라주 네 시기로

특히 꾸띠아주와 누아주 시리즈는 작가가 완성한 평면 추상을 해체해 박음질하거나 엮고 꼬는 방식을 통해 캔버스의 2차원 평면을 넘어 3차원의 공간이자 장소의 회화로 나아간 신성희의 대표 작업이다. 2차원 회화의 평면성을 파괴하고 화면에 3차원적 입체와 부피감을 도입한 탈회화적 방법론을 통해 얻은 신성희의 회화적 혁명으로 평가된다.

1층 전시장은 신성희가 파리를 오가며 성북실 작업실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한 작품으로 채웠다. 전시장 가운데서 관객을 맞이하는 ‘회화로부터’는 누아주 시리즈의 비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앙 벽의 ‘공간별곡’은 누아주 시리즈 중 가장 큰 스케일의 작업으로 서너 점의 평면 추상 회화가 해체됐다가 다시 엮어져 완성된 대작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회화의 비전을 선구적으로 잘 드러내는 3부작 회화 ‘공심(空心)’이 놓였다. 공심은 신성희가 23세에 초현실주의 화풍의 내러티브를 담아 완성한 회화다. 지하전시장은 파리 작업실서 탄생한 1980년대 콜라주 시리즈와 꾸띠아주 시리즈의 대표작을 ‘창’이라는 모티브에 착안해 연출했다.


전시장 2층은 신성희가 생애 절정기에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했던 누아주 시리즈로 채워졌다.

추상화로 완성한 평면 캔버스에 정교하게 칼집을 내어 다른 평면 추상에서 잘라낸 색띠를 엮은 ‘평면의 진동’ 연작, 완성된 한 점의 평면 추상화를 얇은 선으로 해체해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색띠들이 직조되며 입체적인 회화를 완성하는 ‘공간별곡’ 연작, 해체된 캔버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공간을 향하여’ 연작 등 다양한 누아주 시리즈의 변주를 한 공간서 감상할 수 있다.

부피감 도입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신성희는 40여년에 걸친 화업 동안 캔버스 작업에 몰두했다. 2차원의 평면 화면을 1차원적 선으로 완전히 해체하고 해체된 캔버스를 엮어 수직과 수평 차원서 공명하게 하는, 수많은 사건과 시간이 짜이는 공간으로서의 입체적 회화를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며 “재봉질과 엮기를 통해 구축된 회화적 공간은 20세기 예술가의 화풍 유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중요한 진전을 보여준다. 그의 회화는 한국적이면서도 대담하게 서구적이며 독자적이고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신성희는?]

1948년 경기도 안산서 태어났다. 1966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했다.

1980년 파리로 이주해 30여년간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프랑스, 스위스, 미국, 일본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기관서 개인전을 진행했다.

갤러리현대와는 1998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이탈리아서 첫 개인전이었던 팔라초 카보초서의 미니 회고전을 포함해 올해까지 총 10회의 개인전을 함께 했다.

1968년 신인예술상전 신인예술상,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 1971년 초현실주의 화풍의 ‘공심(空心)’ 3부작으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서 특별상을 받았다.

2009년 작고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